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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계속됩니다.

 

◎ 예레미야

 

예레미야서는 단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는 시문(詩文)으로 쓰여진 신탁(神託)과 전기적 이야기들 뿐 아니라 신명기와도 비슷한 문체로 쓰여진 산문(散文)의 연설들도 많이 수록하고 있다. 그중의 어떤 본문들은 예레미야의 친저(親著)가 아니라 유배 이후의 신명기적 경향을 띤 편집자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예레미야적 전승이 하나의 형태로 전수되지 아니 했다는 것이다.

성서의 그리스역본은 마소라 본문보다는 8분의 1가량 짧게 예언자의 말씀을 수록하고 있으니 그 세부묘사도 서로 차이가 있다. 쿰란(Qumran)의 발견은 원래 예레미야서의 두 가지 대본이 히브리말로 쓰여졌음을 전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역본은 25:13의 뒤에 수록된 민족들에 대한 신탁들을 히브리성서의 순서와는 달리 예레미야서의 끝부분 곧 46∼51장으로 옮겨 배치시키고 있다.

이 예언들이 처음에 특수한 문집(文集) 안에 수록된 것같다. 어떻든 그 문집의 전체가 예레미야의 전승 안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 가령 모압가 에돔에 관한 신탁들은 해석의 흔적이 매우 뚜렷하며, 또 바빌론에 대한 긴 신탁, 50∼51장은 유배시대의 끝에 가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52장은 2 열왕기(列王記) 24:18~25:30에 병행하는 내용으로서 일종의 역사적 부록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작은 문헌들이 예레미야서에 삽입되기 시작하였다.

편집자들은 여러 가지 사건과 예언을 이중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예레미야서는 시대에 대한 지시사항을 많이 기록하고 있지만 엄격한 의미로 연대기의 순서에 따라 그 본문들을 정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책의 무질서한 배치는 오랜 시간 동안의 편집작업이 낳은 결과이다. 또 그 편집과정을 역사적으로 세밀하게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에레미아서는 예레미아가 쓴 것이 아니고 여러 전승과 여러문서가 바빌론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편집된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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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  12세기 작품)

 

 

 

 

◎ 애가

 

‘애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예언자는 예레미야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애가의 저자가 예레미야라고 믿어 왔다.

또 2역대 35:25의 본문은 예레미야를 비가를 지어 부른 시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었다고 믿었으며, 후자는 전자의 속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역사비평은 아래의 이유로 애가의 저자를 여러 명으로 보고 있다. 예레미야가 공격한 여호야킴왕(예레 22:13-28, 37:17-21과 애가 4:20을 비교)을 위해 비가를 지어 불렀을 수가 없었고, 또 이집트의 원조를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으며(애가 4:17과 예레 37:7-8) 그리고 나라의 멸망 뒤에도 예언자들이 활약했다고(애가 2:9과 예레 42:4-22을 비교) 말할 수가 없고 집단적 응보사상(애가 5:7과 예레 31:29을 비교)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는 것 때문이다. 더욱이 애가가 에제키엘 예언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저자가 여럿이란 가설이 나온 것이다. 어쨌든 어떤 저자들이 애가를 저술하였고 또 누가 그 책을 최종적으로 편집하였는가의 질문은 오리무중이다‘

 

(애가 역시 예레미아가 지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증입니다)

 

 

◎ 에스겔서

 

‘책의 첫부분에 수록된 신탁들이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으며 또 에제키엘 자신이 육체적으로 그 도시에 현존했던 것처럼(특히 11:13)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에제키엘이 장소가 다른 두 곳에서 에언자로 활약했다는 가설을 내세우게 하였다.

첫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으니 에제키엘은 그 도시가 멸망한 587년까지 팔레스티나에 남아서 설교했다는 가설이다. 그 다음에 에제키엘이 바빌론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에게 가서 설교했다는 가설이다. 2:1-3:9의 두루마리에 관한 비전은 팔레스티나에서 있었던 예언자의 소명을 증거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수레에 대한 비전(1:4-28과 3:10-15)은 유배간 사람들에게 가서 활동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힌다. 문제는 비록 에제키엘이 팔레스티나에서 활약했음을 인정할지라도, 그가 언제나 예루살렘의 성 밖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예레미아와 에제키엘이 예루살렘에서 함께 설교했다면, 그 두 예언자들이 서로 알고 있어야 할텐데 에제키엘서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8:3에 의하면, 에제키엘은 ‘비전 가운데’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질책한 신탁들은 유배간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아 둘 것이다. 에제키엘은 흔히 비전 안에서(11:24) 공간을 극복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 성서학자들은 에제키엘이 두 장소에서 활약했다는 그 전통적 가설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보통 두명 또는 복수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입니다.

에스겔과 그 제자(또는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일반적으로 분석합니다)

 

 

◎ 다니엘서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딤(Hasidim)[‘경건한 자들’이란 뜻]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 사람들로 구성된 유태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반란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이들은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간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다니엘서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67-164년)의 극심한 박해 때 집성되었고 호된 시련에서 유다 백성에게 힘을 실어 주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였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주인공이지만 다니엘이 썻다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보통 바리세파 계열의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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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과 사자 ^^ 내용은 아시죠)

 

 

 

◎ 호세아

 

‘구약성서 중의 예언서의 하나. 예언자 호세아가 쓴 것이다.

단지 후대에 다소 수정한 흔적이 있으며 또한 약간의 주석(註釋)이 본문 중에 섞여 들어간 점 등으로 보아 아무래도 장(章)과 구절을 약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세아서는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에 영향을 주었으며 신약성서에서 곧잘 인용되고 있다‘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친남유다계열의 저자인 호세아(기원전 750년 전후)의 기록으로 보지만 후대에 첨가되고 재편집되었다고 연구되어집니다)

 

 

◎ 요엘서

 

‘요엘서를 두 사람이 따로 집필했으리라는 설이 있으니, 베른(Vernes, 1872)이 처음 이 같은 이론을 폈고 롯시타인(Rothstein, 1896)이 이 이론을 따랐으며 듐(Duhm, 1911)은 이를 크게 발전시켰다. 듐에 의하면 1-2장은 박력 있고 창조력이 풍부한 시인의 작품이며 3-4장은 유다회당의 설교가의 작품으로 후자의 문체는 보잘 것 없는 산문으로, 저자는 1장 15절, 2장 1b-2a절, 2장 11b절에 종말론적인 성격의 글을 삽입시켜 자신의 작품을 시인의 작품 1-2장에다 첨가시켰다는 것이다. 요엘서의 이중 저자설은 여러 성서 해설가들에 의해서 줄곧 주장되어 왔다

요엘이라 불리는 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제1장 1절에 그는 ‘브두엘의 아들’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어떤 이들은 요엘서의 첫째 부분이 성전의 전례를 반영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 성전에서 일하던 경신례 예언자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요엘서의 구조가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예언자 그룹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요엘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깊이 있는 종교적 사상가이며 훌륭한 시인이었음은 알 수 있다’

 

(두명 이상의 그룹에 의해 쓰여졌다는 주장도 있고 1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주장도잇습니다.

쓰여진 시기는 기원전 6세기 또는 4세기 등 주장이 잇지만 보통 기원전 4세기로 생각되어집니다)

 

 

◎ 아모스

 

‘아모스서는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① 신탁(神託) : 아모스서의 신탁들은 아주 짧고 폭발적인 어투다(1:2, 3:2, 5:16 이하, 7:9 등). 그러나 동일한 양식 안에 제법 긴 문장으로 된 신탁도 있으니 “…의 세 가지와 네 가지 죄 때문에 …”라는 도입어(導入語)로 시작된 신탁이다(1:1, 4:6-12 참조).

② 자서전[J.D. Watts, Vision and Prophecy in Amos, Leyde 1958] : 다섯 편의 현시(顯示)가 여기 속한다. 그런데 이 현시들은 원래는 앞부분에 위치했으리라 추측되니, 다섯 번째 현시의 내용으로 보면 아모스가 베델에서 추방되기 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③ 전기 : 7:10-17의 표제에는 아모스가 3인칭으로 등장하니 아모스에 대해 전해져오는 설화를 쓴 것 같다.

따라서 후대의 한 편자가 위와 같은 여러 단편적인 글들을 수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 같다‘

 

(아모스는 여로보암(bc750년대)시대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모스서는 여러 예언적 문서와 설화를 엮어 만든 문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 오바댜

 

‘어떤 주석가는 이 예언자가 조리 있고 문학적 단일성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처벌받은 에돔이라는 테마가 예언서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Van Hoonacker, Gelin, Weiser, Bic).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상기 단일성을 부인하고 신탁들이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예로 로빈슨(Robinson)은 이 예언서가 여덟 가지의 독립된 신탁(1-4, 5, 6, 7, 8-11, 12-15, 16-18, 19-21)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가 하면,

포레르(G. Fohrer)는 다섯 가지 신탁(1-4, 5-7, 8-11, 12-14 및 15b, 15a 및 16-18)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이 예언서를 크게 양분(1-14절 및 15절a와 15절b 및 16-21절로)하자는 의견이다. 여기서 19-21절을 별도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이유는 이 구절이 산문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전체 문맥과는 상이한 테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바디야서는 적어도 두세 명의 저자가 참여한 공저(共著)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에돔인들에게 대한 심판 등을 기록한 곳으로 봐서 bc 5세기경에 작품으로 보통 9절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분류합니다)

 

 

◎ 요나서

 

‘요나서는 일종의 미드라시(Midrash), 즉 역사서술적 설명을 띤 설화로서 종교적 교훈을 담고 있다. 신학적으로 보아 이 교훈 설화는 가장 중요한 예언서이지만 역사적 문헌으로 간주하지는 않으니 그 역사적 신빙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요나서의 집필 연대는 그 문학적 특성이나 신학적 사상을 토대로 추측하는 수 밖에 없다. 볼프(Wolff)는 기원전 4세기 즉 30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주장한다’

 

(문학작품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소설(미드라시)이죠

말이 나온김에 미드라시 공부하고 가죠 ^^

미드라시를 기독교사전에서 찾아보면

성서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응시킬 목적으로 성서에 대한 설교적 주석을 시도한 유대문학의 유형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용어. 이 용어는 구약성서에서 3번 나오는데, 주해서(2역대 13:22, 24:27)와 ‘학교’(집회 51:23)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편 쿰란문학에서 ‘연구’, ‘주해’로, 랍비문학에서는 ‘성서 주석’의 뜻으로 이 말이 사용되었으며, 특히 3세기 이래 후기에 성행한 학문적인 성서주석보다는 전기의 설교적 성서주석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그래서 성저의 자의적(字意的)인 해석보다는 성서의 숨겨진 깊은 뜻을 찾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하였다. 오늘날 ‘미드라시’는 문학유형을 일컫는 말이 되었고 2세기에서 13세기까지의 랍비적인 주석문학을 표현하는 술어로 쓰이고 있다. 또 초기 유대문학에서와 신약성서에서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드라시의 특징은 성서를 주제로 하여 사변적인 연구보다는 실천적인 설교를 하는 점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세대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논하는 것이다. 미드라시의 형태는 그 내용에 따라 성서를 법적인 관점에서 논한 할라카(halakah)와 교훈적으로 해설한 하가다(haggadah)로 구분된다. 미드라시적인 서술은 구약성서(집회 7:27-28, 1마카 7:16-17)와 신약성서(갈라 4:21-31, 히브 3:7-4:11, 7:1-10) 및 쿰란문학에서 나타난다. 요한 6:31-60과 지혜 11:2-19:22는 미드라시적인 설교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즉,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 보통 설교 시작 부분에 예화를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드라시는 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예화(소설 ㅋㅋㅋ)로 된 설교형태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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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서를 표현한 석판 / ad 350년 작품)

 

 

◎ 미가

 

‘미가서의 짜임새는 인위적인 인상을 많이 풍긴다(Eissfeldt 참조). 그 구조는 1-3장(위협 설교, 2:12이하는 제외), 4:1-5:8(약속 말씀), 5:9-7:6(위협 설교), 7:7-21(약속 말씀)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각 부분을 미가가 직접 집필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밝히기가 어렵다

4개의 단편(7:7-10, 7:11-13, 7:14-17, 7:18-20)으로 구성된 전례문(典禮文, 7:7-20)[Bo Reicke, Liturgical Tradition in Mic 7, Harv. Th. Rev. 1967, p. 349-367]은 유배 이후의 작품인 것 같고, 조르즈(George)도 미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스펠트(Eissfeldt) 같은 학자는 이것이 미가의 작품이라고 말하는데, 일면 그의 논증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처음에 나오는 약속 말씀(4-5장)의 저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더욱 분분하다. 이 말씀들은 질서정연한 순서에 따라 편집된 소귀절들로서, 예레 30-31장, 에제키엘서, 제2 및 제3 이사야의 영향 하에 미가 4-5장을 위해 편집된 단구들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미가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르노(B. Renaud)의 말을 빌면[B. Renaud, Structure et attache litteraie de Michee IV-V, Paris 1964, p. 86] 아무리 빨라도 5세기에 씌어진 작품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카펠루드(Kapelrud)는 상기 단구들이 사마리아가 함락되자 바로 쓰여진 전례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이스펠트는 4:1-5:8이 3:12의 저주를 보완하기 위해 미가서에 첨가된 구절이라고 하며, 다이슬러(Deissler)는 이 첨가 구절 중 4:14, 5:3, 5:5b. 9-14만이 미가가 직접 쓴 글이라고 주장한다‘

 

(미가서는 bc8세기 인물인 미가가 썼다고 주장되어진 부분(1-3장, 6장)도 있고 분명히 후대에 쓰여진 부분(바빌론유수기간)도 있어 전승되어 내려온 문서를 후대에 가필 편집한 문서로 보시면 됩니다)

 

 

◎ 나훔

 

‘엘코시(Elkosh) 출신의 예언자 나훔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남긴 조그마한 예언서밖에 없다. 그나마 이 예언서까지 숱한 주석상의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추정은. 그가 유대 출신의 예언자라는 사실 뿐이다

나훔서의 서두에 나오는 시편이 예언자 나훔의 생존 당시보다 훨씬 후대에 작시(作詩)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아직 확증할 방도는 없다‘

 

(나훔은 bc 650년 전후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사실 누군지 모릅니다)

나훔서에 나오는 싯구는 대부분 이스라엘의 예배때 불리웠던 기도문 또는 찬양시(요즘의 찬송가)입니다)

 

 

◎ 하박국

 

‘아람족에 속하는 칼데아인들이 기원전 8세기에 바빌론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597년에 공략당했고, 기원전 587∼586년에 와서는 함락되었으며 뒤이어 유다도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바꾹서는 바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의 전환점에서 생겨난 작품이다.

우리는 하바꾹 예언자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다니엘서 14장 33절 이하에 다소 이 예언자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는 ‘미드라시’(Midrash)로서 교훈적인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박국은 레위 지파의 인물로 추정되고 특히 3장이 예배의식에 쓰여진 찬송가라는 근거로 성가대원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쓰여진 시기는 보통 기원전 540년으로 봅니다. 미드라시가 뭔지는 위에서 설명 드렷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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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박국 / 12세기 작품)

 

 

 

◎ 스가랴

 

‘이사야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가리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즈가리야서 제1부(1-8장)는 예언자 즈라리야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나, 제2부(9-14장)는 즈가리야보다 훨씬 후대의 어떤 작가 - 일반적으로 제2즈가리야라고 칭한다 - 가 집필한 작품으로 본다’

 

(스가랴를 둘로 나누면 1-8장은 스가랴와(bc 529년 전후)관련된 부분으로 성전 재건을 응원하고 귀환자들에게 힘들 주는 내용이고

후반부 (9-14장)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사실 스가랴와 관계없는 출처도 불분명한 문서입니다.

스가랴의 후반부는 메시야사상을 품고 잇어 신약에 인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마태 21:4-5/요한 12:15/마가 14:27/마태 26:31/마태 27:9-10/요한 19:37).

그렇다면 출처도 불분명한 남의 이름을 도용한 후대에 첨가된 문서를 신약에서 차용하게되는 것인데............)

 

 

◎ 말라기

 

‘유다전승은 말라기를 에즈라와 동일 인물로 보았으니 그 제시하는 종교적 이상, 시대적인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라기서는 1장 1절과 3장 1절에 나오는 ‘나의 사자’(=말라기)를 뜻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자기 이름으로 제시한 익명의 예언자가 기원전 455년 직전에 쓴 것으로 여겨진다.

말라기서에 신명기의 문학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집필연대를 에즈라의 ‘제관계 법전’ 공포 이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에즈라가 활약하던 시대에 대해 아직 논란이 거듭되고 있으므로 어림잡아 기원전 460년경으로 말라기서의 집필연대를 말한다‘

 

(말라기가 bc460년(516년-450년 사이)에 쓰여졋다는 추정은 말라기가 재건된 성전(bc 516 건축)을 상정하고 잇고 bc 450년경 느헤미야의 야훼교 공동체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말라기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나(神)의 사신이라는 의미이고 말라기서는 익명으로 쓰여진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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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 / 시에나 대성당)

 

 

 

 

- 다음편에 신약이 계속됩니다.

 

 

 

 

 

 

 

 

  • 차영배원주 2016.04.12 20:33

    축자영감설을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할지,,,
    구약을 거의 설화로 보는 나의 시각이 깊어지는 것은 왜일까?
    신약편은 제가 제일 기대하는 것이라 기다려 지네요.

  • 쥰(joon) 2016.04.17 17:11
    설화... 전승정도로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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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공지드립니다 ㅜㅜ 제가 4월18일 출국해서 6월13일 돌아옵니다. 불가피하게 2달동안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도 4개월(16주)하고 2달 쉬니까 우리도 좀 쉬죠  ^^) 앞으로 4주간... 9 2016.03.16
36 종교철학 33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6편 / 바빌론과 페르시아 황목사께서 한국에 오시고 공식적으로는 처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시간들 가지시고 즐거운 신앙의 시간 가지셧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틀밖에 참석 못했지만 ... 12 file 2016.03.12
35 종교철학 32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5편 / 이집트와 출애굽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브라함은 우리의 단군 정도에 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고 모세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 12 file 2016.03.02
34 종교철학 31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4편 / 에블라, 마리, 우가릿,에마르 신화 수메르신화를 끝 내면서 전번 시간에 빠진 부분이 좀 있어서 보충 들어갑니다 ^^ 수메르 토판은 워낙 방대해서 다 할 수는 없고 성서와 관계된 부분을 대충 살펴... 4 file 2016.02.26
33 종교철학 30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3편 / 수메르 신화2 설날 잘지네셧죠 ^^ 설 연휴도 겹치고 너무 오래 쉬었네요 ^^ 시동이 걸리면 줄줄 잘나가다가 한번 쉬니까 다시 시작하기가 힘드네요 지송   본격적인 시작전에 ... 10 file 2016.02.21
32 공지 드립니다 ^^ 설연휴 잘 보내셧는지요 ^^   연휴가 지나고 나니 사무실에 일이 좀 많이 밀려서 성서인문학 강의를 한주 쉬어야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7 2016.02.14
31 종교철학 29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2편 / 수메르 신화1 설날 전에 처리해야 될 일들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좀 바빠 2편이 많이 늦어졌네요 지송 ^^   작년에 사촌 형님되시는 분이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가져와서 이... 6 file 2016.02.06
30 종교철학 28편 -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 1편 / 성서비평(JDPE가설) 인문학으로 성서 읽기 (1)   본격적으로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공부한 내용은 사실 모두 밑밥입니다. 인문학으로 성서에 대해 시... 16 file 2016.01.25
29 종교철학 27편 - 칼 바르트 3편 /교회교의학(2) - 화해론 -   - 객관적 화해론   바르트의 화해론에 특징은 객관적 화해론의 주장입니다. 기존 정통신학에서는 인간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 들일 때 신과 ... 12 file 2016.01.18
28 종교철학 26편 - 칼 바르트 2편 /교회교의학(1) 앞편에서 바르트의 대략적인 분위기는 아셨을 것이고 이번 편부터 바르트의 신학사상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교회교의학 전체를 다루기는 좀 방대하고 주제별로 중... 10 file 2016.01.14
27 종교철학 25편 - 칼 바르트 1편 / 칼 바르트는 누구인가 바르트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바르트에 대한 제 개인적인 판단도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이 기준일 수는  없고 바르트를 아무리 객관적으로 ... 8 file 2016.01.06
26 종교철학 24편 - 미술과 종교 /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 2편   위 그림은 리베라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와하는 작품으로 꽃의 화려함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아름다운 부유층의 거실을 장식할 꽃을... 9 file 2015.12.31
25 종교철학 23편 - 미술과 종교 /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부부 1편 우리 대학 시절 5월이 되면 학교 벽면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던 광주항쟁관련 벽화가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당시 전두환시절이라 백골단들이 취류탄을 난사하고 몰... 4 file 2015.12.31
24 종교철학 22편 - 미술과 종교 /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현대미술읽기가 어려운 이유 !!!   현대미술은 완전한 작가주의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   - 중세는 신(하느님, 예수님)중심 - 르네상스에서 야수파, 입체파까지는... 6 file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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