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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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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교에서 태어난 기독교

 

오늘부터는 유태교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탄생했는지 알아보기로 하겟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신학을 전공한줄 아시는 분도 계시지만 제 전공은 기독교역사문화학입니다.

드디어 전공 찾아왓습니다.

예전에 황목사님과 예수는 유태교인이다 아니다 가지고 약간?? 논쟁을 한적이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예수가 유태교인엿는지 아닌지는 뒤로 차치하고 기독교의 철학적 배경에는 유태교와 헬라(그리스)가 잇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한다면 기독교의 히브리적 배경을 알아야 성서를 더 잘 이해할수 있고 헬라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에 대한 기본 개념을 공부한다면 더욱 풍부한 성서의 이해가 가능합니다.(잘못하면 저처럼 될수도 잇겠지만요 ㅋㅋㅋ)

 

 

- 들어가는 말

 

먼저 성서인문학 시간은 신앙적 관점이 아닌 인문학적 관점을 가지고 기독교를 보는 시간이므로 신앙이라는 관점을 잠시 내려놓고 중용적 시각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김노아 목사님과 논쟁중 잠시 언급했지만 일반적으로 중용(中庸)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우유부단이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중간에서 눈치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중용은 사서오경중 중용에 나오는 유학적 개념으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남거나 모자르지도 않고 희노애락도 절제한 golden mean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나에 욕심, 선입관, 감정을 없애고 진리를 찾는다는 객관적인 눈으로 사물과 이치를 파악한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철학의 memos와 비슷한 의미로 쉽게 말해서 1이라는 주장과 100이라는 주장이 있을 때 그 사안자체를 나 자신의 선입관과 이해관계를 떠나서 1인지 100인지 바르게 본다는 의미입니다.

1도 맞고 100도 맞다라거나 중간인 50이 맞다가 아니고 1이 진리인지 100이 진리인지 정확히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로 강의를 해야 쉬운데 철학적 용어는 글로 설명하기는 정말 어렵네요)

 

성서에서 예수와 가장 많이 대적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바리세인은 잘아실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바리세인에 대해 잘알고 있을까요??

바리세인들은 예수에게 와서 진리를 찾았고 예수를 식사에 초대하고(누가7.36)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예수에게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누가13.31)예수제자들을 변호하여 풀어주기까지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어느 교회보다 바리세인이 더 건전하고 더 예수정신에 부합해 보입니다. 최소한 진리를 향한 그들의 열정을 한국교회는 눈꼽만큼도 못쫓아 가고 잇습니다.

(한국의 어떤 목사보다 진실하게 진리를 찾는 바리세인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바리세인으로 대표되는 유태교가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고 기독교는 은혜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은총론을 펴고 잇는데 과연 유태교가 율법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주장햇을까요?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세기 유태교 특히 바리세파의 경우 형식적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율법주의(coverantal nomism)자들 엿습니다.

즉,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신의 선택과 언약 그리고 신의 은혜로 벌써 구원 받았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은혜에 대한 감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5경의 편집자도 전승으로 이야기하고 잇습니다.

이집트에 노예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탈출시키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니들이 신의 율법을 잘지키면 탈출시켜 줄께라고 하지 않고 이집트의 노예살이(악)에서 일단 탈출(구원)시킨 이후 율법(십계명)을 주고잇는 모습을 그리고 잇습니다.

즉, 신이 우리를 구원햇이니 이에 대한 감사로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유태교의 율법에 대한 관점입니다.

유태교에 대해 무식한 4세기 이후 개독교 교부들이 유태교를 율법으로 구원받는 종교로 오해하고 무식하게 가르친 것이지요

(무식하면 그냥 모른다고 하자 어설프게 아는 것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처럼 위험한 짓은 없습니다. 모르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고 모르면서 이러고 저러고 평가하는 것이 창피한 짓입니다)

 

역사예수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보통 예수를 엣세네파 출신의 바리세인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잇습니다.

예수뿐만 아니라 유태교 예수파는 대부분 바리세인들였습니다.

최초의 순교자로 그려지는 스테판이 바리세인 였고 바울 역시 힐렐파 바리세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잇습니다.(힐렐파와 샴마이파는 제가 성서인문학에서 성서비평편에서 소개했었죠)

 

예수의 어록이라고 복음서에 기록된 어록중 상당수는 당시 바리세파 랍비들의 어록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팔복 산상수훈의 경우도 가난한자는 행복하다는 화두를 제외하고는 예수보다 1. 2세대 위에 살앗던 바리세파 랍비들의 어록이고(힐렐, 샴마이, 감리엘, 압바후 등)예수의 어록 대부분은 사실 탈무드에서 가져온 부분이 상당합니다.

성서비평가들은 보통 예수의 진짜 어록 일부에 제자들이나 성서의 저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유태교 랍비들의 어록을 가져다 붙인 것으로 분석합니다.

 

먼저 예수 당시의 유태인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요?

1세기 당시 유태인들은 바빌론 유수이전의 유태인들과는 문화적 혈통적으로 같은 민족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잇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예를 들면 그리스 역사를 흔히 트로이 전쟁으로 알려진 그리스와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른 그리스가 같은 민족인지도 불분명합니다.

트로이 전쟁으로 유명한 왕조 체재의 그리스와 민주정 그리스 사이에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bc 1100-750년 사이에는 어떤 기록도 흔적도 없는 암흑기 엿고 250여년만에 갑자기 민주정의 그리스가 등장합니다.

 

오스만 투르크 또는 터키로 알려진 지금의 터키는 사실 지중해 정착민에 후대 침략 몽골족의 결합으로 생겨난 민족이지만 돌궐에 자신들의 기원을 두고 잇습니다.

그러나 문화적 관계는 잇지만 사실 유전적으로는 고구려의 속민엿던 돌궐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즉, 우리는 바빌론 유수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유태인으로 인식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유태인이 아니고 유태교도들이 예루살렘으로 왓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유태교라는 것도 이스라엘의 종교가 아니고 이스라엘 구성원중 유대파(벤야민파와)의 야훼교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빌론 유수기간 동안 야훼교 유일신 사상을 정립한 종파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왓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유태교라는 말 자체도 2세기 이전에는 어느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고 2세기에 처음으로 Ἰουδαῖος(유태인(교)/ioudaismos)라는 기록이 처음 나타납니다.

바빌론 포로 2차 귀환을(bc 458) 이끌었던 에즈라(개신교에서는 에스라)가 히브리어 율법서를 읽어줄 때 항상 통역이 붙어 있었던 것만 봐도 당시 상황을 알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아 8장7절은 통역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8절에는 통역하여 알아듣게 햇다는 내용이 기록도;어 잇는데 8절을 개역 개정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라고 번역하여 무슨 성경공부를 한 것처럼 번역해 놨는데 원뜻은 통역했다가 맞습니다.

히브리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아람어로 통역을 해준 것입니다.

다행이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들이 통역을 하고 뜻을 밝혀 설명하여 주었으므로, 백성은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로 번역하여 뜻을 살리고 있지만 다른 성경에서는 애매하게 표현하여 본 뜻을 오해하게 번역해 버렸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교도들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납니다.

구약을 읽어보면(선입관을 버리고)영생, 지옥, 심판, 천국 같은 개념이 없거나 약합니다.

영생이나 이원론적 심판 지옥 천국 개념은 바빌론 포로기 이전의 기록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바빌론 포로기 이후 쓰여진 유태교 기록(경전(구약), 탈무드 등)에는 바빌론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이러한 개념들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철학이 대거 유입되면서 유태교도 그리스 철학과 결합하게 됩니다.

(사실 알렉산더는 그리스인도 아니면서 그리스인인척 하는 뻥쟁이지만)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이 유입되면서 그리스 철학의 특징이 인본주의 지헤에 대한 숭상이 일어나게됩니다.

교회에서는 보통 솔로몬이 썼다고 뻥을 치지만 사실 3세기 후반에 쓰여진 코헬렛(전도서)는 바로 그리스 스토아철학에 영향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카톨릭대백과 : 전도서 1:1절은 코헬렛을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밖에 1-2장 안에서 솔로몬왕의 삶을 암시해 주는 대목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작품이 유태교 랍비들이 사용하고 있었던 비교적 후기의 히브리어로 저술되어 있고 아랍어적인 경향이 농후하다는 점이나 전통교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유배시대 이후에 기초된 것으로 본다. 또한 기원전 2세기 중엽에 필사된 전도서 두 개의 단편이 쿰란 제4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최소한 마카베오시대 이전에 본 작품이 완성된 것으로 보아 그 저작연대를 대략 기원전 3세기로 추측하고 있다. 본질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저자는 그 작품구성에 있어서 그리스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가 살던 시대는 그리스제국시대(333∼367년)였으며, 당시 팔레스티나는 이집트의 프톨레메오 왕들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따라서 이집트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무튼 당시의 전체적 분위기는 그리스의 그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시대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비록 사물을 보는 방법은 히브리적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벌써 그리스사상을 다분히 풍기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또 하나는 유태교라는 기존 종교의 틀을 예수가 깨버린 것으로 착각하는데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정형화된 유태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당시를 포함해서 당시는 유태교안에는 수많은 종파가 존재했었고 분파가 생긴 이유는 보통 율법에 대한 해석과 종말에 대한 해석에 의한 부분엿고 예수도 유태교 율법의 형식보다는 정신을 강조한 종말론파중 하나였을 뿐입니다.(예수 본인도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한다고 주장하죠)

예수는 유태교 갱신론자였을뿐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햇지만 예수나 바울의 행보가 파격적엿지만 예수만의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유태인의 표시로 할례를 이야기하지만 유태교 안에서도 요수아 하나니아파에서는 할례로 구원받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선행을 통해 유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차별없이 구원받는다고 예수와 같은 주장을 하는 유태교 분파도 잇습니다)

 

또한 신약 자체에도 문제점이 심각합니다.

신약의 경우 팔레스타인 지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헬라화된 디아스포라 유태교인들에 의해 쓰여진 부분이 많아 사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리와 유태교도들의 풍습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한 기록이 수없이 많습니다.

복음서의 지리에 대한 언급을 분석해보면 말도 안되는 기록이 수두룩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어도 못하는 교포 3세가 한국의 풍습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웃기는 구절이 신약에는 수두룩 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0장에는 고넬로의 초대로 베드로가 같이 식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부정한 동물 보자기 꿈을 꾸고 이방인과 식사가 금지된 당시 율법을 깨고 고넬로와 식사를 하게 되엇고 이것을 보편적 구원이라는 의미로 유태인 기독교인들에게 근사하게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도행전을 쓴 저자의 소설입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유태교인의 풍습조차 모르는 무식한 사도행전 저자의 뻥치기 거짓말 소설입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우리는 보편적인 종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소설을 쓴것입니다.

왜냐면 당시에 이방인과 식사를 금지한다거나 접촉을 금지하는 율법이나 규례는 유태교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11장 3절을 보면 "왜 당신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었습니까?" 하고 따졌다.라고 기록하였는데 에세네파를 제외하고는 당시 어떤 유태교 분파도 이방인과의 접촉을 금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짜피 에세네파야 광야에서 자연생산물만 먹는 수도자 들였으니 이방인 볼일도 이방인과 밥먹을 일도 거의 없었겟지만.....이 구절가지고 폐쇄적인 유태교도들을 이야기하면서 보편적 기독교라는 설교를 하는 목사들을 보면 딱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모르면 입닥쳐라 빙신들아!!!)

 

또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네요. 오늘은 서론 들어가는 글이니 배경 설명 삼아 이말 저말 하겟습니다.

제가 개똥같이 이야기해도 여러분은 찰떡같이 알아듣는 은혜가 잇을줄 믿습니다 ^,^

 

예수사후 성립된 최초의 유태교 예수파의 공동체는 바로 예루살렘 공동체였습니다.

초기 예수파들은 바리세파(특히 온건파인 바리세파 힐렐계열)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졋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산헤드린에 체포됐을 때 가말리에(힐렐파의 지도자)의 도움으로 풀려나게되고 바울 역시 산헤드린 재판정에서 자신이 바리세파라는 변론으로 석방되고 야고보는 사두게파에 의해 순교햇을 때 바리세파가 야고보의 죽음에 대해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파안에서 두 개의 계열이 분리됩니다.(맨날 쌈질하는 유전자가 시작된 것이죠)

‘히브리파’와 ‘헬라파’로 예수파가 분리되게 됩니다

 

 

Screenshot_2015-11-15-01-57-18-1-1.png

(바울과 힐렐의 적통을 이어받은 가말리에 / 힐렐계열의 바리세인 예수파인 바울은 같은 바리세인들의 도움을 계속 받았죠)

 

 

히브리파는 아람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을 유태교의 한부분으로 인식한자들이고 헬라파는 헬라어를 사용하고 유태교적 율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자들 였습니다.

이들이 분리된 원인은 서로 언어도 달랐고 유태교에 대한 기본적인 태토도 달랐던 것에 잇습니다.

다수파인 히브리파는 헬라파의 불만을 받아들여 헬라파 출신의 7명을 집사로 선발하여 공동체의 제정을 맡겼지만 소수파인 헬라파의 소외계층이 공동체의 도움에서 소외되면서 양측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게 됩니다.

(7명의 집사에 대해 히브리파와 헬라파 양측에서 뽑앗다는 주장도 있고 헬라파에서 뽑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7명의 이름이 모두 헬라식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제 개인적으로는 전원이 헬라파라고 생각합니다 -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전 6장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소수파인 헬라파(당연히 그리스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정착한 이들이 소수일 수밖에 없었죠)는

헬라파의 긴장관계가 폭팔한 것은 바로 스테반의 죽음때문이엇습니다.

헬라파 집사엿던 스테판의 설교가 바리세인 뿐만 아니라 예수파의 히브리파의 견해에도 맞지 않아 스테판은 산헤드린에서 사형당하고 예수파의 헬라파계열은 예루살램에서 추방당하고 예루살램에는 예수파 중 히브리파 계열만 남게됩니다.

(신학계에서는 보통 사도행전에는 12제자를 빼고 나머지는 다 흩어졌다고 하지만 히브리파인 12제자가 남았다는 것은 히브리파는 박해에서 제외됐다고 보여지며(12제자는 히브리파로 분류됩니다)예수공동체 전체가 박해를 받았다면 제일 박해 대상인 12제자가 예루살램에 남아 있다는 것은 히브리파는 박해에서 제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행전에서 12제자를 빼고 다 도망갔다고 한 것은 행전의 저자가 헬라파이기 때문입니다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 행전 8장1절)

 

예루살램에 혼자남은 히브리파는 유태교 안에 살아남기 위해 더욱 보수화되고 이때 보수화된 히브리파와 바울이 할례문제로 대립하는 장명이 신약에 남아잇게 됩니다.

 

히브리파는 12제자 중심의 온건파와 강경파인 할례파로 또 분리되게 되엇고 결국 예루살램교회는 강경 보수파인 할례당이 접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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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성무교회 / 마리아의 집터에 새워졋다고는 교회인데 사실 이스라엘과 시나이반도에 남아있는 성지라는 것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다 가짜입니다. 중세에는 순례자들을 위해 지금은 관광객을 모으기위한 관광코스일 뿐입니다)

 

 

헬라파의 강경파로 등장한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 예루살램교회는 인정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울을 이단시하고 바울이 새운교회를 접수하는 등 계속 긴장관계가 지속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바울의 자신의 편지에서 계속 자기의 사도성을 주장하게됩니다.

(사실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바울이 제일 많이 한 말은 “나는 사도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로마시민권자로 니들하고는 다르다. 내 뒷다마 치는 놈들은 다 나쁜놈들이다”가 반복됩니다 ㅋㅋㅋ)

 

 

20170103_060618.png

(예루살렘교회는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의해 파괴되기 전까지 12사도가 지도하던 유태교 예수파의 어머니교회로 인정받았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승부를 보기 위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램을 방문을 강행합니다

(행전 21장 4절)

(예루살렘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수의 직계제자 12명에 의해 새워졌다고 인정받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리웟고 그 권위는 예수를 본적도 없는 듣보잡 바울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됩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동체와 바울을 중재하려 하지만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통성을 가진 예루살렘 공동체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요즘 말로는 파문당하거나 이단판정된 것과 마찮가지 상황으로 바울 역시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그냥 듣보잡이 되버리고 바울이 새운 교회 역시 이단 교회처럼 되버릴 수 밖에 없엇습니다.

 

예루살렘 방문에 실퍠한 바울이 죽고나자(AD66년?67년?)바울이 새운 교회 역시 예루살렘교회에 흡수되거나 예루살렘교회에 의해 파문되어 거의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발생합니다.

 

 

20170103_060552.png

(유태교 헬라파(바울파)의 수장인 교황이 유태교 회당을 방문하고 잇습니다. 2천년전 방문했던 바울의 방문은 실패했죠  ^^)

 

 

AD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예루살렘에 있던 유태(교)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모두 추방되면서 예수파 유태교인들 역시 추방되고 예루살렘의 예수공동체가 붕괴되버리면서 예루살렘 밖에 있던 바울파 교회가 되살아나게 되고 유태교 안에 있던 예수파 공동체(할례당, 예루살렘 교회)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바울파가 유태교 예수파의 주도권을 쥐면서 유태교로부터 분리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기독교)라는 용어는도 헬라파 안디옥교회에 대한 주변 유태교인들의 비꼬는 그리고 약간은 비하적 표현으로 시작되엇고 스스로 그리스도교라는 명칭을 쓰기시작한 것은 유태교로부터 완전 분리된 이후인 2세기초 안디옥의 교부 이그나티우스가 처음였습니다.

(보편적 교회, 보편적 구원이라는 개념도 이그나티우스에 의해 정착되게됩니다)

 

보통 기독교 역사학에서는 초기 교회를 셋으로 나누어 분류합니다.

 

예수 사후~70년 히브리파와 헬라파가 유태교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던 시기

70년~110년 히브리파가 소멸되고 바울파가 주류를 형성하던 시기

110년~180년 기독교가 유태교로부터 완전 분리되어 로마로 향하던 시기

 

 

 

오늘은 그냥 주저리 주저리 앞으로 공부할 내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였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유태교란 무엇이고 기독교는 유태교에서 어떻게 분리되어 나갔는지 순수한 역사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 신학자들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견해 그리고 신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몇회까지 갈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겟습니다. ㅋㅋㅋ

좀 길어질 것 같네요

 

 

 

  • GU153EF 2017.01.06 04:18
    안녕하세요, 인문학 내용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러한 성서 인문학은 일반적인 신학자 혹은 교회의 지도자들도 인지하는 내용인지요? 현재 교회내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용이고 또 이러한 내용을 얘기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고 사설(!) 혹은 이단사상이라 치부하는 분들이 있어서 여쭈어봅니다.
  • 제가 소개하는 내용은 거의 정상적인 신학대나 신대원에서 한번쯤은 공부하는 내용들입니다.

    제가 중간 중간 제중장을 하는 부분에 대해 동의못한다거나 이교도 같다는 것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잇지만 팩트자체는 학교에서 다 가르키는 내용입니다.

    어디에서 신학 하신분이 이단이라고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작은자교회에 저와 자주 논쟁하는 보수주의 칼빈파 목사이신 김노아 목사님과 논쟁 일부 보시면 신학대나 신대원에서 목사님들이 뭘 배우는지 약간을 아실수 잇을 거입니다.

    20170106_210301.png

     

  • GU153EF 2017.01.13 09:38
    답변 감사드립니다. 예전 교회에서 '신앙' 혹은 '영성' 을 강조하시는 지인(목사, 혹은 집사)들은 위에서 설명하신 인문학적 접근에 대해 '인본주의'라고 설명하며 굳이 비중있게 다루지 않거나 흘려버릴 것을 요구하네요. 제가 최근 읽기 시작한 A History of Christianity: the first three thousand years(저자: Diarmaid MacCulloch)에서는 위에서 설명하신 부분과 동일한 시각을 갖고 있네요. 쥰님의 계속되는 인문학 강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나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질문드리겠습니다.
  • 쥰(joon) 2017.01.13 14:12
    신앙 영성의 강조도 목회하시는분들 목회철학이니 그럴수 잇습니다.
    그러나 신이 우리에게 신앙과 영성만 주셨나요?
    머리도 주고 이성도 줬으니 우리가 생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겟죠
    인문학적인 접근이 문제라면 문학, 철학, 역사학, 종교학, 수학까지 출발은 인문학인데 그렇다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 인문학을 배우는데 정규 교육을 그만 둬야죠
    더구나 인본주의(secular humanism)라고 하셨다는 secular는 바로 이땅 세상을 의미하죠.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느님은 이 세상(secular)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셧습니다.
    신본주의를 주장하는 분들 만나신것 같은데 그분들은 돌아가신분들도 아니면 세상살이 하고 계신데 하느님이 사랑하는 속세를 만나지 못하셨나보네요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세상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의 도를 전한 것입니다.
    즉, 예수의 제자들은 神의 뜻을 받아(신본) 세상을 위하여(인본) 복음을 전했던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어설픈 신본주의 흉내내는 분들께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이 6일간 세상(secular)을 만들고 아름답다고 하셧고 자기 형상으로 인간(humanism)을 만들엇고 예수는 자기 목숨을 세상 인간에게 내주러 왓는데 인본주의(secular humanism)세상이 문제라면 머리 깎고 산속 절에나 들어가 중이 되야지 왜 인간들하고 세상살이 하는지 궁금하군요
    잘못된 신본주의 잘못된 인본주의가 문제지 神도 人間도 그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도 이상하고 기독교도 이상해져서 속에 욕만 쌓입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 sozo 2017.01.06 09:43

    김쌤의 가르침이 설령 기존의 기독교 가르침에 심각하게 위배가 된다고 해도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이단 삼단 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누가 처음 교리들을 확정했는지 그리고 그 교리들은 논쟁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게되면 확정된 교리(교훈)가 성경적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라는 강요가 여기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말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기독교에서 목사들이 해대는 말들이 하도 말같지 않은 말들이다 보니까 제가 판을 깔았어요
    뭐 이래서 믿음이라는 것이 하느님이 받으실만한 것이 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그런 거였죠
    여기에 성경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으신 김쌤을 제가 억지로 모셨습니다
    사실 여러 일로 매우 바쁘신 분인데 이렇게 참여를 해주시는 겁니다

    그냥 배움의 터에서 이것 저것 배우신다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는 뭐든 배우자나요
    김쌤을 통해서는 역사적 시각을 세워나가시구요
    저를 통해서는 신앙적 해석을 들으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GU153EF님께서 나름대로의 성경관을 확립하시고 그에 따른 신자의 삶을 살아나가시기를 바랍니다

  • 차영배원주 2017.01.08 18:05
    1편 내용은 교회의 생성과정이 당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등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같아 제가 정리해보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바리세인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 쌤 계속 수고~~~^^
  • 쥰(joon) 2017.01.13 14:14
    시작이라 이말 저말 늘어져서 그럴것입니다.
    마지막편에서 전체 정리를 할 예정이니 그냥 흘리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
  • 삼막골 2017.01.16 10:19
    교수님..저두 요즘 슬슬~발동걸고..
    다시 성서인문학 주어먹기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읽고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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