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한국은 군인 출신들이 지배자가 되어 나라를 통치했었다
시초는 박정희였다
그는 부하의 총에 맞아 죽기전 까지 18년2개월 동안이나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다
박정희가 나라를 지배하는 동안에 한국 사회는 박정희 개인의 나라였다
왕처럼 나라를 소유했다
실제로 그때 박정희를 국부라고 했고 그의 부인인 육영수를 국모라고 불렀다
나라의 아버지고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때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수령 아버지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전두환과 노태우가 7년 과 5년 동안 집권하면서
군인 출신 지배자들이 이어 나라를 통치했다
이렇게 군인들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한국 사회는 절대적으로 줄이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
지금도 줄이 없으면 자리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물론 한국 사회가 제도를 갖추기 이전에 급격한 현대화를 겪었으므로
이런 일은 필요악이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이 패망한 후 미국이 한국을 3년동안 점령했을때
일본 강점기 시절의 관리들을 등용했던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런데 문제는 이 군인출신 지배자들이 모두 이 줄을 마치 거미줄처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깔아놓았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사회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체육 등 어느 분야든지
줄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게 되었다
학연과 지연이라는 말이 그걸 증명한다
우연인지(아니겠지만) 군인 지배자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행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관리중에서
4급이상 별정직까지는 경상도 출신이 절반이 넘는다
경상도 출신이 다른 지역 출신보다 더 인재가 많은 것은 물론 아니다
지연이라는 줄을 이용해 득을 본 것이다
mb정권 들어서 고소영 내각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것도 역시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지역 출신들을 주로 등용한 것 때문이다
이외에도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의 인적 구성이 줄 잘댄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사회는 아무래도 건강해 질 수가 없다
공정성과 다양성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
부산 저축은행 사건은 공정성이 무너진 케이스다
부산 저축은행은 금융감독 위원회의 감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해 찾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파산선고를 했다
은행장이나 은행의 고위 관리와 줄이 있었던 부자들은 모두 돈을 회수했지만
퇴직금을 맡긴 사람이나 전세금을 넣어 둔 사람 심지어 노점상을 하며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돈을 넣어 두었던
줄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날렸다
다양성 파괴는 탤런트 유인촌이 장관자리에 올라서 한 일이 얼른 떠오른다
유인촌은 잔여 임기 여부에 상관없이 문화예술계의 모든 단체장의 옷을 벗겨버렸다
북한의 문화 예술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 찬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듯이
mb의 뜻에 벗어난 문화 예술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력선언이었다
이와같이 줄이 만든 사회는 부조리한 모습을 띠게 된다
공정성도 보장이 안되고 다양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줄이 기독교계에도 보인다 그것도 매우 뚜렷하게 말이다
줄은 어쩌면 다른 분야의 사회보다 기독교계가 더 심각한 문제일지 모른다
기독교는 줄대기를 하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건강하지 못한 줄대기 문화를
없애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줄대기라는 세상의 처세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솔직해보자
한국의 많은 교회는 목사자리가 각 교단의 권력자들 손에 의해 배급이 된다
개척도 교단이나 모교회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이민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목사를 청빙할 때
어떤 경우는 추천 형식을 빌어 서류 심사에서 미리 어떤 제한이 생긴다
일종의 수의계약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때 권력자의 안보이는 힘이 작용한다
매년 신학교에서 졸업생은 배출되는데
전국 교회의 사역지는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자리를 배급하는 힘이 있는 사람에게 줄을 대어야 한다
자신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겠지만 나눠 먹기에 불과하다
권력은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그 권력이 교회에서는 권력이 아니라 은혜고 사명이다
그런데 은혜의 사명을 권력으로 알고 사역 자리를 배급하니까
기독교계에도 그 권력에 줄을 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추수할 때에 일꾼이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오늘의 현실을 예측 못하신걸까
신학교 졸업생에 비해 사역자리가 적으니 목사와 전도사가 밟히고 차일 정도로 많다
어느 교회는 교인 수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수많은 목사와 전도사들 중에 예수님의 "일꾼이 없다"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는 집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목사님들은 한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읍니다 목사님들이 평신도들보다 신앙이 좋다고 믿는 거지요"
오늘도 어디를 가야 득이 있을까를 고민하는 목사 전도사들이 있을 것이다
줄을 찾는거다
하지만 줄을 찾고 있거나 줄대기를 하려고 하는 목사나 전도사들은
집사님들의 눈에는 신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목사니까 목사라고 부르고 전도사니까 전도사로 불러주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 득이 될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어디를 가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바른 신앙이다
그리고 그런 바른 신앙은 목회 성공을 약속한다
물론 수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계시록의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교회의 목회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초라하고 보잘것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구보다도 큰 믿음을 가졌던
그리스도께서 인정한 목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일꾼은 많으나 추수할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눈에는 이 많은 일꾼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추수할 곳이 아니라
자기들의 세상 땅 경작하러 간 것으로 보일 것이다
줄
끊어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공정해야 하고 다양한 모습이어야 한다
기독교계의 높으신 양반들은 열매로 보아서 찍혀 불에 던지울 나쁜 나무일 가능성이 매우 짙다
중세의 카톨릭 시절처럼 말이다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지는 못할 망정
자리 확보하자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줄대고 하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역사는 증거한다
이런 악은 아래에서부터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