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38편 - 성서의 저자 1 (번외)

by 쥰(joon) posted Apr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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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4복음서 이야기를 하던중 옆에 계신분이 ‘요한복음 요한이 90살에 쓴거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하시길래 깜짝놀랐습니다.

개신교 성서 66권 저자에 대해 정리를 해드리고 싶어서 어떻게 할까하다가 제가 다 쓰기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아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서 올려드립니다.

 

제가 가끔 참고하는 카톨릭 대사전에서 66권 각각 성서의 쓰여진 시기와 저자부분만 올려드리기로 했습니다.

카톨릭대사전 내용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저자를 기술하고 있고 신학자들의 관점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 개신교 목사들이 이야기하는 요한복음은 요한이 썻다는 주장보다는 훨씬 팩트에 가깝길래 소개해 드립니다.

 

저자 문제에 대해 카톨릭대백과의 시술과 신학계에서 보는 이견이 있을 경우 괄호안에 다른 의견도 소개해 두리겠습니다.

 

떠옴표 속에 인용한 것은 카톨릭대백과 내용이고 중간에 괄호안에 제 의견이나 다른 주장 또는 약간의 보충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 모세오경

 

‘이는 본래 다섯 두루마리(펜타테우코스)였으며, 기원전 13세기경 시나이 산에서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성스러운 계약에 의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됨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구전되다가 이스라엘 민족이 유배 후 고향 팔레스티나에 돌아온 다음에 문헌화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50년경 바빌론 유수 이후 편집 완성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연구되어 잇습니다

즉, 모세가 쓴 것은 아니죠)

 

 

◎ 여호수아

 

‘모세오경과 마찬가지로 자료에 의해 편집된 것이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신명기(申命記) 사료(史料)이고, 거기에다 전반(前半)에서는 야훼 사료와 엘로힘(Elohim) 사료, 후반에서는 제관사료[祭司法典]가 주로 첨가된 것으로 상상된다. 단, 마지막 24장은 주로 엘로힘 사료로 편집된 것으로 추측되고 또한 1장 3∼9절, 22장 1∼8절 및 23장에서 대표적 형태로서 볼 수 있는 신명기 사료 이외에는 ‘오경’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료는 없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세기에 걸친 것으로 상상되는 여러 사료가 신명기적 역사가에 의해 대체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전체의 흐름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기원전 400년경이며, 그 동안에 새로운 부분이 상당히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모세오경과 미칞가지로 바빌론 유수이후 편집 추가된 문서입니다)

 

 

◎ 사사기 (판관기)

 

Screenshot_2016-04-07-04-21-00-1.png

                                    (사사하면 삼손이죠 ^^ / 삼손 설화는 여러 신화에서 차용해 온것으로 알려져잇습니다)

 

 

‘구약성서의 일곱 번째 책이며 저자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 전승에는 다니엘이 썼다는 전승이 있지만 불분명하고 기록 시기는 17장 6절/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기원전 10시기 경우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분적인 기록을 바빌론 유수 이후 보강 편집했다고 보고잇습니다)

 

 

◎ 롯기

 

‘룻기는 문학작품이다. 민속적인 이야기에서 나왔을 수도 있으나 구성, 문체, 주인공의 묘사 등으로 보아 일종의 단편소설(novelle)이라고 할 수 있다.

귀양 전에 씌어졌다는 학자도 있고, 귀향 후에 씌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기원전 5기). 전자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은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든다. 신 한 짝을 벗어서 주는 습관(4:7)은 신명기(申命記) 이전의 습관인 듯하고 모압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무난한 것이 전제된 사실, 경신례와 예절을 중시하는 경향이 전혀 없는 것 등이다

4:18-22까지의 다윗 족보는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보통 다윗왕조의 전통성을 보강하기 위해 기원전 5세기경에 쓰여진 소설로 보고있습니다)

 

 

◎ 사무엘 상하

 

‘이 책이 많은 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동일한 사건이 중복되어 적혀 있는 점, 사상과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이 뒤섞여 있고, 서로 모순되는 기사가 병존하고 있는 사실 등으로 보아 확실하다. 이 책에는 크게 나누어 2개의 사료의 흐름이 상정(想定)된다. 최초에 이들 사료들을 결합해서 이 책을 편집한 것은 신명기사가 <申命記史家>이고 그 시기는 550년경이었다. 편집에 있어서는 편자가 종교적 입장에 맞지 않는 것은 배제했고, 불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보족(補足)을 하였다. 유배기 이후의 시대에 다른 편집자가 다시 손질하거나 가필(加筆)을 하였다. 이리하여 기원전 400년경에 대체로 현재 이 책의 형태로 마무리 지어졌다’

 

(카톨릭 대사전에서도 다니엘이 기록했다는 것은 부정하고 잇습니다)

 

 

◎ 열왕기 상하

 

‘이 책은 상술한 바와 같이 각종 사료를 가지고 편집된 것이지만 그 구조(構造) 및 전반적인 흐름, 특히 편집자의 종교적 입장과 정신뿐 아니라 그 용어는 틀림없이 신명기적’(申命記的, D전승)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의 편집자는 일반적으로 신명기적 사가(史家)들이라고 보고 있지만 현재의 열왕기를 상세히 검토해 보면 전후 모순된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단일 편집자의 소산으로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 근대의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책이 전후 2회에 걸쳐 편집되었고, 적어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편집자에 의한 것으로 보고, 1차 편집을 기원전 600년경, 2차 편집을 기원전 55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다시 엄밀히 검토한 결과 제1차 편집을 바빌로니아 유배 이전, 특히 요수 아왕의 전사(기원전 609년) 이전, 즉 기원전 610년경으로 보고, 제2차 편집을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기원전 562년의 여호야킴의 석방과 기원전 538년의 크로스의 유배 석방포고와의 사이, 즉 기원전 550년경 바빌로니아에서 했던 것으로 보게 되었다‘

 

 

◎ 역대기 상하

 

귀양 후에 쓰여진 점에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프리드만(D.N. Freedman)은 에즈라 1∼3장과 함께 기원전 515년에 쓰여졌다고 본다. 다른 저자들은 훨씬 후 즉 헬레니즘 시대에 씌었다고 본다. 이 의견은 둘 다 극단적이다. 연대를 추정하기 위한 일차적 근거는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이다. 이 두 책과 역대기는 비록 같은 저자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서로 보완하고 서로 관련을 맺어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느헤미야서와 에즈라서에 쓰인 사실이 생긴 후에 씌어졌다고 볼 때 400년 후로 생각하게 된다. 집회서 47:2-11이 다윗을 역대기같이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200년 후일 수는 없다. 역대기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가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프톨레미아와 셀레우키드 때 있었던 군사적 위협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보면 3세기에 쓰였다고 볼 수 있다(P. Welten). 4세기에 씌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역대기는 20여개의 자료를 가지고 기원전 3-4세기에 집필 편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에스라

 

Screenshot_2016-04-07-04-32-21-1.png

                                          (구약에서 메시야로 선포된 페르시아왕의 묘지)

 

 

‘에즈라서의 저자는 느헤미야와 역대기를 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대기 편찬자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이 세 권을 썼다는 것은 이 세 권에 쓰인 문체, 단어, 정신, 기본사상 등이 같고 에즈라가 역대기 끝줄을 이어 받아서 시작한다는 사실로 알아볼 수 있다. 이 저자는 예절과 성전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그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보아 아마도 예루살렘의 경신례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제라기보다 레위족에 속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내용 중 가장 후대에 일어났던 것이 기원전 400년경이니까 저술은 당연히 훨씬 후(300년경)라고 볼 수 있다.

역대기 편찬자는 에즈라와 느헤미야를 쓸 때 여러 사료(史料)를 이용하였다‘

 

(유대전승에 따르면 에스라는 모세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됩니다. 에스라서 역시 저자는 불분명합니다 / 경신례는 공식적 예배를 이야기합니다)

 

 

◎ 느헤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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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 성벽으로 추정되는 발굴지역)

 

 

‘구약성서의 열여섯 번째 책이며 역대기와 에즈라서를 포함하는 역대기 저자가 쓴 네 권의 책 가운데 마지막 책이다

느헤미야서는 에즈라서와 함께 기원전 4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 씌여졌다고 볼 수 있다. 더 후대에 첨삭이 되었을 가능성은 고려해 두어야 할 것이다’

 

(역대기 에스라를 쓴 저자가(누군지는 모르지만)가 쓴 문서로 보고 잇습니다)

 

 

◎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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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하마단에 있는 에스더와 ㅁ보르드게의 무덤 / 왼쪽이 에스더 오른쪽이 모르드게 / 가짜 관광 상품입니다)

 

 

‘에스델서의 그리스어 텍스트(70인역, 대문자로 된 그리스어 역본들, 안티오키아 루치아노의 개정본 등)는 히브리어 성서와 현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어 텍스트 1장, 3장, 4장, 5장, 8장과 10장에는 히브리어 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절들이 상당량 첨가되어 있다

그리스어 성서의 마지막 구절은 본 그리스어 에스델서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치세 4년, 기원전 114년에 이집트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기원전 160년경 팔레스티나에선 이미 유태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라는 기념축제를 거행하고 있었으므로 이 시대에 벌써 에스델서 또는 에스델서가 전해 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대략 150년경 히브리어 에스델서가 완성된 것으로 보며 이 시대부터 시작해서 114년 사이에 그리스어 에스델서가 탄생되었을 것이다‘

 

(70인역과 히브리어로된 에스더서는 내용이 상당 부분 다르고 히브리어로 된 판본에는 하느님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는 문학작품입니다)

 

 

◎ 욥기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지적해 낼 수 있는 종교적 사상과 문화적 배경, 문체와 단어의 상이함은 이 책이 단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책은 유배 이후에 씌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유배 이후 시대라고 보는 것은 후기 언어를 통해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지혜문학이 유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서이다. 기원 전 5세기말로 보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 있는 연대이다‘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구전되온 이야기를 모아 편집한 시로 구성된 소설입니다)

 

 

◎ 시편

 

‘시편의 히브리어 역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으므로 현대의 성서 번역은 고대의 역본들을 고려에 넣는 동시에 추리에 의존하기도 해야 한다

팔켄슈타인(A. Falkenstein), 폰 조덴(W. von Soden), 비덴그렌(G. Widengren) 등의 학자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의 문학형태를 비교 연구하였는데, 이들은 아크나톤(Akhnaton)의 아톤의 노래(Song of Aton)와 시편, 103편간의 유사점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알브라이트(W.F. Albright), 고든, 진스버그(H. Ginsberg) 등이 고대 우가르의 신화와 시편간의 관계를 연구하였는데, 이들 사이의 유사성은 매우 산발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시편은 우가르 신화보다 오래된 가나안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뒤 가나안인들에 의해 우가르의 영향력이 이스라엘의 전해졌다고 추정되는데, 시편 28편과 68편은 우가르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이다

시편의 노래들은 약 7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이고 심오한 야훼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시편은 다윗 왕(이스라엘 2대 왕, BC 1000~961)의 저작이라고 하나, 유배 생활 이후 성전의 악사나 현자들이 다윗의 이름으로 저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개신교와 미국의 일부 근본주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시편의 저자를 다윗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은 보통 6개의 내용, 형태적 구분을 합니다.

 

- 성가시편은 요즘 말로 찬송가로 보시면 됩니다.

(8, 28, 32, 44, 46, 64, 74, 82, 85, 92, 98, 130편)

- 애가시편은 개인 또는 집단적 갈구를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애가는 시편의 약 1/3분 이상을 차지합니다.

(3, 5, 7, 10, 15, 16, 21, 22, 26, 40, 61, l30편)

- 감사의 시편은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의 내용입니다.

(17, 29, 40, 114-115, 123편 등)

- 제왕시편은 취임식 등 왕과 관련된 행사때 쓰여진 시입니다. 제가 전번 시간에 마지막 부분에 소개해 드린 시편 기억나시죠 ^^

(2, 17, 19, 20, 44, 71, 88, 100, 109, 143:1-11 등)

- 구원역사 시편은 구원 역사에 대한 내용을 노래한 것으로 시편 77, 104이고

- 지혜시편은 지혜서와 비슷한 형태로 1, 31, 33, 36, 48, 111, 127 등입니다)

 

 

◎ 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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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교의 잠언 두루마리)

 

 

‘우리가 알고 있는 잠언은 기나긴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정체이다. 잠언은 솔로몬 시대에 시작되어 기원전 5세기나 4세기경에 끝을 맺은 문학적 문화적 활동의 저작품으로 이 저서는 5세기 동안의 이스라엘에서의 지혜의 흐름을 표명하고 있다

잠언 안에 나타난 각 단편들의 연대와 저자의 신분을 밝힌다고 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중요성을 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총집의 근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다른 책들의 경우처럼 구전(口傳)이, 글로써 쓰여져 고정되기 전에 이미 선행하였다‘

 

(잠언 역시 솔로몬 작품 아닙니다. 수세기 동안 계속 축적된 문서입니다)

 

 

◎ 전도서

 

‘구약성서 46권 중의 한 권인 전도서(傳道書)가 히브리어 성서에는 코헬렛(Qohelet)이라는 서명(書名)으로 나타난다. 코헬렛은 ‘집회’를 의미하는 카할(qahal)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집회에서 말하는 사람’ 즉 사회자나 설교자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성서번역자들 역시 ‘집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ekklesia)에서 파생된 에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 설교자)를 본 작품의 서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코헬렛이든 에클레시아스테스든 고유명사가 아니라,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인 것이다‘

 

미국 덴버 주임신부인 신은근 신부의 성서공부 중 일부입니다.

 

‘코헬렛(전도서)은 1장 1절부터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임을

강조하고 있다. 솔로몬의 창작임을 내세운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솔로

몬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포로시대 이후의 저작임이 드러났다. 작가는 솔로몬의

이름을 표방해 작품의 권위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한국 개신교 목사들은 왜 의미만 이야기하고 성서의 역사적 배경은 숨기기에 급급할까요?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하면 마귀일까요?

천주교 욕하지 말구 배울 것은 배워야지요

1장 1절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공동번역)’라는 근거로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교회에서 주장합니다. 더구나 ‘현대인 성경’에서는 아예 원문에도 없는 솔로몬이 썼다고 번역해 놓고 잇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왕인 전도자 솔로몬의 말이다(현대인성경)’ 그러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주장한다면 신학계에서 바보소리 듣습니다)

 

 

◎ 아가서

 

‘구약성서의 스물여섯 번째 책이며 지혜서의 다섯 번째 책이다. 솔로몬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아가는 아마 기원전 6세기 익명의 저자에 의해 저술되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아가만큼이나 그 주해(註解)를 둘러싸고 논쟁이 심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연애시라는 성격 때문에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지방에서 개최된 유태교 종교회의 때 아가를 정경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결국 정경으로 채택되었으며, 70인역엔 이미 본서가 성서의 하나로 속해 있었으므로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아무런 문제없이 아가를 성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가는 그 저자로 솔로몬을 가리키고 있으나(1:1), 전도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전도 1:1) 이는 하나의 전승일 뿐 솔로몬을 아가의 직접적인 저자로 볼 수는 없다. 저자가 구사하고 있는 언어는 솔로몬보다 훨씬 후대에 사용되던 언어이며 게다가 아랍어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아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료들 중의 일부가 솔로몬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유배시대 이후로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 저작연대를 기원전 4세기 초반으로 보고 있으며, 이 시대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시기였다

아가는 매우 다양하게 주해되고 있으나 문학유형상 연애시 내지 연애시집이라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신학계에서는 솔로몬저작도 인정하지 않고 연애시라는 것에 의견을 일치하고 있고 카톨릭대백과에서도 이를 밝히고 잇습니다)

 

 

◎ 이사야서

 

Screenshot_2016-04-07-05-12-00-1.png

                                         (바티칸 성당 천정벽화에 그려진 이사야)_

 

 

‘이사야의 제자들은 두 권의 책을 또 저술하여 스승의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첫 이사야는 기원전 765년경에 출생하였다 (중략)

제2이사야는 누구인가? 그는 바빌론에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승리가 예견되고 바빌론 제국의 멸망을 내다보던 시대, 그러니까 기원전 550년경과 유태인들의 본국 귀환을 결정한 고레스의 칙령(538) 사이의 시대에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중략)

이사야 40-55장(‘제2이사야서’라 함)은 바빌론 유배 말기에 예언한 익명의 시인이 쓴 작품이다. 여기에는 ‘주님의 종’ 노래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메시아 신탁이 나온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 56-66의 본문은 소위 ‘제3 이사야’로 통하는 무명 예언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여겨진다 (중략)

66:1-4을 제외한 65-66의 본문은 묵시문학에 속하며 그 연대를 어떤 이는 그리스시대로 보고, 어떤 학자들은 유배에서 귀환한 직후의 시대로 보고 있다. ‘

 

(인용하기는 너무 길어 중략하였더니 알아보시기 힘드신가요?

쉽게 이야기하면 이사야서는 300여년에 걸쳐 3명(또는 4명 또는 공동체)에 의해 계속 쓰여진 작품으로 모두 이사야라는 명칭을 사용햇지만 다른 신학적 시각으로 기술하된 작품입니다

/ 좀 비하해서 이야기하면 누가 썻는줄 알수도 없는 짬뽕 작품)

 

 

 

*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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