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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의 본문 분석

 

1편에서 주기도문의 유대교적 배경을 알아봣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대한 분석을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성서의 문서비평과 가설 등에 대해 공부햇으니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 마태 주기도문의 구성

 

먼저 마태복음에 주기도문을 보면 예수 선포 메시지의 중심인 산상설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잇습니다.

 

A.서론 : 산상설교의 배경(5:1-2)

    B.서술 : 훈계를 지키도록 격려함(5:3-20)

        C.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5:21-48)

            D.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6:1-34) / 주기도문

        C`.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명령(7:1-12)

    B`.서술 : 훈계를 지키도록 격려함(7:13-27)

A`.결론 : 산상설교의 결과(7:28-29)

 

이처럼 마태는 주기도문을 산상설교 본문의 구조상 한가운데, 즉 핵심에 위치 시켜 놓음으로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잇습니다.

 

 

◎ 주기도문의 형식

 

마태의 주기도문은 형식상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르는 말(또는 들어가는말 /Invocation Address)과 간구문, 송영(doxology)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구문은 3개의 ‘당신-간구문’(Thou-Petition)과 3개의 ‘우리-간구문’(We-Petitio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구문을 7개의 청원으로 구분하기도 한합니다 / ‘우리-간구문’을 4개의 청원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마지막 청원(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을 하나로 보느냐 둘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태의 주기도문을 구분하여 보면

 

- 부르는 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간구문

 

· 당신 간구문

1.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나라이 임하옵시며

3.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이다

 

· 우리-간구문

1.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6:12)

3. 우리를 시험게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송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60727_035932.png

                                                          (주기도문의 최초 번역은 이수정에 의해 번역 되었습니다)

 

 

◎ 본문의 분석

 

- 부르는 말

 

Πάτερ ημων ο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

(그)하늘(속)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여)

 

- 문단의 중심 단어는 밑줄을 쳐드렸고 원문의 느낌을 가지라고 직역에 가깝게 번역 하면서 괄호를 넣엇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첫구절에는 기도의 대상을 부르는 문구가 위치하게 되겠죠

 

누가의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단순하게 ‘아버지’(πάτερ)로 부르는 것으로 시작 합니다.

예수가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햇으니 아마도 누가의 기록이 더 정확하고 예수의 뜻을 더 정확히 기록한 것 아닐까요?

성서인문학에서 수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유대교 색체가 강한 마태공동체는 유대인에게 친근한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을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잇습니다.

일부 목사들이 예수가 하느님을 아버지(아람어 ‘아바’나 헬라어 파테르)로 부르는 것이 무슨 엄청난 사건 또는 혁명적인 전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예수 이전 유대교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게 아훼를 아버지라고 호칭하고 잇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록에서 보여지는 아버지라는 호칭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관계를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주기도문의 경우 공동체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도 의미하고 잇습니다)

 

마태는 아버지라는 칭호를 우리 아버지로 확장하였고 잇습니다.

여기에서 우리(ημων)는 주기도가 공동체의 차원에서 드려지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당신 간구문(Thou-Petition)

 

· 첫 번째 간구

 

αγιασθητω το ονομα σου

당신의 그 이름이 신성하게 (되소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름은 그 개체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권위자체를 의미합니다.

특히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를 불경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유대교에서 신의 이름의 중요성은 지금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구약을 보면 이름 자체가 존재를 규정하고 잇는 것을 볼 수 잇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야곱은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 인격과 성격 자체의 변경을 의미합니다.

 

주기도문은 당신에 대한 청원의 맨처음에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문장을 넣음으로 주기도문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 두 번째 간구

 

ελθετω η βασιλεια σου

당신의 나라가 오게(하소서)

 

주기도문의 중심 뜻은 마태복음 6장 33절로 요약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공동번역)

 

먼저 예수 당시 유대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카디쉬 기도에 보면,

‘그 분이 자신의 나라/다스리심이 다스리게 하시길 너희들의 생애에 그리고 너희들의 날들에 그리고 이스라엘 집안 전체의 생애에 신속히 그리고 조만간’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즉,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잇습니다.

주기도문 1편에서 이야기한 18축복 기도문에서도 10-16까지를 보면 먼저 이스라엘의 해방, 압제로부터의 해방,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하느님이 주신 땅에로의 복귀와 회복 등을 기도한고 잇습니다.

 

예수 당시 그리고 바빌론유수 전후 구약이 완성되던 시기에 하느님나라와 하느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다윗 왕조의 회복 또는 이스라엘의 이방 통치로부터의 해방 정도엿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유대교에서도 아주 드물게 나타나고 구약에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왕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야훼가 다스리신다’등 의미적으로 통하는 언약은 수차례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개념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유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를 가집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행전 1장8절)

 

즉, 유대인의 하느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실체적인 회복 정치적 해방을 의미하지만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전인류적의미를 가집니다.

 

예수의 하느님나라의 개념의 특징은

 

첫째, 전우주적 전인류적 의미를 가집니다.

특정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국가차원을 넘어 모든 피조물의 세계를 포용하는 나라를 의미하며 그것은 질병, 빈곤, 죽음과 같은 구조 모순의 해방을 이야기합니다.

인간과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며 하느님은 사랑하는 모든 자녀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나라는 혁명적인 구조적변화를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포용하지만, 구조의 총체적인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 나라는 현재적이며 미래적입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로 보면서 미래에 올 그리고 미래에 와야만 하는 실체로 보고 잇습니다.

바로 제자들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되어 가는 단계로 보고 있고,궁극적으로는 종말론적으로 임할 나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통해 하느님나라가 완성되고 잇는지는 의문이지만요 ㅠㅠ)

예수가 이야기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엇고 아직 완정되지 나라입니다.

 

 

· 세 번째 간구

 

γενηθητω το θελημα σου, ως εν ουρανω και επι γης.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에서 처럼 또한 에서도

 

이 부분은 누가복음에는 없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견해는 마태가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두 번째 청원의 의미를 좀더 부연 설명하기 위해서 세 번째 청원을 첨가햇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엿던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구성원들에게 친숙한 표현을 부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구는 이미 하늘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앗다는 상황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땅의 모델 즉, 땅의 이상적인 구조를 하늘에서 찾고 있습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의 냄새가 나죠?)

 

땅(지상)은 아름답던 창조질서가 파괴되어 본래의 형상을 잃엇고 그래서 이 문장은 파괴된 창조질서를 회복을 하는 것에 대한 청원입니다.

 

즉, 예수를 따르는 자들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아름다운 창조질서 회복을 청원하면서 또한 다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실천되는 지 보여줫습니다

예수를 신으로 믿든 저처럼 그냥 인간 선생님으로 믿든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재적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진정으로 간구하고 자신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며 최소한 예수의 삶에 방식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믿기만하면 천국간다는 목사 나부랭이들에게 속지마세요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이 세 번째 청원은 기도자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가 내 뜻을 하느님께 아뢰는 것이고 하느님을 설득하여 내뜻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기도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참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잇습니다.

예수도 내 뜻대로 하지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라는(마 26:39)라고 기도에서 우리는 참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은 하늘, 천국만이 아닌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잇는 바로 이 땅,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이건희처럼)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곳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의하면 의롭게 해야 하고 세상이 불평등하다면 평등하게 하여야 하고 세상이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면 강자에 맞서 싸워야합니다. 그게 하느님 나라이고 예수의 명령이고 예수의 삶입니다.

굶는자가 잇다면 빵을 던저줄 것이 아니고 굶는 사회의 불의한 시스템을 하느님이 원하는 공의로운 시스템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수 제자의 자세입니다,.

베드로는 구걸하는 절름발이에게 금과 은을 준 것이 아니고 일어나서 노동할 수 있는 육체, 즉 노동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절름발이가 아닌데도 절름발이처럼 일할 기회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영위할 기회를 박달당한 수많은 이들이 잇습니다, 예수 제자라는 여러분은 빵하나 던져주고 할 일을 햇다고 자위하실렵니까?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시스템, 예수가 원하던 하느님나라를 만들지 않으시렵니까? (오늘도 옆으로 빠지네요 ㅜㅜ)

 

 

20160727_035407.png

                                                                        (이스라엘에 있는 주기도문교회에 한글 주기도문)

 

 

 

- 우리 간구문(We-Petition)

 

네 번째 청원부터 인간을 위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기도는 전반부에 하느님에 대한 세간구가 나오고, 후반부에 인간을 위한 세 간구(또는 네 간구)가 나옵니다

이 구조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 그리고 그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 6장33절(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와 상통하는 구조입니다.

 

· 네 번째 간구

Τον αρτον ημων τον επιουσιον δος ημιν σημερον

매일 필요한 우리의 빵을 오늘 우리에게 (주옵소서)

 

재미잇는 기도 이야기하나 해드리죠

중세시대 기도를 할 때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는 성부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에 관한 기도는 성령께 드렷는데

아기들 잠자기 전에 잘자고 건강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성자 예수에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잠을 자본 경험을 가진 분은 삼위 중에 성자 예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성부나 성령은 잘자게 해달라는 기도를 이해 못할까봐 잠을 자본 예수 성자께 기도 햇답니다. ㅋㅋㅋ

 

예수 사역을 보면 병자를 고치시고(정확히 이야기하면 죄를 사해주고)풍랑을 잔잔하게 하신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빵과 실제의 고기로 배고픈 사람을 먹이는 것 역시 중요한 사역중에 하나 엿고 (마 14:13-21/15:32-39)초기 교회에서는 식사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예배였습니다.

예수는 바리세인들로 부터 술꾼에 파티나 즐기는 먹보라는 조롱을 받을 만큼 육적인 것을 천한 것이 아닌 진지한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간구문 첫 번째 식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 세상에 살면서 인간이 신처럼 살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일용할이란 말은 매일 매일 먹을 양식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 날 먹을 것 이상이 아니 라 바로 그날 먹을 것만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삶에 필요한 것 이상의 사치한 삶을 위해 간구할 수는 없다는 것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욕심을 포기하도록 결단시키는 예수의 명령이며 필수품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부자된다는 것이 사기치는 것이라는 것 아시겠죠?

 

둘째로 우리에게 양식을 달라는 간구는 하느님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느님의 은혜와 하느님이 나에 하느님이기 때문에 나의 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명량하십니다.

밥은 개인이 혼자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밥은 서로 나누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에 굶는 자가 있다면 주기도문을 하는 자는 자신의 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이 기도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우리는 예수를 믿는자 들의 공동체 즉, 주기도문을 외우는 신자들만을 의미할까요?

마태복음의 5장 28절에서 48절을 의미를 새겨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46-48절을 보면 공동체(형제)를 넘어서는 나눔을 예수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끼리만 사랑하고 인사한다면 세리나 이방인과 다를게 없습니다.

불교도, 이슬람교인 하다못해 무당들도 사랑하고 나누고 인사하면 소통하여야하는 것입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이번 간구문중 한글 성서가 오늘날로 해석한 σήμερον(세메론)이라는 단어는 오늘날로 해석되어 있는데 이어지는 여러날 중 오늘이라는 의미의 오늘날이 아닌 딱 24시간을 의미하는 오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오늘날 일용할 양식 보다는 오늘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뜻에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2008년 개신교에서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하여 지금은 오늘날이 아닌 오늘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개역개정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개역한글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새 번 역 -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현 대 인 -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n I v -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k j v -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nasb -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천주교 표준 주기도문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또 하나의 단어가 신학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잇습니다.

매일이라고 번역되는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사실 불분명합니다.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성서(또는 성서와 관련된 문서)를 제외하고는 어떤 헬라어 문서에도 나오지 않는 기독교식 헬라 단어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아버지라는 최고의 신학자인 오리게네스까지도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애매한 단어입니다.

 

신학자나 언어학자들의 의견은 보통 세가지 정도로 나뉘어집니다.

 

첫째는 이 단어를 ‘에피’와 ‘우지아 ’의 복합어로 보고 ‘삶에 필요한(necessary forexistance)’또는 ‘삶 을 가능케 하는’의 뜻이라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당일을 위한이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즉,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은 에피 텐 우산(επι τήν ούσιαν)으로, 여기에 날(日)을 뜻하는 헤메란 ’이 생략됏다고 보고 ‘당일을 위한(fortoday)’이라는 뜻이라는 의견입니다.

 

셋째는 오는 날(forthecoming day)또는 다음날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즉 오고 있는 날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이 epi와 ienai 의 합성어라면, 그 뜻이 ‘오고 있는 날을 위한’ 즉, 내일을 위한이 되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이 해석은 종말론적인 해석이라 봅니다.

 

기타 의견으로는 시간적 의미가 아닌 양적 의미라고 보는 견해도 잇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주기도문을 예수가 가르쳤다면 아람어로 가르쳤을 것이고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이스라엘 밖의 유대인 공동체인 다아스포라에서만 은어처럼 쓰여진 단어인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을 사용하여 번역을 한 것은 분명하고 아마도 예수의 뜻을 정확히 번역 햇다면 지금의 성서 번역처럼 매일 필요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출애굽기에서도 만나를 내일 필요 분까지 준 것이 아니고 오늘 필요한 만큼만 공급하고 있고 마태 6장34절을 봐도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라는 마태의 입장을 봐도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이 내일을 의미한다는 것은 흐름상 맞지 않는다고 보여집니다.

(επιουσιον(에피우신)의 문제는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생각하시고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글 성서의 번역이 적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 다섯 번째 간구

 

και αφες ημιν τα οφειληματα ημων, ως και ημεις αφηκαμεν τοις οφειλεταις ημων

그리고 우리에 들을 우리에게서 당신이 탕감하여 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진자들을 탕감해 줫던 것처럼

(και αφες ημιν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και γαρ αυτοι αφιομεν παντι οφειλοντι ηειν)

 

 

다섯 번째 간구문은 죄의 용서에 관한 문제입니다.

 

네번째 청원이 육신적인 것이라면 다섯 번째 청원은 종교적 신앙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죄(罪)란 신학적으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단절된 상태이고 죄의 용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를 누가와 마태를 비교해 보면,

마태는 우리의 빚들을(τα οφειληματα ημων)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고,

누가는 우리의 죄들을(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록하엿습니다.

 

누가는 왜 죄라고 하고 마태는 빚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마태와 누가는 서로 다른 사람을 상대로 주기도문을 기록하엿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아람어 ‘호바’의 개념을 도입하여 ‘호페일레마타 ’(οφειλήματα)를 쓰고 있으나,

누가는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익숙한 의미로서의 ‘하마르티아스’(αμαρτιας)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예수는 뭐라고 햇을까요?

당연히 예수도 유대인이고 유대교인 였으니 마태가 사용한 빚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엿을 것입니다.

또한 누가도 청원 두 번째 부분에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들 모두를 용서합니다(και γαρ αυτοι αφιομεν παντι οφειλοντι ηειν)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빚’이라는 단어를 '죄‘라는 말로 바꾸어 놓은 것은 유대인들이 죄를 ’하나님에 대한 빚‘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유대인적 숙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누가는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죄라는 말로 풀어서 쓴 것이라고 볼 수 잇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빈부격차에 따른 부채노예와 연결하여 실제 빚을 이야기 한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간구에는 다른 간구들과는 달리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간구가 응답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자 자신이 먼저 이웃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만, 하느님께서도 그와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관계 단절이 죄이고 그 죄(관계단절)를 용서 받으려면 이웃과의 관계를 먼저 정상화하라는 것입니다

영화 밀양을 보면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면회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범인은 피해자인 여주인공에게 자신은 하느님께 용서 받앗고 피해자 용서는 필요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교도소에 잇는 목사에게 전도를 받았겠죠.

하느님께 용서 받았다??? 하느님은 먼저 이웃과 화해하지 않는자는 자신도 화해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잇습니다.

주여 주여하는 기독교인 여러분!! 주여 주여하기 전에 이웃과 함께 하세요

그것이 예수 운동의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마태와 누가의 주기도문중 예수가 가르친 본래의 주기도문 형태는 누가라고 보지만 다섯 번째 간구문은 마태의 기록이 예수의 원래 가르침에 가깝다고 보고 잇습니다.

 

이 간구문은 마태복음 18장 21-35절에 연결되는 간구문입니다.

(마태 18장 21-35 읽어보세요)

 

 

· 여섯 번째 간구

 

και μη εισενεγκης ημας εις πειρασμον, αλλα ρυσαι ημας απο του πονηρου

그리고 우리를 유혹(시험)속에 데리고 들어가지 마소서, 오히려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소서

 

여섯 번째 간구에서 ‘시험’을 보는 견해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서 겪는 시험이라고 보는 견해이고, 하나는 종말론적인 시험으로 보는 견해가 잇습니다.

 

살아서 겪는 시험이라는 견해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μός)의 의미를 신앙을 시험하는 외적 유혹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페이라스모스( πειραμός )에 부정어 μή가 붙어 있어서 기도의 내용은 ‘시험으로 데리고 들 어가지 않게 하소서’라는 청원에 가깝습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공동)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개역한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개역개정)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niv/kjv))

And do not lead us into temptation (nasb)

 

 

시험을 종말론적으로 보는 견해를 살펴보면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시험의 용법을 분석해보면 주로 마귀의 행위 또는 예수를 대적하는 기득권측의 행위이고 요한복음 8장 44절(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자신을 대적하고 시험하는 자들을 마귀와 관련시킨 점을 고려한다면, 복음서에서 시험이란 마귀의 사역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잇습니다.

즉, 종말에 하느님나라를 확장시키려는 예수 세력과 이를 방해하는 마귀라는 관점에서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하는 기도는 시험 자체를 면하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험을 겪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고 예수도 시험을 거친 것을 보면 시험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은 죄를 지을 위험을 피하거나 또는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 송영

 

οτι σου εστιν η βασιλεια και η δυναμις και η δοξα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αμην

왜냐하면 당신의 나라과 능력과 영광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첨가된 송영은 마태의 오래된 사본이나 누가의 주기도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후대에 첨가된 문장입니다.

(마태계열 문서인 디다케에는 송영이 기록되어져 있지만 초기 기독교에서는 송영구절은 주기도문의 일부로 인정되지 않았었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마지막 구절인 주기도문의 송영은 역대기상 29장 11절을 배경으로 덧붙여진 부분으로 보고 잇습니다

(주의 광대하심과 권세와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의 것이옵니다)

 

호티(οτι)를 개역성경에서는 대개로 번역하지만 호티의 본래적인 의미는 ‘왜냐하면’으로 위에서 기도를 드린 이유를 이야기하고 잇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친 인간 예수는 유대 공동체에서 자란 유대교인 였기 때문에 주기도문은 당연히 유대교 배경을 갖고 있으며 유대의 기도문에 많은 영향을 받앗습니다.

특히 유대인에게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암송된 ‘테필라’(Tepillah)와 유대회당에서 설교 끝에 낭송된 카디쉬’(Kaddish)가 주기도문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유대교의 기도와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잇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친밀함, 간결함,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가장 우선으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대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예수만의 신학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단순히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준 기도문이 아니고 예수의 가르침의 총체적인 요약입니다.

주기도문은 치열한 삶을 살다 죽어간 인간 예수에 외침입니다.

 

 

 

 

* 다음 시간부터는 십계명에 대해 공부할 예정입니다.

예습하시는 것 아시죠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과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읽는 법 이제 아시죠?

앞뒤 문맥을 연결하면서 처음 보는 글처럼 의미를 천천히 씹어가시면서 ^^

 

 

  • 차영배원주 2016.07.28 01:47
    선생님의 주기도문 해설은 제가 생각했던 맥락과 많은 부분 일치해서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네요.
    물론 새로운 것도 있어 더욱 주기도문을 새롭게 해주셔서 감사.
    외국 영화 같은 곳의에 기도를 못하니까 간단히 주기도문으로 대체하는 것을 보니 이해가 가네요.
    한국에서 번지르르한 멋진 기도 잘하는 목사나 장로 권사 부러워 할 것이아니라 그냥 주기도문으로...
    자신의 욕심외에 구할 것이 무에 그리 많겠어요. ㅎㅎ
  • 쥰(joon) 2016.07.28 09:09

    사실 성서 내용이야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은 잘 모를수도 있지만 내용이야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별거 없습니다.
    히브리어 헬러어 원본 봐봐야 대부분 한글 성서와 별반 다르지 않구요 ^^
    뭔가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거나 뭔가 특별한 역사적 의미적 배경을 들고 나온다면 대부분 이단 아니면 가짜입니다.
    학자들이 거의 2천년을 읽고 수백년을 과학적인 잣대로 연구햇는데 사본이 반견된다거나 하기전에는 사실 별거없습니다

  • sozo 2016.07.29 06:34
    할렐루야 주 찬양합니다
    인간예수에게서 하늘섭리를 발견합니다
  • 쥰(joon) 2016.07.30 08:09
    저도 인간예수에게 하늘의 섭리로 인간이 사는 길을 발견합니다 ^^
  • 삼막골 2016.07.29 19:53
    요즘 저의숙제또한.. 주님이 물어보실때 "세상에서 뭐하다왔냐고 물으실때"딱히 할말이 없는게 고민이고 숙제네요
    예수님처럼 이웃사랑실천하며 살길소망합니다^^
  • 쥰(joon) 2016.07.30 08:10
    숙제 숙제 ^^
    삶은 숙제네요
  • 하나님사랑합니다 2017.02.28 21:43
    알고있었던 해석과 일치한 부분이 많아서 이해하기 편하고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어요 ^^
    성서인문학을 읽어보라고 몇달전 교수님께서 말씀하셔서 읽으려구 시도했는데 ㅎ
    초등학생도 이해할수있는 수준이라고 하셨길래ㅋㅋㅋ
    전 첨 접하는 글귀가 많았어요 그래서 읽다가. 내가. 성경 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런가싶어 그동안 먼저 성경에 취중해서 읽고 듣고 한다음
    해야겠다싶어 그동안 성경부터 읽고 (겨우 ,,사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만 주야장천 까진 아니더라도 ㅋㅋㅋ)이제야 다시 도전해 보려구 평상시 에
    가장 궁금했던 주기도문부터 읽었는데 맛난음식 먹듯이 (후루륵 )훅 빨려들어가서 읽게됐어요
    ^*^ 참 쉽게 구체적으로 잘 풀이해주셔서 너무감사합니다
    기대 하고 천천이 다른 과목들도 도전해야겠어요
    참 감사합니다 고생하시네요 ㅠㅜ

    이렇게 제가 궁금한것부터 봐도 되는건지 교수님께서 기록하신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건지도 여쭙고싶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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