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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줄여서 사칠논변(四七論辯)이라고도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봅시다

모든 철학은 당시 시대의 반영이며 철학자 개인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국이 망하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플라톤은 이상적인 자신의 국가를 그리게 되고 이러한 바람을 이데아철학에 투영시키고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현실에서 유대인들은 희망을 노래하는 메시야 사상을 정립하며

수많은 나라가 군웅할거하는 혼란기에 제자백가가 출현합니다,

 

성리학에 기초해서 건국된 조선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선비(성리학자)가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 아닌 공신들의 세상이 됩니다.

세조의 반란으로 또 다시 공신이 양산되고 선비들은 탄압에 직면하게 됩니다

연산군시대의 선비들에 대한 탄압은 별반 다르지 않았고 반정으로 등극한 힘없는 중종시대 역시 반정공신들의 세상였습니다.

그나마 중종은 조광조를 등용 역시 실패하면서 성리학의 국가이념은 그냥 구호에 불과한 공염불에 그치는 시대가 계속 됩니다,

 

선조가 즉위하면서 드디어 사림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선조는 즉위하자마자 훈구파를 대거 밀어내고 사림을 등용하면서 실질적인 유림의 정권이 탄생하게 됩니다.

(정란 공신들 역시 선조조에는 늙고 죽어서 힘도 없었겠죠 ^^)

 

즉, 선조 즉위초기는 사림에 대한 탄압이 중지되고 실질적으로 성리학이 조선의 주인이 되는 시기였습니다(조선 건국 200여년 만에)

 

이 시기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자가 바로 퇴계 이황(1501-1570)입니다,

당시 퇴계의 위상은 임금을 능가할 정도였고 왕이 정승자리가 공석이 될 경우 임명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먼저 퇴계에게 정승자리를 제수하고 퇴계가 거부하면 다른 사람을 임명할 수 있을 정도로 퇴계의 권위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배경 설명은 마치고 본격적으로 사칠논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칠논변(四七論辯)은 한중일 최고의 성리학 논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시대에는 선비들이 문집을 내는 것이 하나의 의무처럼 여겨지던 시기 였습니다.

정지운이라는 선비는 자신의 동생을 가르칠 겸 ‘천명도설’이라는 성리학 이념에 대한 문집을 집필하게 됩니다.

천명도설의 초고를 퇴계에게 감수를 부탁하게 되는데 정지운이라는 선비는 ‘천명도설’에 理氣論을 설명하면서

사단발어리 칠정발어기(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四端은 理에서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에서 發한 것이다)라고 써놓았습니다.

즉, 사단은 리에서 나온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원론적 설명을 문고에 써놓았습니다.

 

이것을 퇴계는 사단이지발 칠정기지발(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四端은 理가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가 發한 것이다)이라고 수정해 줍니다.

 

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四端은 理에서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에서 發한 것이다 - 정지운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四端은 理가    發한 것이고 七情은 氣가     發한 것이다 - 퇴    계

 

둘 사이는 미묘한 차이가 있죠

정지운은 四端은 理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고 퇴계는 四端이 理라는 뉴앙스가 강합니다.

즉, 퇴계는 정지운의 글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더 명확히 氣와 理를 구분한 것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군자는 理가 발현한 것이고 소인배는 氣가 발현한 것이다

즉, 군자인 선비(사림)는 소인배(훈구파)와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명확한 이원론적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기독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신자들은 하느님이 창조했고 지옥 갈 비신자들은 마귀가 창조했다는 주장과 비슷하겠죠 ^^)

여기서 잠깐 퇴계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든 철학자의 주장은 개인의 경험과 시대적 환경에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퇴계가 태어난 1501년은 연산조 7년으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갑자사화는 훈구파역시 타격을 입게 됩니다)로 수많은 사림들이 죽어나가던 시기였고 퇴계의 나이 10대후반 20대초에는 조광조를 비롯한 수많은 사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옆에서 목격한 당사자였습니다.

더구나 친형인 이해는 을사사화로 처형되기까지합니다.

(아마도 소인배(훈구파)와 군자(선비)를 명확히 구분하는 심리가 이원론을 주장하는 원인 아닐까요-개인적 생각입니다)

 

정지운의 문고가 퇴계의 감수를 거쳤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선비들이 관심을 가지고 ‘천명도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선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氣가 발하고 理가 氣에 올라타는 것인데 왜 氣도 發하고 理도 發하는 二元論을 주장하냐는 것이죠

 

군자가 됐든 소인배가 됐든 모두 氣가 發한 것인 인데 퇴계의 주장은 정통과 다르지 않냐는 수근거림이 중에 기대승이 나서게 됩니다.

 

외우고 갑시다 ^^ ----------------------------------------------------------------------------------------------------------

- 모든 만물은 氣가 發한 것이다            - 기발리승일도설 (氣發理乘一途說) 기대승 이율곡/기호학파

- 四端은 理가 七情은 氣가 發한 것이다 -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이황 / 영남학파

--------------------------------------------------------------------------------------------------------------------------------

그건 아닌거 같은데 라고 기대승이 딴지를 걸면서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이 시작됩니다.

 

6번에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온 나라의 주목을 받게됩니다,

요즘말로하면 인터넷상에서 서로 댓글을 달고 논쟁을 하면서 조회수가 1억이 넘어가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6회의 편지가 오가고 퇴계가 자신의 주장을 조금 굽히면서 1559년1월5일 시작된 논쟁은 1566년11월 6일 종료됩니다.

 

1572년 이율곡과 성흔간에 2차 논변이 또 일어나지만 결론 없이 끝납니다,

재미있는 것은 율곡과 성흔은 평생동안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간에도 논쟁을 할 정도로 학문적 고집은 양보하지 않지만 세상이 떠들썩 할 정도의 논쟁을 하면서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개인적인 우정을 지켜나가는 조선의 선비 정신을 보면서 감히 지금 시대의 우리가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퇴계의 주장도 이해는 가지만 원칙적인 부분에서는 기대승의 사단칠정 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 理氣論에 더 부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논쟁의 과정은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되실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논변의 내용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퇴계의 논쟁에 임하는 자세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기대승은 이황의 문하생 출신으로 이황과 기대승의 위상을 요즘 말로하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명문대 교수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1학년 학생간에 논쟁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문하생였던 기대승의 이의 제기는 자신의 귄위로 얼마든지 깔아 뭉게거나 기대승을 학계에서 매장 시킬 수 있었고 벼슬로 봐도 기대승의 경우 종9품의 미관 말직 였습니다.

그러나 평소 퇴계 자신의 지론이 지행합일의 자세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논쟁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의 학자들의 위대함과 열린 자세에 감동을 느낍니다,

 

또한 임금도 어쩌지 못하는 권위를 가지 대학자이며 자신의 스승였던 퇴계에게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는 과감히 아니다를 외치는 기대승의 모습에서 권력가진 기득권에 눈치나 보고 있는 우리에 허약함에 허탈함과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평소 선비를 고집불통에 자기 주장만하는 오만한 인간으로 느끼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떤 기독교인들 보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상대방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니하면 스스로 목습을 내놓는 선비들을 보면서 내세가 보장된 기독교 인들의 순교보다 어떤 보장도 없이 진리에 목숨을 내놓은 선비들이 100배는 위대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고봉과 퇴계가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당시 주고 받은 몇편의 편지를 소개드립니다.

 

읽으시면서 피터지는 논쟁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만 외치고 불상에 페인트를 뿌리고 사찰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단군상에 목을 짜르는 기독교인들의 독선을 반성 했으면 합니다.

 

 

* 고봉(기대승)이 퇴계에게 *------------------------------------------------------------------------------------------------------------------

 

선생님께 올리는 글

 

아침에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으심을 받잡고 또 이어서 편지를 받으니 우러러 감격했고 또 위안이 됩니다

 

앞서 선생님 안위에 절하고 오래된 회포를 풀었으니 제게는 참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밤이 깊었고 조용한 틈을 얻을 수가 없어 가까스로 잠시 모시고 정답게 말씀을 나누었을 뿐인데 마치 꿈결 처럼 황홀했습니다.

다시가서 뵙고 싶었는데에도 일이 바빠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저 한탄 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마침 성균관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뵈올수 잇었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수척해지신 듯하여 정말 제가슴이 근심스러웠습니다.

 

바라건데 모든일을 다 떨쳐버리시고 몸을 조리하시는데 더욱 힘쓰시기를 청해 드립니다

함부로 말씀을 올렸으니 무례하고 경솔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것을 감히 말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너그러이 살펴 주십시오

 

삼가 절하며 글을 올림니다. 정묘년 7월20일 후학 대승이 절하여 올립니다. 벽제관에 등잔 밑에서 서둘러 적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글가운데 썼다가 지운곳이 많아 더욱 송구합니다.

 

-중략-

 

 

* 퇴계가 고봉(기대승에게) *----------------------------------------------------------------------------------------------------------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기정자(기대승)의 안부를 묻습니다.

 

헤어진 뒤로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어느덧 해가 바뀌었습니다. 어제 박화숙을 만나 다행히 그대가 부탁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에 매우 위안이 되었습니다.

영예롭게 돌아온 뒤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나날이 더욱 귀하고 풍성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겉으로 처지가 바뀔수록 안으로 더욱 반성하고 보존함은 모두가 덕에 다가가고 어짊[仁]을 익히는 경지이니, 그 즐거움에 끝이 있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갈 곳을 몰라서 부딪히는 일마다 잘못되었고, 병은 깊어져 고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의 은혜는 거듭 더해졌습니다. 정성을 다해 벼슬에서 벗어나기를 빌었습니다만 모두 쓸데없었습니다.

공조(工曹)가 비록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찌 제가 병을 다스리는 곳이겠습니까? 그래서 물러날 것을 꾀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처럼 소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오히려 물러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처세의 어려움이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지난번에 비록 만나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기는 했어도, 한 순간의 꿈과 같이 짧아서 의견을 깊이 물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기쁘게 들어맞는 곳이 있었습니다. 또 선비들 사이에서 그대가 논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스스로 전에 말한 것이 온당하지 못함을 근심했습니다만,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서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理)인 까닭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현은 기(氣)와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 이처럼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왕구령에게 보내는 편지[與王龜齡書]’ 가운데 ‘고인(古人)’이 잘못 합해져 ‘극(克)’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그대에게서 듣고, 지난날의 의심이 곧 풀렸습니다.

 

처음 만나면서부터 견문이 좁은 제가 박식한 그대에게서 도움 받은 것이 많았습니다. 하물며 서로 친하게 지낸다면 도움됨이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한 사람은 남쪽에 있고 한 사람은 북쪽에 있어, 이것이 더러는 제비와 기러기가 오고가는 것처럼 어긋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달력 한 부를 보내드립니다. 이웃들의 요구에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참 많습니다만 멀리 보낼 글이니 줄이겠습니다. 오직 이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삼가 안부를 묻습니다. 기미(己未)년(1599) 정월 5일, 황(퇴계)은 머리를 숙입니다.

 

 

* 퇴계가 고봉에게 *---------------------------------------------------------------------------------------------------------------------------------

 

명언에 절하며 답합니다.

동호의 배위에서 나누었던 꿈결속에 되살아 나니, 봉은사까지 따라와 묵은 하룻밤의 뜻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서로 취해 말없이 바라보며 천리의 이별을 다 이루었습니다.

 

손수쓰신 편지와 아울러 시 한편을 받으니 마치 다시 얼굴을 대하는 듯하여 참으로 위로되고 다행스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중략-

----------------------------------------------------------------------------------------------------------------------------------------------------------

* 벼슬로 봐도 자신은 장차관급인 퇴계가 9품의 미관말직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조선 선비의 문향(文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

 

 

 

Screenshot_2015-09-20-16-14-44-1.png

 

 

 

- 덧붙임1 -

 

경상도를 근거로 했던 퇴계의 영남학파는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선비들이 일본에 끌려가게 됩니다.

영남지방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 충청 지역 보다 피해가 켰고 일본군의 주둔 기간도 가장 길어서 선비들의 피해도 가장 켰습니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영남학파 선비들은 일본에서 성리학을 가르치게 되고 일본의 성리학은 영남학파에 의해 시작됩니다

일본군 포로였던 강항이 일본 성리학의 시조로 지금도 일본에서 추앙되고 있고 퇴계의 경(敬)사상('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공경하며 인간을 공경한다)이 일본 경제 개발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하는 일본 학자도 상당수 됩니다

 

 

- 덧붙임2 -

 

이황과 각을 새웠던 이율곡을 서인의 시작으로 볼수 있다.

이황의 영남학파는 남인과 북인 계열로 나뉘어지고 언행일치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황의 정신을 이어받아 많은 의병장을 배출하기도 한다

남인 계열은 조선말기에 정권에서 완전 소외되면서 고증학을 받아들이거나 천주학을 받아들여 조선말기 기독교 순교자들을 배출하기도 하게 된다.

 

흔히 당파 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선조 이후 조선은 대한제국까지 서인이 계속 집권했고 광해군 당시 의병 출신들의 북인이 잠깐(인조반정으로 북인들은 완전히 퇴출됩니다) 그리고 숙종때 남인이 잠시 정권을 잡았던 시기(장희빈 아시죠 ^^)를 제외하고는 계속 서인이 집권 세력으로 조선을 경영하게 된다.

마지막 서인의 수장이 바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입니다(노론계열)

 

그렇다면 조선이 성리학으로 망했을까???

 

물론 교조화된 성리학에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중국의 왕조의 수명이 평균 200여년인 것을 감안하면 성리학에 입각한 선비정신이 조선을 500년간 존속된 원동력 아니었을까?

  • 시냇물 2015.09.27 01:09
    학문적인 조선역사의 맥락을 알 겉도 같씁니다.
    감사합니다.
  • 쥰(joon) 2015.10.08 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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