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10편 - 초기 교회의 모습 / 디다케 (Διδαχή)

by 쥰(joon) posted Nov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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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불교, 그리스를 돌아서 드디어 기독교 관련된 내용이 시작입니다. ^^

(이제 슬슬 욕먹겠네요)

 

오늘은 아마도 개신교인들(특히 평신도)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디다케라는 책을 소개 할까합니다.

(제가 작년 비밀해제 게시판에서 잠깐 언급했던 책입니다)

천주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최초의 교리문답서(실제로 초기 교회에서는 디다케를 교육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또는 기도문, 개신교식으로 이야기하면 초기 교회의 규례집 정도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디다케 (Διδαχή)라는 뜻은 헬라어로 가르침 교육이라는 뜻으로 대부분의 성서처럼 일단 저자는 미상입니다.

쓰여진 시기는 마태복음 이후라고 추정하고(주기도문의 형식이 마태복음 내용을 비슷)내용을 보면 AD100년경 확립된 교계 모습보다 초기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80-100년 사이에 시리아 시골(교회)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부학자들은 4세기에 쓰여지거나 가필된 문서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일요일을 주일 개념으로 기록한 부분이 나오는데 실제로 일요일이 주일개념이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이 처음였으므로 4세기 이후로 주장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1세기경 쓰여진 문서를 4세기경에 가필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2세기 3세기 기록에도 인용구가 남아 있고 4세기를 배경으로 해야만 해석되는 부분도 있어 원래 1세기경 쓰여진 문서를 4세기경 가필 편집 한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서의 경우도 상당수는 후대로 오면서 가필 편집되엇고 디다케 역시 마찮가지로 보입니다)

 

마태복음을 일부 차용한 것을 보아 마태복음 보다 집필 시기가 늦다고 보기 때문에 마태복음이 쓰여진 AD80-9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이고 순회 전도자가 거의 없어진 AD110이전에 쓰여졌고 일부 4세기에 가필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4세기까지 외경 또는 정경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지만 내용이 파편만 남고 소실되었다가 1873년 4세기 본이 발견 되엇습니다.

(클레멘스(150-160/신학자), 에우세비오스(263~339/팔레스탄인의 교부). 아타나시오스(295~373/알렉산드리아 주교)는 디다케를 정경 또는 중요한 외경으로 인정하는 인용을 남기고 있습니다)

 

동서카톨릭에서는 최초의 교례집으로 중요성을 가지지만 개신교에서는 교회사 또는 예배학 전공자분들 외에는 별로 읽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서방카톨릭교회에서는 ‘디다케’라는 잡지도 출판되는 등 어느 정도 익숙한 책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도 카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분도는 베네틱토의 차음으로 베네딕트 수도원 계열의 출판사/4세기 헬라어본)에서 출간한 것이고 아마도 개신교계열에서는 남아공신학교 교수인 김재수 교수가 출판한 것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내   용 -

 

1-6장은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두가지 길, 생명과 죽음의 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유대교적 색체와 기독교적 색체가 혼재해 있고 복음서 내용과 동일한 부분도 상당수 보입니다)

7-15장은 주로 교회의 전례와 교회의 운영에 관한 내용이 쓰여져 잇습니다.

16장은 재림에 대한 내용입니다.

 

신학적으로는 바울이나 요한의 신학적 색채가 보이지 않고 마태복음의 영향을 많이 받은 텍스트입니다.

4복음서중 마태복음에서만 형용사로 쓰여진 ‘완전한(τελειος/텔레이오스)’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주기도문의 형태도 마태복음과 2단어의 격만 바뀌고 동일한 형태로 쓰여져 있는 등 미테복음의 영향 아래있다고 봅니다.

 

 

- 중요성 -

 

디다케의 역사문화적 중요성은 1-6장 보다는 7-15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시대(예수의 제자들이 직접 교회를 이끌어 나가던 시대)직후의 교회 모습을 적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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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에는 초기 침례의 형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제가 가지고 있는 분도출판사 본입니다)

 

‘세례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세례 주시오. 이 모든 것들을 먼저 말하고 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물로 세례 주시오. 만일 살아 있는 물이 없으면, 다른 물로 세례 주시오. 찬 물로 할 수 없으면 더운 물로 하시오. 둘 다 없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머리에 세 번 부으시오. 세례 전에 부세자와 수세자는 미리 단식하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으면 (미리 단식하시오.) 당신은 수세자에게 하루나 이틀 전에 단식하라고 명하시오’

 

* 살아 있는 물이란 흐르는 물을 이야기 합니다.

따뜻한 물로 주는 세례는 아마도 환자들을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8장에는 금식과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러분단식은 위선자들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주간 둘째 날(월요일)과 다섯째 날(목요일)에 단식하니까, 여러분은 주간 넷째 날(수요일)과 준비일(금요일)에 단식하시오. 또 여러분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주께서 당신 복음에 명하신 대로 이렇게 기도하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우리가 일용할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하듯이 우리에게도 우리 빚을 용서하시며,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세 번 이렇게 기도하시오‘

 

* 8장에서 이야기하는 위선자들이란 유대교인 또는 바리세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단식을 속죄일로만 한정하지만(레위기 23:14) 바리세인들은 매주 월, 목요일 2일간 단식을 하였습니다.(누가 18:12)

제가  이 책에 유대교적 색체가 있다고 한 것은 유대교를 따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유대교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내용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단식에 관한 내용이 그렇습니다.

유대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위선자라거나 유대교는 월,목단식하니 우리는 수,금 단식하자라는 내용이 있을 필요가 없겠죠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4복음서에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잇습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이 초기형태에 가깝고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이 후기행태에 가깝습니다.

 

누가복음 주기도문은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주기도문과 디다케의 주기도문을 비교해보면 마태의 주기도문의 첫문장인 ‘하늘에 계신’의 하늘이 복수형으로 쓰여져 있지만(한글성서에는 단수로 번역했지만)디다케는 단수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유대교적 개념으로는 물이 둘로 갈라져 하나는 하늘이 되고 하나는 바다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복수로 썼다고 주장하는 분도 계신데 그렇다면 하늘에 계시고 바다에 계신 하느님???글쎄요???)

 

마태에서는 '용서'를 과거 완료형으로 쓰고 있지만 디다케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디다케에는 마태본에는 없는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송영구가 붙어 잇습니다.

 

하루 세 번 주기도문을 외우라는 것은 유대인의 일일 세 번기도(쉐마 이스라엘/신명기 6:4/שמעע ישרא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이 역시 유대교를 의식한 색체로 볼수 있습니다.

 

* 사실 주기도문을 기독교 신자들은 그냥 입에 붙은 것처럼 외우지만 주기도문의 해석도 쉽지는 않습니다.

실존적 해석과 종말론적 해석이 있고 번역 역시 정확한지 조차 불분명합니다.

번역 문제의 예를 들면 경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번역된 τὸν ἄρτον ἡμῶ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 δὸς ἡμῖν σήμερον·에서 ἐπιούσιον(에피우시온)의 경우 ‘일용할’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 단어 자체가 성서를 제외하고는 어떤 헬라어 문서에도 남아있지 않은 특이한 단어로 사실 정확한 뜻이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현재적 의미 즉, ‘일용할’로 번역 되어 있지만 미래적 의미와 현재적 의미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또 옆나갔네요 잡담입니다 ^^)

 

 

◎ 9장은 성찬식에 관한 내용이고 10장은 성찬 후 감사기도문 입니다.

구교나 신교나 성찬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초기교회의 성찬은 정말 먹고 마시는 한끼 식사였습니다.

오후 성찬에 일찍 오는 신자들이 음식을 다먹어버려 저녁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신자들이 왓을 때 먹을게 없어서 예배(성찬)를 늦추기도 했습니다.

 

‘9. 감사(례)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감사드리시오. 우선 잔(盞)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빵조각에 대히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10. 여러분은 만족히 먹은 후에 이렇게 감사드리시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 마음에 머무르게 하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해, 또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지식과 믿음과 불멸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전능하신 주재자님, 당신은 당신 이름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양식과 음료를 주시어 즐기게 하시고 당신께 감사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종을 통하여 우리엑 영적 양식과 음료와 영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당신께 감사드리는 것은, 당신이 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주님, 당신 교회를 기억하시어 악에서 교회를 구하시고 교회를 당신 사랑으로 완전케 하소서. 또한 교회를 사방에서 모으소서. 거룩해진 교회를 그를 위해 마련하신 당신 나라로 모으소서.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느님 호산나! 어느 누가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여러분은 예언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감사드리도록 허락하시오‘

 

* 유대교적 전통에 따르면 식사가 끝난 후 찬양기도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ברכת המזון -grace after meals) 9장은 식사(성찬)이고 유대교 정통처럼 10장은 감사기도가 붙어 잇습니다.

112년 로마의 터키 총독인 플리니우스가 로마에 보낸 보고서를 보면 기독교인들은 아침에 모여 예배를 보고 저녁에는 모여서 먹고 마시는 회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장에 ‘예언자’라고 번역했지만 요즘 말로하면 목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순회 전도자(부흥강사??)와 고정 전도자(담임목사??)두부류가 잇었습니다.

 

디다케와 신약에 쓰여진(또는 70인역 번역에서는 선지자로 번역)예언자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포테스/προφήτης)는 πρό (프로/앞에) φημί (훼미/알게하다)의 합성어로 (하느님의 뜻)을 먼저 알고 타인이 이를 알도록 전한다는 뜻입니다,

즉,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이라는 말은 앞일을 예견하는 점을 치거나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예언자(선지자)들의 예언은 모두 다 죄인들의 멸망과 회개의 요구였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몇달전 한국에 몇일날 전쟁난다고 예언 했던 홍모 전도사 또는 가끔 교회에서 점치 듯이 미래를 본다는 영빨 좋다는 분들 제가 보기에는 다 가짜입니다.

(절에서 점봐주는 스님 역시 다 가짜입니다. 싯다르타(부처)를 따른다는 스님이 싯다르타가 금지한 점치는 짓거리를 한다면 그 스님속에는 부처가 없는 땡중입니다 뱃속에 애기 없는 임산부가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이야기가 산(山)으로 갔네요 지송 ㅜㅜ

 

 

◎ 11장부터는 교회의 규범이 나열됩니다.

 

‘11. 누가 만일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을 가르치러 여러분에게 온다면 여러분은 그를 받아들이시오. 그러나 만일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돌아서서 파괴시키려고 다른 가르침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마시오. 그러나 주님의 의로움과 지식에 보탬이 되도록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를 마치 주님처럼 받아들이시오.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관해서는 복음의 지침에 따라 이렇게들 하시오.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사도는 마치 주님처럼 영접받을 일입니다. 그는 그러나 하루만 머물루야 합니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러도 됩니다. 만일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날 때에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영으로 말하는 모든 예언자를 여러분은 시험하거나 판단하지 마시오. 사실 모든 죄가 용서받겠지만, 그런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영으로 말한다고 해서 다 예언자가 아니고 오직 주님의 생활 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그 생활 태도로써 밝혀질 것입니다. 식탁을 (마련하라고) 영으로 명하는 모든 예언자는 바로 그 식탁에서는 먹지 않습니다. 만일 먹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예언자가 만일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인정받고 진실한 모든 예언자가 지상에서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기) 위해서 행하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것들을 행하라고 가르치지 않더라도 여러분에게 심판받지 말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심판받습니다. 그것은 옛 예언자들도 그렇게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영으로 말한다면서 “내게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을 주시오” 하거든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빈궁한 이들을 위하여 달라고 하거든 아무도 그를 심판하지 마시오‘

 

* 11장은 순회 전도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흘을 머무르면 거짓예언자라는 것은 꼭 3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뜻으로 봐야겠죠

(불교에서도 탁발을 7집 이상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죠)

복음서에도 전도자의 소지품에 관한 내용이 나오죠 (마태 10:9, 마가 6:8, 누가 9:3, 10:4)

 

식탁을 마련하라고 하고 자신이 먹는다면 거짓 예언자라는 구절은 좀 해석이 분분 합니다.

가난한자를 위한 구빈자 식탁(가난한 자를 위한 기금, 성금으로 해석될 수도 잇습니다)을 마련하라고 자신이 먹는다면 가짜 예언자라는 해석도 잇고 헬라본이 아닌 콥트본 디다케에는 먹지 않는 예언자가 가짜라고 기록되어져 있어 해석이 분분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가난한 자를 위한 식탁을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1장 마지막에 ‘빈궁한 이들을 위하여 달라고 하거든’이라는 문장의 선행문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 12장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인 교우 접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12.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로 오는 모든 이를 받아들이시오. 그러고서 여러분도 판단 능력이 있으니 그를 시험하여 그가 옳은지 그른지 알아보시오.

오는 이가 여행자이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도우시오. 그는 혹 필요가 있더라도 여러분에게 이틀이나 사흘 이상은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그가 장인으로서 만일 여러분 중에서 거주하기를 원하면, 일을 하여 먹고 살도록 하시오.

만일 그에게 장인 기술이 없으면 여러분의 판단에 따라 보살펴 그리스도인이 여러분 가운데서 게으름을 피며 사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가 이렇게 하려 하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를 팔아 먹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자들을 조심하시오‘

 

*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을 연상하게 합니다.

12장 역시 공동체에 민폐를 끼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 13장은 교회에 상주하는 전도자에 관한한 내용입니다

당시에는 교회 공동체의 임직자(??)가 양육자(사도), 가르치는자(교사)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13.여러분 곁에 머물기를 원하는 참 예언자는 누구나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같은 모양으로, 참 교사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꾼이 먹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그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포도짜는 확과 탈곡장과 소들과 양들의 소출들 중 맏물을 모두 거두어 그 맏물을 예언자들에게 드리시오. 그들이 바로 여러분의 대제관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예언자가 없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오.〕

당신이 밀가루 반죽을 할 때에도 맏물을 거두어 계명대로 주시오. 같은 모양으로, 당신이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 그릇을 개봉하여서도 맏물을 거두어 예언자들에게 주시오. 돈과 의복과 모든 재산 중에서 당신 생각대로 맏물을 거두어 계명에 따라 주시오‘

 

* 포도, 소, 양이 맏물을 논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시골교회 공동체의 이야기로 추정 합니다.

맏물 이야기는 민수기 15장 20절을 연상하게 하고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다케가 유대교적 색체가 강하다는 이유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대도시(알렉산드리아 또는 고린도 등)의 교회 공동체의 경우 곡물이나 가축의 맏물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시골 공동체의 특성으로 보여집니다.

 

 

◎ 14장은 주일성수에 대한 내용입니다.

‘14.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자기 동료와 더불어 분쟁거리를 가진 모든 이는, 그들이 화해할 때까지는, 여러분의 제사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모임에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는 깨끗한 제사를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왕이며 내 이름은 백성들에게 놀랍기 때문이다. 주께서 말씀하시도다‘

 

* 포도주를 먼저 돌리고 주인이 큰빵을 나누어(떼고) 손님께 돌리는 행위는 사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식사 절차입니다.

 

바빌론 탈뭇에 보면

유대인의 회식문화는 전식(前食) 본식(本食) 후식(後食)으로 나뉘어 집니다

 

손을 씻고

전식으로 주인은 포도주 잔을 들고 찬양기도를 바친 다음 포도주를 마시고 큰빵을 들고 찬양기도를 바친 후에 빵을 나누어 모든 참석자들에게 돌리고

본식으로 고기 가루음식, 채소 등을 먹은 다음

후식으로 다시 포도주 잔을 들고 찬양기도를 바친 다음 포도주를 마시고 찬양기도를 드립니다.

주인이 큰빵을 나누면서 ‘우리 하느님이시요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땅에서 빵을 생산하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라는 찬양을 드렷습니다.

 

탈뭇은 유대인들이 구약 율법을 해석한 책으로 예루살렘판과 바벨론판이 잇습니다.

예루살렘판은 예루살렘의 랍비들이 바빌론판은 바벨론 랍비들이 해석한 것으고 바빌론 랍비들이 작성한 바빌론 탈뭇이 훨씬 밀도 잇고 내용도 광범위해서 바빌론판을 보통 기준으로 삼습니다.

 

디다케는 마태복음과 관련이 깊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고 예배에 참석하라는 구절에서 마태복음 5장 23-24절이 상기되지 않습니까?

 

14장의 주일 성수 문제로 이 문서를 4세기 문서로 보기도 한다고 앞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주일 성수는 콘스탄틴황제의 칙령에 의한 것이 최초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근거로 주일성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도행전 20장의 일요일 성찬은 바울의 환송 파티 성격이 강하고 매주 일요일 항상 모였다면 일부러 안식일 다음날 모였다는 기록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겠죠

고린도전서 16장은 일요일에 성금(헌금)을 저축해 두라는 의미이지 주일성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 15장은 교회 직분에 관한 내용입니다.

 

‘15. 여러분은 자신들을 위해 감독들과 봉사자들을 선출하되 주님께 합당하고 온순하고, 돈을 좋아하지 않고, 진실하며, 인정된 사람들을 선출하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예언자들과 교사들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무시하지 마시오. 그들은 예언자들과 교사들과 함께, 여러분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충고하되, 화내어 하지 말고 복음에서 여러분이 배운 것처럼 평화롭게 하시오. 다른 이에게 잘못한 모든 이에게는, 그가 회개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마시오. 그가 여러분에게서 말을 듣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여러분의 기도와 희사와 모든 행동은 우리 주님의 복음에 있는 대로 하시오‘

 

* 여기서 보면 일단 초기 교회는 지금의 교회처럼 단일 지도체제가 아닌 집단 지도 체제인 것을 알 수 잇습니다.

중간 단락에 ‘복음에서 여러분이 배운 것처럼’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복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다케는 마태복음과 관계가 깊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통 해석합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여러분의 기도와 희사와 모든 행동은 우리 주님의 복음에 있는 대로 하시오’는 역시 또 (^^)마태복음의 6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제가 디다케를 소개해 드린 것은 디다케가 전체 사본이 최근에 발견된 문서 중에 가장 신뢰도가 높고(일부 가필 흔적은 있지만 신구약을 막론하고 가필 편집 되지 않은 책이 거의 없습니다/욕먹을라나?)개신교인들에게 생소한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교회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고민만드리고 답은 안드리겠습니다  ^^

 

케리그마(κὴρυγμα/선포), 디다케(Διδαχή/교육)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교제) 디아코니아(διακονἰα/봉사)를 교회의 4대 사역 또는 4대 본질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뤄져야 교회이고 또한 이것들이 건전해야 교회입니다.

 

제가 몇 개월전 인터넷교회를 시작하는 황목사님께 질문드렸던 것도 인터넷을 통한 교회의 4대 사역이 가능할지 특히 모이기에 힘쓰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구현 가능할지 였습니다.

(지는 신자도 아니라면서 별걱정을 다한다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교과서는 교과서다워야 하고, 국가는 국가다워야 하고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인터넷교회인 작은자교회가 교회답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초기교회의 모습에서 쓰여진 문자가 아닌 뜻과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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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케 나머지 전문입니다. 4세기 헬라어사본을 정양모 신부가 번역한 텍스트입니다.

 

 

두가지의 길

 

머릿말

 

1.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인데, 두 길의 차이가 큽니다.

 

생명의길

 

생명의 길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당신을 만드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당신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또 무슨 일이든지 당신에게 닥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거든 당신도 남에게 하지 마시오.

이 말씀들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을 저주하는 이들을 축복하고, 여러분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단식하시오.

여러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은혜를 (베푼단 말입니까)? 이방인들도 그렇지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미워하는 이들을 사랑하시오. 그러면 원수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7)

당신은 육적․신체적 정욕들을 멀리하시오.

누가 당신의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쪽도 돌려 대시오.

그러면 당신은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천 걸음을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시오. 누가 당신의 겉옷을 빼앗거든 그에게 속옷마저 주시오. 누가 당신에게 당신것을 가져가면 되돌려 달라고 하지 마시오. 당신은 (그렇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청하는 모든 이에게 주고서 되돌려 달라고 하지 마시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선물들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계명을 따라 주는 이는, 그는 무죄하기 때문이니.불행하여라,

받는 이는. 그렇지만 누가 필요가 있어서 받으면 그는 무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가 없는 이는 왜, 무슨 목적으로 받았는지 셈을 바칠 것이며, 감옥에 갇혀, 자신이 행한 것들에 대해 조사 받고 마지막 과드란스까지 갚을 때까지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줄 것인가 알아낼 때까지 당신 자선금이 당신 손들에서 땀나게 하시오.”

 

2. 가르침의 둘째 계명입니다.

당신은 살인하지 마시오, 간음하지 마시오. 남색질하지 마시오, 음행하지 마시오, 도둑질하지 마시오, 마술을 하지 마시오, 요술을 하지 마시오.

낙태로 아이를 살인하지도 말고, 갓난 아이를 죽이지도 마시오, 이웃의 것들을 탐내지 마시오. 거짓 맹세를 하지 마시오,

 

거짓 증언을 하지 마시오, 욕하지 마시오. 악을 기억하지 마시오. 두 마음을 가지거나 두 말을 하지 마시오. 두 말 하는 것은 죽음의 올가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은 거짓되거나 헛되지 말고, 실천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욕심쟁이, 강탈자, 위선자가 되지 말고, 모질거나 건방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당신 이웃을 거슬러 악심을 품지 마시오. 어느 사람이든 미워하지 말며, 오히려 그들을 타이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당신 목숨보다 더 사랑하시오.

 

3. 내 아들아, 모든 악과 그 비슷한 것까지도 모두 피하라.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살인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열혈한이 되지 말며, 다투지 말고, 흥분하지 말라. 이 모든 것들에서 살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정욕에 불타는 자가 되지 말라. 정욕은 음행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또 음담패설을 하지 말며 음흉한 눈독을 들이지 말라. 이 모든 것들에서 간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조점가(鳥占家)가 되지 말라. 그것은 우상 숭배로 이끌기 때문이다. 주술(呪術)을 하지 말고, 점성술(占星術)을 하지 말고, 정화(淨化)를 하지 말며,

그런것들을 보거나 들으려고도 하지 말라. 이 모든 것들에서 우상 숭배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거짓말쟁이가 되지 말라. 거짓은 도둑질로 이끌기 때문이다. 돈을 좋아하지 말고 허영에 들뜨지 말라. 이 모든 것들에서 도둑질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불평하지 말라. 그것은 중상모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거만하지 말며 악심을 품지 말라. 이 모든 것들에서 중상 모략이 생기기 때문이다.

온유해야 한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하고 자비롭고 무사하며 조용하고 착해야 한다. 들은 말들에 대해 늘 경외심을 가져라. 네 자신을 높이지 말고 네 영혼이 불손하게 되지 않게 하라. 네 영혼이 교만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의로운 이들과 겸손한 이들과 교제하라.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생각하여, 네게 닥치는 일들을 마치 좋은 일들인 양 받아들여라.

 

4. 내 아들아, 네게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는 이를 밤낮으로 기억하며, 그를 마치 주님처럼 존경하라. (주님의) 주권이 이야기되는 그곳에 바로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거룩한 이들의 얼굴을 찾아 그들의 말에 의지하도록 하라. 분열을 일으키지 말고, 다투는 자들을 화해시켜라. 올바르게 심판하며, 범법들을 꾸짖을 때에 얼굴을 고려하지 말라. 될지 안 될지 의심하지 말라.

얻기 위해 손을 벌리지 말고, 주기 위해 오므려라. 네 손으로 (벌이한) 것이 있으면, 네 죄들을 속량키 위해서 주라.

주기를 망설이지 말며, 주면서 불평하지 말라. 보수를 후하게 쳐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자에게서 돌아서지 말며, 모든 것들을 네 형제와 함께 공유(公有)하고 네 것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불사하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니 하물며 사멸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쯤이랴).

네 아들이나 네 딸에게서 손을 떼지 말고, 어릴 적부터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쳐라. 같은 하느님께 바라는 이들인, 네 하인이나 여종에게 모질게 명령하여, 그들이 양편 위에 계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 없게 하라. 하느님께서는 얼둘을 보고 부르러 오시지 않고 영으로 준비시킨 이들을 부르러 오시기 때문이다.

너희, 하인들은 주인들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여기고 존경과 두려움으로 그들에게 복종하라. 너희는 모든 위선과, 주님께 기껍지 않은 모든 것을 미워하라. 주님의 계명들을 저버리지 말며, 보태거나 빼지 말고 전해 받은 것들을 지켜라.

교회에서 네 범법들을 고백하며, 언짢은 양심으로 너의 기도(모임)에 나아가지 말라. 이것이 생명의 길이니라.

 

 

죽음의 길

 

5. 죽음의 길은 이렇다. 무엇보다도 (이 길은) 악하고 저주로 가득 차 있다. 살인, 감음, 정욕, 음행, 도둑질, 우상 숭배, 마술, 요술, 강탈, 위증, 위선, 표리 부동, 교활, 오만, 악행, 거만, 욕심, 음담 패설, 질투, 불손, 교만, 자만, 두려워하지 않음이다.

선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들, 진리를 미워하는 자들, 거짓을 사랑하는 자들, 정의의 보수를 모르는 자들, 선과 옮은 심판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을 위해서 밤샘 하는 자들, 온유와 인내에서 멀리 있는 자들, 부질없는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 보수만을 좇는 자들,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들, 짓눌린 이들을 위해 애쓰지 않는 자들, 자신들을 만드신 분을 모르는 자들, 유아 살해자들, 하느님의 작품을 낙태시키는 자들, 억눌린 이를 짓누르는 자들, 부자들을 옹호하는 자들, 빈자들을 불법으로 심판하는 자들, 온통 죄악에 물든 자들이다. 아들들아, 이 모든 자들을 멀리하여라.

 

두 가지 길의 맺음말

 

6. 누가 당신을 가르침의 이 길에서 탈선시킬까 조심하시오. 그는 하느님을 떠나서 당신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일 주님의 멍에 전부를 질 수 있다면, 당신은 완전하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나마 하시오.

음식에 대해서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나 지도록 하시오.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아주 멀리하시오. 그것은 바로 죽은 신들을 섬기는 경신례(敬神禮)이기 때문입니다.

 

- 중 략 -

 

예수 재림

 

16. 여러분의 생활을 조심하시오. 여러분의 등잔불은 꺼지지 않게 하고 여러분의 허리띠는 풀어지지 않게 하여, 준비하고 있으시오.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시간을 여러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주 모여서 여러분 영혼에 요긴한 것들을 추구하시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여러분이 완전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믿음의 온 세월이 여러분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들에는 거짓 예언자들과 타락시키는 자들이 많아질 것이며, 양들이 늑대들로 바뀌고,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범법이 자람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박해하며 배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세상을 유혹하는 자가 마치 하느님의 아들인 것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며, 땅은 그의 손에 넘어가고, 그는 태초로부터 있은 적이 없는 만행들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 때에 피조물인 인간들이 시련의 불 속에로 들어갈 것이며, 많은 이들이 걸려 넘어지고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네 신앙에 충실히 머무르는 이들은 저주받은 그분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에 진리의 표징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첫째로 펼침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 것이요, 다음에는 나팔소리의 표징이, 세번째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부활이 아니라, 옛 말씀대로 "주님과 모든 성도들이 그분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

그 때에 온 세상은 주님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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