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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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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반드시 해석 되어야 하는 책입니다.

한나라 시대의 유학인 훈고학은 분서갱유로 말살된 공자의 어록을 발굴하고 해석하데 학문의 모든 초점을 맞춘 것처럼 성서를 읽는 기본은 해석에 있습니다.

성서는 신약은 2천여년 전, 구약의 편집연대는 2천5-6백년 전이나 됐고 한반도의 완전 반대 지역이고 문화적 배경도 완전히 다른 중근동 지역의 기록인데 그냥 읽고 문자 그대로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도 한반도의 기록이고 쓰여진지 9백년전 기록인데 아마도 그냥 읽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불가능한데 성서를 아무런 해석적 이해 없이 읽고 이해 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입니다.

 

2015-11-15 01.59.04.png

(케테프 힌놈 은박 문서 : 기원전 6-7세기 문서로 현존하는 가장오래된 성서 조각입니다. 민수기 6장24절-26절중 일부가 기록되어 잇습니다)

 

더구나 구약의 경우 전체 분량의 40-50%(분류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가 싯구로 쓰여져 있지만 번역된 한글 성경의 경우 그냥 서술형태로 번역되어 있고 신약의 경우 특히 4복음서는 구약을 배경으로 하거나 비유가 대부분입니다.

 

예수도 구약을 해석에 따라 가르치고 잇습니다.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누가 24:27)

예수도 엠마오 도상에서 제자들에게 구약을 설명(해석, 번역, 설명/interpret/διερμηνευσεν)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성 또는 지성으로 해석해서는 않될까요?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누가 24:45)

여기서 번역은 마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누스(νοῦς)는 이성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방언)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고전 14:14)

여기서 ‘내 이성’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누스(νοῦς)입니다.

 

즉, 성서는 성령으로도 읽고(해석하고)이성(지식)으로도 읽어야(해석)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16:13)에서 ‘인도하시리니’로 번역된 호데게오(οδηγεω)는 정보나 지식을 가르친다는 뜻으로 해석 번역의 행위를 말합니다.

 

즉, 성서는 성령으로도 읽고(해석하고)이성(지식)으로도 읽어야(해석)합니다.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을 신앙적 해석이라 하고 이성으로 해석하는 것을 역사적 해석 또는 계몽주의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해석이 건전하게 겸비 되어야 건전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둘이 상충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으로만 성서를 본다면 이성적 해석이 불경해 보일 수 있고 이성적인 해석만 한다면 신앙적 해석이 코메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우나 극좌 모두 사회를 망가트리는 것처럼 일방적 해석은 성서를 오해 할 수 있습니다.

(황목사님이 신앙적으로 말씀 하시니 저는 이성적이 해석에 좀 더 중점을 두겠습니다)

 

이 둘은 서로 보완 공존히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석하면서 읽어야할까요?

흔히 기존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불리우는 신천지, JMS 등등의 성서해석을 보면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하긴 신학을 공부했다는 일부 목사자들도 저놈들이 제대로 공부는 한 건지 돈만 주고 목사안수만 받은 건지 궁금한 먹사들이 상당수 됩니다. 1-2천만원만 주면 목사 자격증 막 뿌리는 군소교단이 상당수 된다는데)분들의 경우 귀가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실 수 도 잇습니다.

기존 교회에서 듣지 못했던 또는 알지 못하던 왜곡된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들먹거리며 말도 않되는 해석에 빠지는 분들이 상당합니다(정통 교단도 사실 피차일반이지만)

 

오늘은 성서의 해석에 관한 역사적 배경과 수천년 동안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서 인용구는 공동번역을 주로 사용하고 개역개정을 일부 사용할 예정입니다)

 

 

- 성서의 바른 해석을 위한 전제

 

4복음서의 경우 예수의 설교는 대부분 비유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마가 4:34)

즉, 비유로만 설교했다는 것은 복음서에 기록되어지지 않은 예수의 어록 역시 대부분 비유로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유를 어떻게 이해하여야할까요?

마가복음에서 예수 자신이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여야하는지 두 가지의 단초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신 씨뿌리는 비유를 이야기하면서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듣겠느냐?’(마가 4:13)

즉, 듣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비유의 해석이 어렵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도록 비유를 들엇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지 않느냐?’(마가 4:21)

 

즉, 해석은 이단이라고 불리우는 자들 또는 무언가 특이한 해석을 하고 있는 목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정상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라고 예수 자신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예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비유를 다 알아 들었을 것이지만 수천년 지난 지금은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확한 뜻이나 비유의 이면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 성서를 읽는데 꼭 해석이 필요할까요??

 

앞에서 해석이 쉽다면서 무슨 해석학이냐

또는 믿음(성령)으로 글자 그대로 읽으면 되지 무슨 학문(해석학/이성)으로 성서를 읽냐

성서를 학문(해석학/이성)으로 읽으면 지옥간다는 목사들까지 있는 것을 보면 그 목사들에게 너는 뭐 하러 신학대를 댕겼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해석이 필요 없을까요?

한글 성경 자체가 있는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고 해석을 통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즉,  성서 번역 자체가 해석입니다.

 

사무엘하 21장 19절을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곱에서 블레셋 군과 또 한 차례 싸움이 붙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이르의 아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다. (공동번역)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개역개정)

 

In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at Gob, Elhanan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killed Goliath the Gittite, who had a spear with a shaft like a weaver's rod (NIV)

 

 

And there was again a battle in Gob with the Philistines, where Elhanan the son of Jaareoregim, a Bethlehemite, slew the brother of Goliath the Gittite, the staff of whose spear was like a weaver's beam. (KJV)

 

도대체 엘하난이 죽인 것은 골리앗일까요 골리앗의 형제 일까요??

도대체 번역이 왜 다 다를까요?

 

당연히 히브리어 원문에는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 되어 잇지만 성경을 번역하면서 사무엘상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역대상 20장 5절을 차용해온 것입니다.

(ותהי־עוד המלחמה בגוב עם־פלשתים ויך אלחנן בן־יערי ארגים בית הלחמי את גלית הגתי ועץ חניתו כמנור

ארגים׃/And there was again war with the Philistines at Gob; and Elhanan the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slew Goliath the Gittite, the staff of whose spear was like a weaver`s beam)

 

즉, 번역을 하면서 해석을 한 것이지요

(문서비평가들은 골리앗을 죽인 것은 엘하난으로 보고 있으며 다윗의 이야기는 후대 첨가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성서는 어떻게 해석되어 왔을까요?? (성서해석의 역사) -

 

- 제2성전기의 성서 해석

 

제2성전기는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시기 였습니다,.

제2성전기란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된 bc 516부터 이스라엘이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ad70년의 시기를 이야기합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으로 일부 유대인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이스라엘 지도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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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롯신전)

 

이 시기에 전승 또는 개별 텍스트로 존재하던 구약이 거의 완성 편집되어가던 시기 였습니다.

bc 586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노예가 된 유대인(남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신에 대한 불순종에서 찾았고 신의 뜻을 알고자 성서(구약)에 대한 연구, 해석과 실천에 더욱 노력하게됩니다.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 우리 앞에 법을 펴시고 그대로 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온 이스라엘이 주의 법을 어기고 말씀을 듣지 않아, 죄를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내리시겠다고 하신 저주를 하느님의 종 모세의 법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큰 재앙을 그대로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천하에 다시 없을 재앙을 예루살렘에 내리셨습니다. (다니엘 9:10-12)

 

(성전이 파괴되어 제사 중심의 종교가 성서(구약/말씀)중심의 종교로 중심점이 옮겨가게 됩니다)

 

제2성전기에 쓰여진 다니엘서와 역대서는 먼저 쓰여진 구약의 책들의 해석을 통한 소통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하느님이 선택한 선민의 지위에서 노예가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거처인 성전의 없어지고 제사도 더 이상 드릴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역대서를 통해 그동안의 자신들의 역사를 재해석하게됩니다.

 

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무엘하 7장16절을 보면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나단이 다윗왕(조)에게 전달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서의 계시는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시는 여지없이 깨져 버렸고 하느님의 계시로 믿던 다윗왕조의 영원함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립니다.

이 계시를 역대상의 기자(저자)는 역대상 7장 14절에서

‘내가 세워준 이 왕조, 내가 세워준 이 나라를 다스릴 직책을 그에게 맡겨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의 왕위는 길이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로 해석하게 됩니다.

 

사무엘에서는 ‘너(다윗)의 나라’이지만 역대상에서는 ‘나(하느님)’의 나라로 계시가 변경됩니다.

 

즉, 사무엘서에서는 다윗 개인의 왕조를 칭하게 되지만 역대상에서는 ‘나(하느님)’의 나라로 해석함으로서 다윗왕조가 망해도 계시가 계속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됩니다.

 

사무엘서는 일반적으로 신명기 텍스트중 하나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를 합쳐 신명기 텍스트라고 하며 bc550년경 쓰여진 것으로 선민사상을 강조하고 잇습니다

 

역대기는 사무엘서 보다 200여년 후인 bc350년경 쓰여진 것으로 보며 사무엘서와 열왕기의 재해석한 텍스트로 간주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에레미아 25장11절을 보면

‘모두 칠십 년 동안 바빌론 왕의 종노릇을 할 것이다’

29장 10절에는

‘너희가 바빌론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운 다음에야 약속대로 나는 너희를 찾아가 이 곳으로 다시 데려오리라’

 

여기서 70년을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되고(bc586)다시 두 번째 성전이 완성되는 시기(bc516년)으로 인식하거나 유대인들의 첫 번째 포로기(bc605년)부터 귀환이 시작된 (bc538년)으로 이해허는 것이 일반적엿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포로를 벗어났지만 다시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립니다.

더구나 에레미야 29장에서 이야기하는 ‘소망있는 미래를 주겠다’는 약속(계시)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70년 이후 해방과 번영이라는 예언이 이뤄지지 않아 이를 재해석할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70이라는 숫자를 70번의 주간(일주일 7일)으로 해석하면서 재해석을 통해 일흔 이레 즉, 490일 490년이라는 해석을 가능하도록 재해석하게 됩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다니엘 9장 24절

 

제2성전기 시대 유대인들은 성서를 읽으면서 텍스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할려고 노력하였고 원래의 문맥이 현재의 자신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적 의미가 오늘의 상황과 맞지 않거나 원문의 메시지를 얻는데 실패할 경우 또한 성서의 예언이 오늘의 상황을 설명해주지 못할 경우 본래적 의미에서 현재적의미로 바꾸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을 알수 가 있습니다.

 

텍스트 저자의 의도보다는 현재 자신들의 처한 처지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죠

 

한 가지 예를 들면 세례요한이 속한 에세네파인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인 ‘수도규범’(manual of discipline/사해문서)에 보면 이사야서 28장 16절의(보아라,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값진 돌을 모퉁이에 놓아 기초를 튼튼히 잡으리니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마음 든든하리라) 모퉁이돌을 자신들의 쿰란공동체를 지도하는 12명의 평신도와 3인의 제사장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이스라엘의 강건함을 상징하지만.... 과잉 해석으로 보여지지만 당시의 해석법은 성서를 오늘 우리에게 직접 주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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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사본)

 

제가 신약의 저자들은 난독증 환자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신약의 저자들 역시 제2성전기 시대를 살았고 신약에 인용된 구약의 구절 역시 본뜻과 상관없는 적극적 해석을 시도합니다.

 

마태가 호세아 11장 1절을 예수의 출애굽에 대한 예언으로 인용하고 있지만 원래의 문맥에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꾸짓는 내용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이사야서 49장 8절의 ‘은혜의 때’를 예수와 함께하는 새로운 때로 해석하고 인용하지만 사실 이사야서의 49장 8절의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이스라엘의 귀환을 의미합니다.

 

제2성전기의 또 다른 해석법은 바로 ‘해석 전통’입니다.

 

해석전통이란 성서에 명시적인 기록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특정 해석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통방박사 세사람에 관한 해석 전통이 있습니다

성서 어디에도 동방박사가 세명이라는 구절은 없지만 우리는 무의식 적으로 세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쉬운 예가 되겠죠

(예물이 세가지라 동방박사를 셋으로 보앗고 점점 셋이라는 의식이 굳어지면서 이름까지(멜카이어, 벨사사르, 카스파)창작되어 전승 되게 됩니다. 사실 동방박사로 번역된 마고이(μάγοι)는 마고스(μάγος)의 복수형이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의미 합니다)

 

신약의 해석전통에 따른 구절을 몇가지 살펴보면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8절(이런 자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배반한 것처럼 진리를 배반할 것이며 정신이 부패해서 믿음의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에서 출애굽 당시 모세와 경쟁했던 이집트 마술사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약어디에도 이집트 마술사 이름은 나오지 않고

 

유다서 1장 9절(대천사 미가엘도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려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할 때에)에는 모세의 시체를 두고 천사와 마귀가 싸우는 장면이 언급되지만 신명기 34장5절에 모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기록만 있지 천사와 마귀가 싸웠다는 기록은 없으며

 

유다서 1장 14절-15절(에녹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님께서 거룩한 천사들을 무수히 거느리고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불경건한 행위와 불경건한 죄인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지껄인 무례한 말을 남김없이 다스려 그들을 단죄하실 것입니다)에 인용된 에녹의 예언도 구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예언입니다.

 

여기서의 인용구들은 제2성전기 당시 유대교 사제 또는 랍비들의 해석이나 외경 등을 인용한 것으로 성서(정경)에는 나오지 않는 텍스트이지만 신약의 저자들은 정경의 텍스트가 아니더라도 해석적 전통에 따라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초기 교회의 성서 해석

 

초기 교회에서도 성서의 현재적의미를 중요시하는 해석을 추구하엿습니다.

초기 교회의 성서 해석에 관한한 양대 산맥이라고 할수 있는 학파는 오리게네스(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디오도레(안디옥 학파)로 볼수 있습니다.

 

~ 오리게네스는 성서를 세가지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3대 의미론)

 

첫째 문자적 의미 둘째는 도덕적의미 셋째는 영적의미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서는 문자적으로 서로 긴장되는(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모순’이라는 표현보다는 좀더 완환된 표현으로 ‘긴장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텍스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속에 영적인 진리가 숨어있다는 알레고리적 해석에 의존합니다.

 

~ 디오도레(안디옥학파)는 알레고리적 해석은 해석자(읽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우려가 있고 왜곡된 해석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 해석을 부정하지 않지만 영적 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적 이성적 해석을 거쳐야만 한다는 주장입니다.

(저도 이부분은 동의합니다 ^^)

 

 

- 중세의 성서 해석

 

오리게네스의 세가지 해석법은 중세에 오면서 교황 그레고리우스(504-604)에 의해 네 가지 해석법으로 정착됩니다.

첫 번째 문자적 의미, 두번째, 알레고리적 의미, 세 번째, 도덕적의미, 네 번째, 종말론적의미를 가지며 문자적 의미는 본래적의미 또는 역사적 의미라고 볼 수 있고 알레고리적, 도덕적, 종말론적 의미는 현재적 의미 또는 신앙적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제2성전기의 유대인들의 해석처럼 다중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알레고리적 의미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도덕적 의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종말론적의미는 무엇을 소망하여야 하는가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 성서의 예언의 의미는 어떻게 될것이다가(미래를 점치는 행위)아니고 어떻게 하여야만한다(must)입니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소망하여야 하는지 작은자교회 구성원 모두 고민하였으면 합니다. 특히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고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세의 성서 해석자들은 도덕적 의미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 수도원시대

중세의 철학 종교 등 학문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게됩니다.

물론 철학이 종교의 부속물(교부철학)로 전락해 버리고 종교가 모든 학문을 지배하게 됩니다.

수도원 시대 역시 다중적 해석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다중적 해석의 중점은 신앙적, 의미적 해석이 주류가 됩니다.

수도원시대에 대표적인 신학자인 비드, 휴고는 다중적 해석을 기본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상의 1장1절에 대한 해석을 보면 문자적으로는 엘카나(사무엘의 아버지)를 이야기하지만 두 번째의미는 선택자를 의미하고 세 번째 해석으로는 일관된 사람을 네 번째 의미로는 그리스도, 메시야, 예수를 암시한다고 해석합니다.

 

‘에브라임 산악 지대에 엘카나라는 수브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라마다임 출신으로서 에브라임 사람 수브의 현손이요, 도후의 증손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여로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스콜라학파의 신학자인 피터 롬바드는 과학적 역사적 접근 방법을 주장합니다.

도덕적, 의미적, 모형적 접근 방법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만약 부정한다면 화형됏겠죠 ^^)역사적, 문학적 해석을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의 여자는 잠잠하라는 문구는 교회에서 항상 잠잠하라가 아니고 당시 특수한 사건과 연결하여 특정 사건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라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성적 해석을 주장하게 된것은 12세기에 들어 수도원이 이성적 학문의 시작인 대학으로 바뀌는 시점과 일치하고 잇습니다.

 

~ 대학의 시작

 

학문을 중시하는 대학의 태동으로 성서의 해석도 점점 본래적의미(역사적, 이성적 의미)에 중점이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보나벤투라(스콜라 철학자/1217~1274 프란체스코회 총회장)는 하느님이 세분이고 세분 모두 중요한 것처럼 해석의 한 분야인 역사적의미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도덕적, 의미적, 비유적 해석(신앙적해석)도 중요하지만 문자적(역사적, 본래적 해석)이 교리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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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진술을 보면 ‘나는 유다인입니다. 나기는 길리기아의 다르소에서 났지만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믈리엘 선생 아래에서 우리의 조상이 전해 준 율법에 대해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고 (행전 22장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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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머리인 바울과 유대교 전통 랍비 복장을 하고있는 가믈리엘)

 

행전 5장 34절을 보면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던 율법교사 가믈리엘이라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의회원들 앞에 나서서’라는 구절을 보면 바울도 스스로 가믈리엘(가말리엘)의 제자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고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고 잇는 스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믈리엘은 사도바울의 스승이고 당대 최고의 유대인 학자로 랍비 힐렐의 손자이자 제자로 성서기록에 따르면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가 잡혀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백성들을 설득하여 사도들을 석방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전승에는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데 글쎄요)

 

그렇다면 신약의 대부분을 기록한 바울의 신학은 가믈리엘로부터 배운 성서 해석법을 토대로 할 것이고 가믈리엘은 조부인 힐렐이라는 유대교 최고 랍비에 학풍을 전승하고 있으므로 힐렐의 강의 노트를 보면 사도바울의 성서 해석법을 알수 있습니다.

 

힐렐은 예수와 동시대인으로 예수보다 연장자로 추정됩니다.

유대교는 당시 극단적 율법주의자인 샨마이(산마이파의 창시자)와 비교적 온건한 힐렐(힐렐파)이 양대 학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힐렐의 법통을 이어받은 힐렐의 손자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가믈리엘이고 가믈리엘의 제자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바울의 성서(구약)해석은 힐렐이 주장한 성서(토라)해석의 7원칙을 따르고 잇고 예수의 설교를 분석해보면 역시 힐렐의 성서해석법을 따르고 잇습니다.

 

(약간 전문적인 내용까지 들어가서 따라 오시기 힘드신가요?? ^^ 그냥 그런 것이 있구나 정도만 이해하셔도 됩니다)

 

힐렐의 성서해석 7원칙

 

1. 칼 바호메르(קל וחומר)는 히브리어로 ‘하물며’로 해석되어지며 ‘하물며’ 법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수의 설교 중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라는 구절을 보면 잘 이해가 되시죠?

예를 들면 (죄를 지은)다윗의 나라를 영원케 하시겠다는 하느님이 ‘하물며’ 우리(유대인)이 죄를 자복하면 우리도(유대인)영원케 하시지 않겠느냐라는 해석법입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이사야 51장 2절에 이사야서 저자는 유대민족의 이스라엘땅으로 복귀를 촉구하면서 아브람함 한 사람이 하느님의 촉구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어도 축복을 주셨는데 하물며 전 민족이 가나안으로 온다면 얼마나 축복을 주시겠냐고 기록하면서 칼 바호메르(קל וחומר)적 해석으로 아브라함의 가나안 행보를 해석하고 잇습니다.

 

2. 그제라 샤뱌(גזרה שבה)는 완전히 다른 본문이지만 같은 단어나 같은 어구가 사용되었다면 완전히 다른 두 본문 이라도 해석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의 탄생에 나오는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겟다’라는 문구가 삼손의 설화에 또 나온다면 사무엘도 삼손과 같은 나실인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3. 빈얀 압 미카투브 에하드’(בניין אב מכתב אחד)는 어떤 하나의 본문을 아버지 본문으로 놓고 다른 본문을 해석하거나 다른 의미로 인용하는 것이고

 

4. 빈얀 압 미쉬네 크투빔(בניין אב משני כתובים)는 어떤 두 개의 본문을 아버지 본문으로 놓고 다른 본문을 해석하거나 다른 의미로 인용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쓴 저자는 출애굽기 24장 8절의 ‘언약은 피로 새워진다’는 원리를 새 언약인 예레미야서 31장 31절-34절에 적용시킵니다.

그리하여 새 언약은 예수의 피로 새워졌다고 주장합니다.(히브리서 9장 11절-22절)

 

 

5. 클랄 우프랏(כלל ופרט ופרט וכלל )어떤 이야기에 대해 다른 본문에서 상충되는 부분이 있을 경우 양쪽 스토리중 구체적인 부분을 서로 보완시키면서 일반적 원리로 확대 시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말이 좀 어렵나요 ㅜㅜ

쉽게 이야기하면 1, 2 두가지 서로 상충되는 스토리가 있을 경우 1과 2를 서로 보완적으로 적응 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특수한 것을 일반화한다고 신학적으로는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과 2장의 다른 텍스트 이지만 창세기 2장의 텍스트가 1장을 구체화시킨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1장의 인간 창조를 2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창조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역사적 문서 비평적 해석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지만)

 

6. 카요쩨 보 밈마콤 아하르(כיוצא בו במקום אחר)서로 상충되는 텍스트가 잇다면 이 둘을 다른 제3의 텍스트를 적용하여 조화시켜 해석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레위기 1장 1절을 보면 하느님이 회막에서 이야기하고 잇지만(야훼께서 만남의 장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하느님이 두 거룹 사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거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너에게 명할 모든 일들을 일러주리라/공동번역 외의 한글 번역에서는 거룹(천사의 형상)을 그룹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영어의 group, 그룹이 아니고 천사의 형상 또는 중근동의 선한 신상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민수기의 저자는 회막에 들어가 두 거룹 사이에서 말씀하신다고 기록하면서 두 텍스트를 조화시킵니다.

(모세는 야훼께 올릴 말씀이 있을 때면, 만남의 장막에 들어가서 두 거룹 사이에 있는 증거궤 위 속죄판 위에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다/민수기 7장 89절)

 

7. 다바르 힐마드 메인야노(דבר הלמד מענינו)는 문맥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해석하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가장 근대적 계몽주의적 해석법이라고 볼 수 잇습니다.

제가 몇 달전 비밀해제에서 십리를 가자면 이십리를 가줘라라고 하는 해석을 헬라어 본문과 로마 식민지 당시의 상황을 비교해가며 남에게 잘해주라는 표현이 아니고 로마군의 징발에 대처하라는 예수의 조크라는 해석을 한적이 잇습니다.

이러한 해석이 다바르 힐마드 메인야노적 해석으로 후대에 근대 계몽주의시절 중점적 해석 방법엿습니다.

 

힐렐의 성서 해석원칙을 과잉적 해석이 가능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제라 샤뱌(גזרה שבה)적 해석을 제외하고는 문맥을 뛰어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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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1

 

조금은 과잉해석적인 요소가 강한 유대교적 해석은 예수를 포함해서 신약의 저자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이러한 성서해석이 현대교회에도 계속되고 잇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과잉 해석은 바빌론 유수와 그 후 이뤄지지 않는 신의 약속을 적절히 재해석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뤄졌습니다.

또한 과잉 해석으로 보이는 부분 역시 해석적 원칙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데로 이리 저리 성서를 이어 붙이는 해석은 불가능 합니다.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역사적 인문학적 해석을 통해 정확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바탕위에 현재의 자신과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해석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더붙임 2

 

신약 저자들의 구약 해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은 히브리서를 천천히 일독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히브리서의 구조는 ‘구약 인용- 저자의 해석’이 반복되는 구조로 사도시대에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잇습니다.

히브리서를 읽으시면서 혹시 좀 어렵다고 느끼신다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년 신약학 교수 한분과 십수명의 대학원생(대부분이 신대원을 졸업한 목사님들)이 한학기 동안 히브리서 해석법을 연구했었는데 한 학기에 겨우 9장까지 밖에 진도가 못나갔습니다.

쉽지 않은 책입니다. ^^

 

- 더붙임 3

 

그림 한장을 소개해 드립니다.

 

Screenshot_2015-11-15-02-52-11-1.png

 

램브란트의 그림이고 대머리에 백발인 사도바울은 성서(구약)의 한곳을 가르키면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고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 인데 사도바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성서(구약)구절을 손가락으로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적 또는 신앙적 논쟁은 항상 필요하고 이러한 논쟁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은 완전한 존재지만 인간은 항상 불완전함을 가지고 살아 갑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아무리 완전한 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그 이야기가 모두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2부는 다음주에 올리겠습니다,  허접한 글 읽으시는라 수고 하셨습니다 ^^

  • 차영배원주 2015.11.14 18:03
    저는 성경을 쉽게 읽으려 하고 어려운 것은 패스, 그래서 믿음도 단순하답니다.
    하지만 쥰님의 글 열심히 읽고 이해하도록 노력은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서요.
  • 쥰(joon) 2015.11.15 03:58

    연세도 많으셔서 읽으시기가 불편하실텐데 감사합니다.
    가능한 이해가 쉽도록 글을 올리는데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이해가 되시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질문남겨주시고 아니다 싶으신 부분이 잇다면 반론도 부탁 드립니다. ^^
    날씨가 추워지는데 건강 유의하시고 감사합니다.

  • 시냇가에심은나무 2015.11.16 02:26
    솔직히 불교 얘기는 뭔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못알아 먹겠더만 (더솔직히 말씀드리면 다 그말이 그말같고 그렇게 할수 있는 인간이 있을지 쫌 의심도 가고 뭐 그냥 휘리릭~~읽어보는 정도) 이번 말씀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는지라 쭈~욱 관심 갖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제 레이다망에 쬐께 걸린 구절이 있었는데요
    오리 십리 비유에서........
    그말씀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착한일 해라 이런 말씀 아닌건 다아시쥬~?)
    예수님께서 농담으로 하셨을거라는 쥰님의 말씀에
    반대를 표합니다~!
    (비밀해제에서 황목사님께서는 어찌 풀어 주셨는지 궁금하네요 몇편에 있는지 아시는분 알려주삼~)
    오른뺨 왼뺨 겉옷 속옷...이러한 비유도 동일하구요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의 충돌 속에서 삽니다
    진리는 온리 하나~
    비진리는 무수히~~~~~~~~
    이 질그릇에 담겨계신 보배
    우리주님~
    이 질그릇이 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갑자기 신파조로 빠져버렸네요~;;)
    하여튼 성경을 해석하되 왜곡시키거나
    인간중심 땅적생각으로 이해하려는 생각은
    일단 배제해야겠죠
    눈감고 귀막고 나만 따르라~
    하는 목사님들~
    그거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반짝반짝 빛나는 이성으로
    성경을 냉철하게 봐야합니다
    황순기 목사님 말씀마따나
    걍 꽉꽉 씹어 먹어야겠죠
    참, 매번 궁금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쭤보질 못했네요
    어찌이리 아는게 많으세요~
    궁금~
    그많은 지식이 하나님을 가리우게 했나......
    아~농담입니다
    단순한 저로서는 너무 신기해서요;;;;;;
  • 쥰(joon) 2015.11.16 03:05

    걸리시는 부분 지적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곳에 글을 쓰는 목적 여러가지 중에 한가지가 기독교인들에게 도발(?? ^^)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목적 달성 했네요  ^^)

    기독교인들의 경우 너무 성스러운 생각만 머리에 가득합니다
    인간적인 모습의 예수는 불경스럽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성서에 버면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신이라고 선언하고 있고 예수 스스로 가장 좋와하는 자신의 호칭이 인간의 아들입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면 기독교인이 아닌것 처럼 예수의 인성역시 부정하면 기독교인이 아니겠죠
    (저 역시 30대 초까지는 성서 자체에 무슨 영적인 힘이 있고 낡은 성서도 그냥 버리지 못하고 예수에 대한 존칭이 빠지면 불경스럽게 느끼던 적이 잇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신성만 보는 것 아닐까요?
    저는 (개인적으로)예수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했고 이쁜 여자를 보면 성욕이 생겼고 기분 나쁠때는 화도 내도 스트레스 받으면 열도 낫고 환절기에는 감기도 걸렸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만 완전한 인간이라는 성서의 기록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서인문학을 진행하면서 일부러 속된 표현을 쓰고자 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완전한 인간인 예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아버지 집이 더러워지는 것에 화가나서 깽판(너무 속된 표현인가요> ^^)을 치면서 욕을 하는데 '독사에 자식들아'가 어울릴까요?
    차라리 의역해서 '이 개새끼들아'가 더 어울리지않을까요?
    그래야만 완전한 인간이라고 선포한 성서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농담 또는 조크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농담과 조크 속에 더 큰 뜻이 있을 수 있죠 ^^

    농담도 하시는 예수님!!!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

     

    사실 성서는 너무 신성 부분만 강조하고 번역 역시 너무 성스럽게 표현하고 잇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서신의 경우 신학 전공자들 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편지가 성서가 될지 전혀 모르고 썼을 것이다 만약에 자기 편지가 성서가 될줄 알았다면 편지에 자기 맘에 안드는 성도들을 저렇게 비꼬아가면 편지를 쓰지는 않앗을 거라고요. 그러나 한글 성서를 읽으면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표현들을 너무 성스럽게 번역(의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와하는 성서 번역본은  공동번역입니다.

    왜냐하면 가능한 의역을 줄이고 원어 그대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한 번역이기 때문이죠(문익환 목사님께서 번역에 참여한 이유도 있지만 ,,,)

    저는 가능한 인간적인 용어를 쓰고자하고 흔히 교회에서 목사들이 쓰는 성스러운 용어는 피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분들께 신적인 예수는 수없이 들었고 황목사님도 마찮가지 시니까 저는 인간 예수를 보여드릴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서에 부합한 것 아닐까요? 완전한 인간 예수 완전한 신 예수 ^^

    참고로 제가 비밀해제에 올렸던 내용 복사해서 다시 올려드립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님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 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

    --------------------------------------------------------------------------------------------------------------------------------------------------------------------------------
    앙갈레이아는 간단히 이야기하면 로마군의 피정복인 징발권으로 천파수스(Mille passus)를 징발하여 노역을 시킬 수 있었고 이이상 노역은 금지하엿고 천파수스이상을 노역을 시키면 강제징발자가 처벌당햇음

    로마군에게는 앙가레이아(αγγαρεία)라는 피정복인에 대한 강제징발권이 잇엇습니다
    보통 군수품 이동을 위한 징발엿고 앙가레이아에 의한 부작용과 과도한 징발로 원성이 많아 피정복인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 이를 제한하는 규정이 수차례있엇고 데오도시우스황제는 천파수스(Mille passus) 이상의 앙가레이아(αγγαρεία)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발자를 처벌하눈 법률자체를 만들게 됩니다,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카피토장군은 서면허가를 받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5리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로는 ‘호스티스(누가) 세(너를) 앙가류세이(징발) 밀리온(천) 헨(하나) 휘파계(가라) 메트(함께) 아우투(그 사람과) 뒤오(두번째(천))’입니다

    즉, 5리(천단위의 거리밀레 파수스 Mille passus)를 이상을 징발하면 불법이 되므로 합법적인 징발거리의 두배를 가주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지배자인 로마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게 하는라는 이야기입니다,
    십리를 가라고 하는 것은 로마군이 불법을 저지르게 하라는 조크(joke)또는 불법적 징발을 하게하여 처벌받게 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저에 해석은 예수가 설교중간에 끼워넣은 joke정도로 보는데......

    5리를 가면 수동적인것이고 10리를 가주면 능동적인 것이되니 내가 스스로가는 것이라 내가 주인이되는 것이라든가 희생과 봉사를 하라는 뜻이라든가 아니면 어려운 남의 부탁을 더 적극적으로 들어주라는 뜻이라는 흔하디 흔한 설교만 들어보신 분들을 이해가 되지 않으신가요?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마5,41)
    제가 이구절의 ‘억지로(앙가레이아αγγαρεία)’, ‘5리(μίλιον: 밀리온)’를 역사기록에 남아 있는 데오도시우스 황제 칙령과 베르길리우스 카피토장군(군정장관)의 군령을 토대로 해석하는 것을 성서고등비평 중 역사비평이라고 합니다,
    제가 joke라고 한 것은 역사비평에 따른 해석이고요

    영훈님하고 몇일전 창세기 이야기하면서 야훼문서(J문서), 엘로힘문서(E문서), 제사장문서(P문서), 신명기문서(D문서)라고 하는 것은 1권의 책속에 문서의 지문을 찾아보니 4개의 각기 다른 문서가 합쳐진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을 자료비평이라고 합니다,

    성서비평을 좀 쉽게 예를 들어드렸는데 이해가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로 하던 것을 글로 쓸려니 본의 아니게 도배가 되버리네요 ㅠㅠ
    혹여 오해있을까 덧붙입니다.
    마 5:41절을 역사비평으로 해석하는 것은 로마군에 의한 강제징발을 예수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선 까지고 그뒤의 해석은 신학자들 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해학적 표현이라고 했지만 다른분은 로마에 봉사하라는 표현이라고 할수도 있고 또 다른분은 불법을 저지르게하여 징벌자가 처벌되게 유도하라고 해석 할수도 있습니다,
    물론 해석은 말한 자(예수)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해야지 엉뚱한 해석을 하면 안돼겠죠
    -------------------------------------------------------------------------------------------------------------------------------------------------------------------------------

  • 쥰(joon) 2015.11.16 03:31

    앞에 불교편을 이해하기 힘드시다고 하셨는데 그 건 제잘못이죠 ㅜㅜ
    혹여 궁금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잇으시면 질문 주세요
    제가 최대한 쉽게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

  • sozo 2015.11.16 06:00

    황목삽니다
    저는 마태5:39 이하의 기록에 대해서 설교에서 두 번정도 언급을 했습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번은 높은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예로 말씀을 드린 것 같고
    또 한번은 쥰님이 말씀하신대로 앙갈레이아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해석을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서너달 전쯤에는 비밀해제방송에서 "알갈레이아는 아닌 것 같고 아유 잘 모르겠어" 라고 했는데 지나가면서 말했기 때문에 기억들 못하시죠?

    오늘 새벽에 다시 앞뒤 살펴가며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지적이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마태5-7장에 걸쳐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끝나고 난 후에 사람들의 반응이 7장 끝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태7:28-29]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29. 예수께서는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학자( teachers of the law, 서기관, 성경교사)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놀랐죠. 율법을 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마태5장 시작부분의 흔히 8복이라고 하는 가르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8복을 말씀하시고는 이제 하나 하나 예를 들어가면서 하늘 뜻을 풀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
    .
    .
    살인하지 말라는 말 들어봤지? 살인을 하면 재판에 회부될 거라는 말과 함께 말야
    근데 살인만이 아냐. 만약 형제와 자매에게 화를 내거나, 얼간이(raca, 라가)나 바보라고 놀려도 마찬가지로 재판에 회부되고 지옥에 간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 기억나면 먼저 그 사람들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해
    그리고 와서 제사를 드려

    간음하지 말라는 말도 들은적이 있지?
    근데 간음이 꼭 성교가 이루어진 것만을 말하는 게 아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 그건 이미 간음한거라는 말이지
    바울이 그러자나
    아직 지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그냥 마음 속으로 죄를 지은건데도 자기가 사망을 당하는 죄의 법을 따라 산거라고,,
    바울은 내 말이 뭔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은 거지
    그러니까 눈이 관음증에 빠져버렸으면 빼버려라 그런거야

    이혼할 때는 이혼증서를 반드시 써주라는 말도 기억할 거야
    여자들이 이혼증서라도 있어야 남편의 법에서 더 이상 매여있지 않게 되니까 말야
    근데 이혼 이거 절대안돼!
    니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모세가 왜 이런말 한줄 알어?
    그건 니들 마음이 모두 완악하기 때문이야 (완악하다=harden,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내들이 더 이상 연약한 그릇이나 생명의 유업을 함께 나눌 사람으로 보이지 않지? (벧전3:7)
    그래서 모세가 그런 말을 한거였어

    또 하느님께 서원들 하고 살았지?
    서원하고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버지, 정혼한 남자, 남편이 취소할 수 있었고 말야
    근데 그 서원 그거 맹세자나 그 맹세 하지 마
    니들은 사실 머리카락 한 올이라고 검고 희게 못하는 존재들이거든 (염색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길 바래)
    그러니까 하늘, 땅, 예루살렘, 그리고 니 머리를 두고도 맹세같은 거 절대 하지마라
    다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 있고 그 분이 자신의 뜻대로 역사를 써나가니까 말야
    그냥 옳은 건 옳다고 하고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해
    그걸로 니들 할 일 끝!
    .
    .
    그리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을 들었을거야
    근데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 대주고
    너를 고소해서 속옷을 가져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고
    누가 너하고 억지로 1km가자고 하면 2km까지 같이 가줘라


    쭈욱 읽어보시니 어떤 생각이 드세요?
    아 이거 유대인들이 신앙윤리로 알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비판이구나
    그들의 율법해석에 따른 윤리강령(율법주의)이 바른 하늘의 뜻이 아님을 지적하시는거구나,,하는 생각 안드십니까?

    그냥 오늘 아침에는 읽다보니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들도 앞뒤를 (씹어먹듯이^^) 읽어보시고 생각해 보세요
    쥰님하고 저는 가능한 해석들을 참고로 말씀드린 것이니 스스로 알아서 땅 개간하시고 농사지어 먹고 사시기 바랍니다

  • 쥰(joon) 2015.11.16 08:18
    황목사님께서 설명을 더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해석의 필요성과 해석학의 변천과정(역사)를 소개해드림으로 여러분이 바른 해석의 눈을 가졋으면하는 것 입니다
    무작정 설교를 듣지마시고 옥석을 구분하는 눈을 가져야 미혹하는 이상한 교리에(굳이 이단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겟습니다)휘둘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중간 중간 제의견을 말씀드리기는 하지만 양념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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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종교철학54편(시즌Ⅲ) - 유태교와 예수 2 / 바리새파 0 바리새파란?   오늘은 유태교와 예수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당시 유태교의 주요한 분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겟습니다. 다 아시는 내용이겟지만 ... 7 file 2017.01.21
59 종교철학53편(시즌Ⅲ) - 유태교와 예수 1 / 들어가는 글 유태교에서 태어난 기독교   오늘부터는 유태교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탄생했는지 알아보기로 하겟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신학을 전공한줄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8 file 2017.01.04
58 종교철학52편(시즌Ⅲ) - 톨스토이 복음서 자동차가 가장 휘발유를 많이 먹을 때가 출발할 때라고 합니다. 두달 넘게 쉬다가 성서인문학을 시작하려니 연말에 신혼이라 시작이 어렵네요 여러분들과 약속한 ... 4 file 2016.12.26
57 시즌Ⅲ를 시작하면서.... 제 맘데로 여행가면서 쉬게되면 한시즌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고 반복하게 되네요 2달을 쉬고 시즌Ⅲ를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번 시즌은 아마도 길게 가지는 ... 6 2016.12.07
56 방학 공고 ^^ 제가 개인적인 행사로 잠시 성서인문학이 중단되어서 죄송합니다. 내일(11월3일-11월29일) 유럽(스페인)으로 출국하는 관계로 이번달 성서인문학은 잠시 휴강하겠... 1 2016.11.02
55 종교철학51편(시즌Ⅱ) - 역사 예수 찾기3 전번 시간과 마찮가지로 회색 검은색 어록중 대표적인 것 한두개를 소개해 드리고 마지막 시간에 총정리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개인적인 사고(?? ^^)때... 4 file 2016.10.06
54 종교철학50편(시즌Ⅱ) - 역사 예수 찾기2 전번 시간에 웨스타연구소에 대해 간략히 알아봣습니다. 오늘은 예수세미나의 진행과정과 결과 그리고 근래 이뤄지고 있는 학자들의 역사예수연구에 대해 간략히 ... 4 file 2016.09.27
53 종교철학49편(시즌Ⅱ) - 역사 예수 찾기1 오늘 주제가 주제니 만큼 제 주장이 좀 강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해하시고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하시기 바랍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면 비... 5 file 2016.09.15
52 종교철학48편(시즌Ⅱ) - 사도신경 개인사정으로 어찌어찌하다보니 2주를 쉬었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정신이 좀 없었네요   전번시간에 고지해 드린대로 오늘은 사도신경... 6 file 2016.09.05
51 종교철학47편(시즌Ⅱ) - 십계명3 ◎ 이웃에 대한 계명   ○ 5계명   כבד ​- 무겁게(해라) את - 을 אביך - (네) 아버지 אמך - (내) 어머니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5계명의 부모에 대한 명령은... 4 file 2016.08.16
50 종교철학46편(시즌Ⅱ) - 십계명2 2편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계명에 대한 해석을 하고 3편에서 이웃과의 계명를 진행하겟습니다. 주기도문과 마찮가지로 원문을 느낌에 가깝도록 해석해드리고 내용... 3 file 2016.08.11
49 종교철학45편(시즌Ⅱ) - 십계명1 중세시대까지는 십계명이 하늘에서 모세에게 휙 던져준 것으로 인식하고 잇어지만 역사연구와 문헌연구가 발전하면서 출애굽과 모세라는 인물인 역사적 사실이 아... 6 file 2016.08.05
48 종교철학44편(시즌Ⅱ) - 주기도문2 주기도문의 본문 분석   1편에서 주기도문의 유대교적 배경을 알아봣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대한 분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성서의 문서비평과 가설 등에 대... 7 file 2016.07.27
47 종교철학43편(시즌Ⅱ) - 주기도문1 주기도문 (예수의 기도와 유대교 기도)   이번주와 다음주까지 주기도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인이라면 주기도문은 모두 외우고 ... 15 file 2016.07.18
46 종교철학42편(시즌Ⅱ) - 모든 신을 모시는 판테온 오랜만에 다시 뵙겠네요 여러분들의 염려 덕분에 잘다녀왔습니다. ^^ 2달이 짧네요   시즌2 시작하기 전에 유럽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독일 스위스는 종교관련... 3 file 2016.07.10
45 종교철학 41편 - 성서의 저자 4 (번외) ◎ 야고보서   ‘1장 1절의 인사말 외에는 편지다운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저서는 구체적 상황에 관한 언급없이 윤리 도덕적인 훈계를 별 순서 없이 늘어... 8 file 2016.04.18
44 종교철학 40편 - 성서의 저자 3 (번외) 전편에서 계속......     ◎ 마태복음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60-130년경 생존)와 그의 설을 따른 프랑스 리용의 주교 에이레나이오스(130-200년경 생존... 4 file 2016.04.17
43 종교철학 39편 - 성서의 저자 2 (번외) 전편에서 계속됩니다.   ◎ 예레미야   예레미야서는 단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는 시문(詩文)으로 쓰여진 신탁(神託)과 전기적 이야기들 뿐 아니라 ... 2 file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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