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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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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 얘기해보자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것 맞고 목사가 아니라 먹사들인 것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한국사회에서의 교황에 대한 영웅화작업을 수용해야 하는가


2차대전때 교황청 대사는 히틀러가 보낸 독일대사와 만나 협약을 체결하면서 히틀러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치를 지지하고 그들이 벌이는 전쟁과 전쟁을 통한 대량학살에 신앙적, 신학적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독일의 한기총 대표 밀러 목사도 동일한 짓을 했음도 밝힌다) 물론 교황청 대사는 교황이 파견한 것이다.


예수가 말하기를 여우도 거처할 굴이 있는데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고 또 자신을 찾아온 요한의 제자들에게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찾으려면 왕궁에나 가보라는 말을 했다. 그런 왕궁에 화려한 금 장식이 달린 옷과 모자를 쓰고 먹고 입는 것조차 자신의 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교황이다. 그런 그가 누리는 권력은 미국대통령을 압도하거나 적어도 버금간다. 카톨릭 세계에서의 교황은 정신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에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은 실로 매우 엄청나다. 인사에 대한 전권도 가지고 있는데 후보검증이나 청문회 뭐 이런 것도 역시 없다.


교황은 강대국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구제를 요청하고 강대국들이 힘(폭력)으로 만들어놓은 질서 안에서 평화를 외친다. 교황은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지만 여전히 가자지구를 외면한다. 예수도 난민이었다는 립서비스를 날리지만 아프리카의 대물림 빈곤과 전쟁난민들에게 등을 돌린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도 미국을 거론하지 않은채 두루뭉실하게 평화 운운하며 넘어가고 전범국가인 일본이 이웃의 피해국가들에게 용서를 빌지 않는 것에 대해 침묵한다.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수많은 거리의 부랑자들(홈리스들)이 인권사각지대로 내몰린지가 오래다. 여전히 인디언들은 여전히 보호구역이라는 곳에서 살아야 하며 미국에 섹스노예가 2십만에서 백만이라는 human trafficking 보고서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인권탄압에 대해서 교황은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카톨릭 내부도 살펴보자. 카톨릭은 사람을 계급화해서 나눈다. 여자가 사제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며 그런 논의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흑인이나 아시안들은 교황이 될 수 있는 법적장치는 아예 없다. 가장 아래 계급인 평신도는 번역이 아름답다. 원래는 laid people이라는 말이다. 그냥 자리를 뜨뜻하게 데피는 사람이라는 종교적 차별이 그 단어안에 내포되어 있다. '평신도여 병신도가 되지 말자'라는 말은 카톨릭 내부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카톨릭은 이와같이 계급사회이고 그 맨 꼭대기에 교황이 앉아 있는 것이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한국기독교는 매우 독하고 철저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반공이데올로기에 함몰된 한국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제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기독교가 소생가능성이 의심될만큼 타락했다고 해서 교황을 영웅시하고 우상화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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