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성서 인문학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 북방(대승) 불교의 시작 -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문화 교류를 보면 인더스(인도)문명과 중근동(아랍)문명은 활발함을 보이지만 황하문명(중국)과 인더스 문명은 차단된 상태로 독자적인 발전을 합니다.

인도와 중국사이에는 지구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이 자리 잡고 있어 고대의 문화 교류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2세기 안세고 등이 불교경전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을 깃 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전 중심의 불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수당시대에 불교는 최고 부흥을 맞이하게 되고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의 손오공과 삼장법사(현장)를 보면 어마어마한 고생을 해서 법국(인도)로 가는 여정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 만큼 인도와 중국의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인도를 가려면 험난한 히말라야를 넘어야했고 아마도 실제 현장법사가 인도에 불경을 구하러 가는 여정은 고난에 연속였고 이것을 소설화한 것이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입니다.

인도에 가는 목적이 소설에도 나와 있는 것 처럼 바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여정 입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孫悟空), 저팔계(豬八戒), 사오정(沙悟淨)은 모두 불교식 법명입니다.

오공(悟空)은 불교의 공(空)사상을 깨달으라는 것이고

팔계(八戒)는 출가하지 않은 불제자가 지켜야할 8가지 계율을 말하는 것이고

오정(悟淨)은 올바름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 실제 현장법사가 인도에 갈때 네명(오공(悟空),오능(悟能),오정(悟淨),오혜(悟慧))의 제자가 같이 동행 했는데  그중 단 한명만 인도에 도착했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여정 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불교는 경전 중심입니다,

즉, 수행을 통한 해탈이 아닌 경전(책)을 보고 점점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서 깨닫는다고 해서 교종(敎宗)이라고 점점 깨달아 간다고 해서 점오점수(漸悟漸修)라고 합니다,

점점 깨달아 (漸悟) 가면서 점점 수행(공부/漸修)해 나간다는 뜻입니다,

 

책을 읽어야 하니 교종은 최소한 글을 읽을 줄알아야 했고 당대 문자 해독률이 5%도 되지 않는 시절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귀족이 아니면 불가능했고 당연히 불교는 지배층 중심의 귀족종교가 되버립니다.

지배계층의 문화는 당연히 화려해지고 교조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한국의 불교 역시 마찮가지 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달마 조사입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는 진짜 불교인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하게 됩니다.

싯다르타가 책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고 수행(참선)을 통해 깨달았으니 진짜 불교가 들어온 것이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선종(禪宗)은 달마의 법통을 이어 받은 선종 6대 조사인 혜능에 와서 완전히 정립됩니다,

 

거울(마음)에 먼지(잡념)가 끼지 않도록 계속 거울을 깨끗이 닦아야한다는 (漸悟漸修)

싯구에

혜능은 거울도 없고 마음도 없는데 닦을게 뭐가 있냐(무슨 수행을 계속하느냐)는 답글을 통해 선종의 기념 개념인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합니다.

 

한방에 깨닫고 (頓悟) 수행도 끝낸다(頓修)는 것입니다.

즉, 원래 싯다르타가 깨달은 것처럼 해야 진짜라는 것이지요

(싯타르타 입장에서 보면 돈오돈수가 당연히 타당하겠죠)

 

 

- 한국 불교의 특징 -

 

한국 불교은 어떻게 돌아가냐 하면 고려시대를 깃점으로 돈오돈수와 점오점수를 적당히 섞어서 돈오점수가 현 조계종의 주장입니다.(한방에 깨닫지만 수행은 계속 해야 한다는)

 

이런 한국 불교를 미친놈들이라고 일갈한 분이 바로 성철 스님입니다.

깨닫고도 계속 수행이 필요하다면 그 깨달음은 가짜라는 것입니다.(저도 당연히 동의)

진정한 깨달음은 해탈에 이르는 것인데 산꼭대기까지 다 올라가서 더 이상 올라갈 봉우리가 없는데 무슨 등산을 계속 하냐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90% 이상을 점하는 종파인 조계종은 선종을 추구하지만 그 동안 한국 역사에서 계속 되어진 교종의 그림자를 벗지 못한 것이죠

이것을 성철 스님은 도적놈 들이라고 일갈한 것이죠(한국기독교에도 필요한 말이죠)

 

성철스님의 법어는 불제자라면  싯다르타가 주장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상철 스님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겟지만 최소한 깨달음을 알아본 견성에 경지에는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불교의 특징은 고려 지눌에 의해 도입된 간화선(看話禪)입니다.

종교 관련 사전을 보면 간화선을

 

“知訥의 思想은 禪과 敎가 複合된 多樣性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看話決疑論을 통하여 看話禪思想을 天命하였다. 看話決疑論에서 禪과 敎의 對比를 통해 看話禪의 우수함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나라 禪의 思想的 脈絡이 되고 있는 捨敎入禪의 原流를 提示함”

 

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ㅋㅋㅋ 뭔소린지 아시겟습니까?

그냥 쉽게 스승이 내려준 화두(話頭)를 가지고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화두는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화두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답이 왜 ‘뜰 앞에 잣나무일까요?’

화두에는 글로 쓸 수 있는 답은 없습니다.

혜능과 혜능의 스승인 흥인조사의 예를 보면 어렴풋이 화두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거울과 먼지)거울도 없고 내 마음도 없다는 혜능의 싯구를 보면 흥인조사는 혜능의 깨달을을 알고 밤중에 혜능을 불러 도망가기를 명하고 자신의 지팡이를 쥐어 줍니다.

 

즉, 화두는 거의 깨달음의 문앞에서 깨달음의 문고리를 잡고 열기만 하면 되는 제자에게 완전한 깨달음을 가진 스승이 툭 어깨를 쳐서 문이 열리게 해주는 한마디의 도움말이지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 퀴즈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화두를 가지고 구구한 해설을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글쎄요???

道를 道라하면 그것은 이미 道가 아니지 않을까요?

 

또한 싯다르타를 따라야 진정한 불자라면 간화선은 싯다르타의 수행법은 아닙니다,

불교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방편(方便)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간화선이 문제가 있는 수행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장동 족발집 중에 어떤 가게가 장사가 제일 잘되고 맛있는 집이라고  원조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당대 최고의 선승인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의 문하에서 고행 정진을 하였으나 두스승의 고행이 가짜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만의 중도적 수행으로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

즉. 화두를 받을 수승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한국 불교 역사에서 원효와 성철을 제외하고 깨달음의 경지 또는 견성의 경지라고 올라가신 분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 이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줄 스승이 얼마나 될까요?

 

 

- 한국 불교의 성불 원효 -

 

얼마 전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니 조폭을 희화화 하면서 한쪽 어깨에는 ‘一心’ 다른 쪽 어깨에는 ‘차카게살자’라고 문신을 하고 나온 것을 보고 한국인에게 원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원효의 사상은 이 두 마디로 정리가 끝납니다.

 

일심사상은 무얼까요?

‘元曉의 一心思想은 그의 著書 金剛三昧經論, 大乘起信論疏 등 그의 모든 著述에서 철저하게 天命되고 있다. 人間의 心識을 깊이 通察하여 본각(本覺)으로 돌아가는 것, 즉 歸一心源을 窮極의 目標로 設定하고 六波羅蜜의 實踐을 强調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진리는 결국은 하나의 진리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의 위대함은 이론이 아닌 지행합일과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에 있습니다.

 

인도에 가면 최고계급인 브라만의 직업 중에 요리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하위계급이 만든 음식은 부정하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계급이 만든 음식만이 모든 계급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카스트 제도가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사제, 왕자, 평민, 불가천족까지 한자리에 앉혀 놓고 차별없이 가르쳤고 최후에 만찬(^^)도 불가천족의 초대에 응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원효의 경우도 깨달음을 얻은 이후(해골물 이야기는 상징적 표현)귀족이 아닌 민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본적으로 당대는 교종이 유행하던 시기로 불교가 지배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원효는 민중속에서 평등을 주장합니다.

 

광명진언 천번을 하면 누구나 해탈을 한다는 원효의 주장은 천번을 외우면 정말 해탈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당시 스스로 석가족을 자칭하며 평민과 스스로를 구분하던 신라왕실(지배 계층)을 포함한 지배 계층도 해탈하려면 평민과 똑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문학적 표현 아닐까요?

 

당시 요석공주와 화간을 통해 설총을 낳고 아예 표주박 술병을 차고 다니면서 백성들과 술마시고 돌아다니는 원효를 향락이나 즐기는 파계승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에 개인적인 해석은

향락을 금지하여야 하는 것은 수행에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등산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등산 도중 쉬는 경우 절대 앉아서 쉬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앉아서 쉴 경우 다리에 힘이 이완되어 일어나기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올라갈게 되면 앉아서 쉬게 됩니다.

 

즉, 수행을 할 때에는 여러 가지 금기가 있지만 완전한 깨달을(頓悟)를 얻은 후에는 더 이상 수행이 필요없는데(頓修) 수행에 방해되는 금기가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요?

 

민중불교를 표방한 원효에게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한잔하는 들이키는 막걸리가 기생을 옆에 끼고 기름진 안주와 같이 마시고 노는 귀족들의 술과 같을 수 있다고 생각 했을까요?

바리세인들로부터 술주정뱅이에 파티나 즐기는 놈이라는 욕을 먹은 예수가 마신 술잔도 원효가 마신 술잔의 의미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예수를 원효에게 비교한다고 욕하지는 마시구요)

 

Screenshot_2015-09-24-21-18-56-1-1.png

                                                                                                     (싯다르타, 혜능, 원효, 성철)

 

 

- 덧붙임1 보살이 뭐죠? -

 

흔히 사찰에 가면 밥해주는 공양을 하는 나이 많은 어머님들을 보살님이라고 합니다.

보살 개념을 종교사전에서 찾아보면

‘梵語로 Bodhisattva의 音寫인 菩提薩埵의 준말이다.

大乘의 菩薩思想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誓願과 回向이다. 그것은 衆生을 救濟하겠다는 誓願이며, 자기가 쌓은 善根功德을 남을 위하여 獻身하겠다는 回向이다’

 

저는 종교 철학 관련 사전이나 서적을 보면서(특히 80년대 이전 발행된)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할까 하는 것입니다. ㅋㅋㅋ

 

쉽게 이야기하면 거의 해탈의 경지 직전까지 갔는데 자신의 해탈 보다는 중생과 함께 해탈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중생을 돌보는 수행자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후대 북방불교적 개념입니다.

 

남방불교는 겨우 자기 혼자 해탈하려고 작은 수례를 끌지만 우리는 다 같이 해탈하려고 큰수례를 끌고 간다고 해서 자기들은 大乘불교, 남방불교는 자기 혼자만 간다고 비하해서 小乘불교라고 부르는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싯다르타는 해탈을 먼저하고 제자를 가르쳤으니 자기 혼자달려가는 수례(小乘)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싯다르타의 길을 간다는 불제자는 싯다르타를 따라야하고 그렇다면 남방불교가 정통 아닌가 합니다.

 

물론 수행에 방해가 되면 부처도 버리라는 가르침도 있지만(부처처럼 깨닫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지 못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수가 없습니다)북방불교의 오만함도 바람직 한지는 모르겟습니다

 

 

 

- 덧붙임 2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세상에서 유일한 신앙 대상입니다.

다른 종교인들은 은, 돌, 쇠붙이를 가지고 있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은 금덩어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은, 돌을 자랑해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하세요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은인지 돌인지 알아보려는 마음도 가졌으면 합니다,

교조주의를 경계하는 것이지 종교 다원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이 불타 없어지기를 기도하고 절에 가서 불처상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사찰 경내에서 찬송가 부르는 짓 좀 하지 마세요.

상대종교의 가르침도 모른다면 비판도 하지마세요. 불교를 비판하고 싶으면 먼저 불교를 공부하세요

 

 

Screenshot_2015-09-21-18-57-04-1-1.png

 

산중 사찰은 대부분 문화재이거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산이고 선조들의 발자취입니다

기독교 국가가 될려면 임진왜란때 기독교인 왜장 고니시에게 조선이 패배했어야 한다는 순복음스러움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기절한 노릇입니다. 베트남에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일부에서는 프랑스 보다는 차라리 일본군을 돕자는 주장에 호치민은 한마디로 일갈했습니다,

‘너희 눈에는 조선이 행복해 보이냐(이 미친놈들아)’

 

누구나 어머니는 한분입니다. 나에게 어머니가 중요하다면 남에 어머니도 중요합니다.

남에 어머니를 존중하는 것이 나에 어머니를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리학도 교조주의로 망했고 불교도 교조주의 때문에 쇠락해졌고, 서방카톨릭도 교조주의로 종교개혁을 맞았습니다.

 

한국의 불교는 천년을 버티고 망했고 성리학은 오백년을 버티고 망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2백년만에 망해가고 있습니다.

반성합시다.

 

 

PYH2011091605160007200_P2.jpg

(12월25일 성탄절을 축하하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을 방문한 불교 대표들)

 

  • sozo 2015.09.25 07:53
    역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쥰님
    작은자교회에 접속하는 모든 분들 복받은 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쥰님을 꼬득여 이곳에 모신 제게도 칭찬 한마디 해주셔야 하구요
  • 시냇물 2015.09.27 01:55
    쥰님 덕분에 우리 조상(한국의뿌리)의 근본을 조금은 알듯 하네요. 감사!
    물론 쥰님을 이곳에 초대한 목사님 덕분에도...
    저의 단순함이 힘을 얻은듯 합니다.
  • 쥰(joon) 2015.10.04 10:18
    감사합니다. ^^
  • sozocom 2015.09.30 00:17
    작은자교회는 수준 높은 교회입니다.
    쥰님과 같은 분들이 다니는 교회에 동행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쥰(joon) 2015.10.08 09:21
    제가 감사합니다
  • HappyKorean 2015.10.09 11:39
    감사합니다.
  • 쥰(joon) 2015.10.11 10:57
    난필을 읽으시고 감사하시는 제가 감사드립니다
  • 시냇가에심은나무 2015.10.16 05:19
    궁금한것이 있어서요!
    불교에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해탈이고
    그것은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한번 해탈한 후에는 더이상 수행할 이유가 없고
    그러므로 그이후에는 수행에 방해가 되는 금기사항을 지킬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그래서 불교계에서도 많은 비리가 있나???)
    사람이 자기의 마음 하나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수 있다는것과
    한번 해탈은 영원한 해탈 이라는것
    그리고 그이후에는 수행해야할 필요가 없다는것이
    진정 가능한가요~?(진짜 궁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얻기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며
    그 거듭남을 끝도없이 이루어가도록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나도 같이 못박혀 죽는것을 날마다 하며
    그러고도 천국을 갈수 있을지 날마다 나를 점검하며
    좁은문 좁은길의 인생을 살아가는것과
    비교가 되네요....;;;
    해탈하면 사람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요즘같은 시대에 스님이 아닌 일반 평범한 인간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수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 쥰(joon) 2015.10.18 13:45

    - 부산에 다녀오느라 답변이 좀 늦었습니다 ^^

    제가 불교도 입장에서 한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믿기만 하면 무슨 짓거리를 해도 구원받으니까 개독교 먹사들은 그렇게 비리가 많을까요?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에고(ego 또는 힌두교 식으로 이야기하면 아트만)가 없어지는데 수행할 나 자체도 없는데 더 이상 무슨 수행일 더 필요한가 하는 것이죠
    완전한 깨달음 즉, 해탈의 경지에 오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무슨 수행이 있겠습니까?

    한번 깨달아 더 이상 수행이 필요없는 경지가 가능한지 물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해탈하지 않았는데 모르죠 ^^
    성리학적인 이론으로는 계속 공부를 해서 노력해야만 착한 본성이 밖으로 노출된다고 가르치지만 불교에서는 진정한 깨달음은 자기 자신 자체가 소멸해서 윤회(현상계)를 초월하는 것인데 수행 그런거 필요없겠죠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이해를 당연히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인이 어떻게 해탈하냐고 하셨는데 일단 불교적 수행은 중도적 수행으로 중도적 수행은 팔정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팔정도(Noble Eightfold Path)란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정진하기),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하기) 8가지를 지키며 수행하면 일반인도 해탈합니다 ^^

    에이 쉽네 별거 아니네 하시겠죠 ^^

    그러나 제가 불교 설명에서 사실 팔정도를 넣지 않은 이유는 팔정도를 모두 설명하려고 설명도 너무 길어질 수 있고 제가 이해시킬 자신도 없어서 그냥 넘어 갓습니다,

    질문이 있었으니 팔정도중 정견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그냥 바르게 보기 정도로 풀이되지만 불교의 바르게 본다는 의미는 연기에 대한 바른 견해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연기는 무엇일까요?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삼무파다(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pratītyasamutpāda))의 준말로 불교(힌두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연기(緣起)는 ‘어떤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무언가가 없다면 어떤 무언가도 없다’(써 놓고 보니 저도 헛갈리네요 ^^ 더 어렵나요??) 쉽게 말하면 모든 우주는 무언가의 원인과 결과 그 결과는 또 무언가의 원인으로 서로 엮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발생하므로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 잡아함경)

    직접적인 원인을 인(因)이라하고 간접적인 원인을 연(緣)이라해서 모든 물아일체는 연과 인으로 서로 엮여있고 혼자 독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우주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계신분들을 위해 연기는 보통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conditioned genesis, dependent co-arising, interdependent arising으로 번역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복숭아 씨를 심으면 복숭아 싹이 트고 복숭아 나무로 자라고 나아가 복숭아가 열매맺습니다. 복숭아 나무의 因은 복숭아 씨입니다. 緣은 물, 공기, 온도, 영양분, 토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숭아씨가 있고, 복숭아나무가 있고, 물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나누어보면 복숭아씨에서 싹이 트고, 싹이 복숭아나무가 되었습니다. 복숭아씨는 싹이 아니며, 싹은 복숭아 나무가 아닙니다. 다시 나누어 보면 복숭아씨, 촉이 틈, 싹, 묘목, 복숭아나무로 나눌 수 있으며 계속해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것은 因이며 뒤의 것은 이로 인한 果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나누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과 과는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없이 나누어지는 인과 과의 과정에서 한번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으며, 끝없이 변해갑니다. 그렇다면 고정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가?

    다시 緣을 살펴보겠니다. 물을 예로 든다면 물도 고정된 부피와 온도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습도 물에서 김으로 변해가며 수증기로 변해가고, 때로는 얼음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다른 모습의 연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이 因이라면 온도는 緣입니다. 때로는 화학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궁구해나 가다보면 일체가 한시도 멈추어 있지 않고 끝없이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無常이며 無相입니다.

    시간적으로 이러하지만 시간을 고정시키고 일체를 보아도 일체가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無我입니다. 무아의 我는 Atman으로서 실체를 뜻합니다.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물을 예로 들어봅니다. 우리는 물방울 하나 하나가 실체인 줄 알지만, 그것은 분자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분자는 어떠한가? 그것은 원자들의 모임입니다. 즉 인연이입니다. 이 세상에 고정불변의 실체는 있지 않다. 이를 무아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트만은 또 무엇일까? 그냥 나(i)를 말하는 것일까? 아닙니다.
    제가 철학 7편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냥 쓰는 언어와 같은 언어라도 철학에서 쓰여지는 뜻은 다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트만을 보통 ‘나’라고 번역하지만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나(我)는 아닙니다,
    범어가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我로 번역했고 이것을 우리는 그냥 ‘나’라고 쓰지만 원래 힌두교에서 아트만(Ātman, 범어, आत्मन्)은 아트만은 인격적 원리로 생명 또는 숨과 같은 의미입니다.
    숨쉬는 생명인 아트만은 '나'를 말하지만 힌두교에서는 개인에게 내제하는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것은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 브라만과 동일한 범아일여(梵我一如)이라고 상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브라만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냥 인도 카스트제도의 맨 윗단계로 알죠 ^^)
    브라만은 힌두교에서 우주의 근본적 실재 또는 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독교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냥 하느님(??)
    즉, 아트만은 진정한 자아를 뜻하는 인격적 근본이라면 브라만은 우주의 근본적 원리이고 이 둘은 본질이 같다는 것이 불교 철학입니다,
    (자꾸 옆으로 빠지내요 그런데 사실 단어 하나 하나를 이해 못하면 전반적 철학 원리의 이해가 어렵습니다)

    무상, 무아는 인간도 마찮가지 이고 내 몸도 생각도 계속 변하고 있고 죽으면 흔적도 없어지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나’인가?

    ‘나’도 무상이고 무아인데 돈, 권력, 명예는 더더욱 의미가 없고 이러한 것을 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죠

    이것을 불교에서는 12연기로 풀이하고 잇습니다.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苦集滅道에 대한 모름, 무지를 無明이라고 하고
    무명으로 인해 行이 생기고
    식(판단하고 분별)이 있으므로 名色이 있게 되고(명이란 정신적인 것을 말하며 색이란 물질적인 것을 말합니다)
    명색으로 인해 六處(眼耳鼻舌身의 작용)이 있게 되고
    육입으로 인해 觸이 있고 촉으로 인해 受(희노애락을 느끼는 것)가 있고
    이로 인해 愛가 생기고 愛가
    取(집착)를 만들고 취가 有를 낳고 有가 生의 원인이며 生은 반드시 老死를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기에 의하면 무명(無明)이 원인이므로 무명이 없다면 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없다는 것이죠

    * 고집멸도는 4성제의 앞글자를 따온 말입니다.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멸’은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을
    ‘도’는 그 깨달음 도달한 수행을 말합니다

    연기 하나만 설명해도 말만 길어지고 이해가 되셧나 모르겠네요
    불교편을 다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마도 교종 보다는 선종이 불교의 원리에 가깝다고 했는데 사실 저도 수행하는 선종이 아니고 책보고 알아가는 교종만 해봐서(^^) 더 이상 수행 또는 공부가 필요없는 깨달음이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산꼭대기 안올라가봐서 거기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
    어렴풋하게 안개속 무언가를 느낄 뿐이죠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십수년 공부해도 예수가 신인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는 제가 선방에 앉아 평생을 수행해도 될까 말까한 해탈에 경지를 이야기 한다면 웃기는 일이겠죠 ^^
    (나무님이 궁금한 ‘해탈하면 사람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알려면 해탈을 하신 분 만 아실텐데 한국에 글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기독교에 천국 다녀왔단 분들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다 가짜고 불교에도 성철스님 빼고 해탈이 뭔지 아는 스님이 계실까?? 글쎄요)

  • sozo 2015.10.19 09:54
    연기(緣起)에 대한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진행해 나가시다가 시간이 되시면 팔정도의 나머지도 설명해 주시면 너무 좋을 듯 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너무 큰가요?
    이게 신께서 '네 구원을 이루라'는 빌립보서 말씀에 대해 건강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주지 싶어서 말입니다.
    저는 연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께서 말씀하신 햄함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반응(response)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때는 상관이 없으니까 시간이 되실 때 아무 때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시냇가에심은나무 2015.10.19 06:48
    와우~~~~
    친절하신 설명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나름 쉽게 설명하신다고 하셨을텐데
    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라...
    좋은 말씀 이신것은 같은데 백프로 이해는 불가능해서
    제자신도 안타깝네요;;
    내 나름 정리해보면
    '나'이면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찾으려 무지 애쓰지만
    결국은 그것이 나도 아니어야한다는거...
    오로지 나의 인생을 해탈을 위해 수행하며 공부하며 애를 써보지만 결국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바라보다 죽음을 맞이하였을때 그 허탈감은 어찌할것이며
    어찌어찌해서 해탈을 했다 하더라도 그게 뭐~~
    도무지 저에게는 말장난 같은 노름이다~이런생각이 들었다면 제가 무식해서 그런거겠죠~
    혼자 고상하게 수행해서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경지에
    저는 절대로,결코 도달할수도 없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도 안드는것은
    나는 지금의 부족하고 형편없는 내모습이 가장 나의 나다운 모습이고 변신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 입니다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이 하지 않습니까?
    석가모니도 죽었고 나도 죽을것입니다
    저는 제 삶 속에서 지지고 볶다가
    하나님 품에 안기는 소망이 있습니다
    무식한 질문에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쥰(joon) 2015.10.19 09:17

    제가 드리는 설명이라고 해봐야 롤러코스트 설계도를 보고 이걸 타면 어떤 기분이겠다 라고 추정하는 정도이지 실제로 롤러코스트를 타보지 않아서 완전히 이해 시켜드리는 것도 그리고 제가 완벽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

    조금 더 쉽게 말씀 드리면 고정불변한 것은 없으며 ‘나’역시 계속 변하고 있고 내가 계속 변한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말 내가 아니고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고 진정한 ‘나’(참나라고도 표현합니다)를 찾는 것이 해탈에 시작이고 이‘나(아트만)’의 진정한 본질은 우주의 본질(브라만)과 동일한 것이므오 ‘나’를 버리고 우주의 본질과 합하여 지는 것을 해탈이라는 것이죠

    완전히 이해시켜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ㅜㅜ

  • sozo 2015.10.19 10:20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 어떤 기분이겠다 라고 추정하는 건 예수님도 그리 말씀하셨으니 뭐 마찬가집니다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 포도주 마시는 것이 좋은 줄 아는 것이고 그래야 신랑이 나중에 내놓을 더 좋은 포도주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해탈은 현세에서 이룰 수 있는지 모르지만 완전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니까
    지금은 설계도(성경)를 믿고 선뜻 타는거죠

    내가 그저 내가 아니라 신이 나이고(요한복음, 시편) 나는 신의 모습과 형상을 가진 존재이니 아트만과 브라만이 합하여 지는 것을 생각했던 불교가 놀랍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만물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신성과 능력을 심어두셨으니 그 만물과 만물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보고 오랜 시간 사유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쥰님
    바쁘실텐데,,고맙습니다
  • 쥰(joon) 2015.10.19 10:29

    부산가서 놀다와서 이제 그리스 철학 마지막 편 정리중인데 끝나고 팔정도 정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기독교 신자분들이 이해하실 수 잇을 정도로 쉽게 설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답변이라 급히 올리느라 오탈자가 너무 많네요 ㅜㅜ 죄송

  • 하은사랑 2016.03.01 12:49
    음 어려워요~~ 불교교리에 심취하신 목사님이 계시다는데.. 이해는 못하고 가지만 감사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62 성서인문학 시즌1을 시작하며..... 성서인문학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게시판은 성서인문학이지만 시즌1은 일반 인문학으로 시작하고 후반부에 성서관련 사항을 진행할 예정이며 주 1회 업로... 3 2015.09.24
61 종교철학 1편 - 초딩도 이해하는 성리학 한국인들의 의식을 분석해 보면 종교와 상관없이 유교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역시 예외가 없으며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에서도 유... 9 file 2015.09.24
60 종교철학 2편 -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 먼저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줄여서 사칠논변(四七論辯)이라고도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봅시다 모든 철학은 당시 시대의 반영이며 철학자 개인의... 2 file 2015.09.24
59 종교철학 3편 - 니들이 불교를 알아? 교회 홈페이지에 성리학을 시작으로 불교까지 무슨 비신앙적이냐고 하실분도 계실 것이고 더구나 제목이 반말이니 기분 나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기독... 4 file 2015.09.24
» 종교철학 4편 - 북방불교(대승불교) - 북방(대승) 불교의 시작 -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문화 교류를 보면 인더스(인도)문명과 중근동(아랍)문명은 활발함을 보이지만 황하문명(중국)과 인더스 문명... 15 file 2015.09.24
57 추석 잘 지네세요 ^^ 인터넷교회가 시작 했는데 게시판이 너무 허전해서 이삼일 동안 급히 원고를 써서 올리느라 좀 부실하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강의 하는 것 처럼 구... 5 2015.09.24
56 종교철학 5편 - 기독교의 한쪽 날개 / 그리스 역사와 철학(1)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 예술,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자연과학까지 거의 모든 학문의 뿌리는 그리스입니다. 로마 문화는 그리스 문화의 복사판이고 중세 ... 4 file 2015.10.04
55 종교철학 6편 - 기독교의 한쪽 날개 / 그리스 역사와 철학(2) 고대 유럽(그리스)과 중근동의 본격적인 첫 만남이 바로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입니다. 유명한 영화 ‘300’의 주제이고 유럽의 운명이 결정 지워지는 전쟁입니다.  ... 5 file 2015.10.05
54 종교철학 7편 - 기독교의 한쪽 날개 / 그리스 역사와 철학(3) 재미있는 전쟁이야기 했으니 공부 좀 해야겠죠 ^^   마지막편은 그리스 철학으로 들어갑니다. 일단 철학편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 역사와 철학 1편'을 꼭 읽... 1 file 2015.10.11
53 종교철학 8편 - 기독교의 한쪽 날개 / 그리스 역사와 철학(4)     위 그림 한번쯤은 보셨을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라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비밀해제에서 몇 달전에 미술사에서 간단히 소개해 드린 적이 있... 3 file 2015.10.24
52 종교철학 9편 - 해탈하기 / 팔정도 기독교인분들이 대부분인데 팔정도 설명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불교편에서 빠졌는데 질문도 들어오고 해서 추가해 드립니다.     불교의 해탈은 수행을 통해서... 5 file 2015.11.05
51 종교철학 10편 - 초기 교회의 모습 / 디다케 (Διδαχή) 성리학, 불교, 그리스를 돌아서 드디어 기독교 관련된 내용이 시작입니다. ^^ (이제 슬슬 욕먹겠네요)   오늘은 아마도 개신교인들(특히 평신도)에게는 조금은 생... 12 file 2015.11.09
50 종교철학 11편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1부 /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는 반드시 해석 되어야 하는 책입니다. 한나라 시대의 유학인 훈고학은 분서갱유로 말살된 공자의 어록을 발굴하고 해석하데 학문의 모든 초점을 맞춘 것처럼... 7 file 2015.11.14
49 종교철학 12편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2부 /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동북아의 시(詩)로 된 대표적인 고전작품을 보면 중국의 시경(詩經)일본의 만엽집(萬葉集)정도가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시경이 지금은 오경중 하나지만 사실 쓰... 27 file 2015.11.20
48 종교철학 13편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3부 /성서 운문의 특징 제가 그리스 역사 철학에서 잠깐 언급한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의 시인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전쟁입니다. 우리나라에도... 7 file 2015.11.24
47 종교철학 14편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4부 / 예언과 묵시문학 먼저 제가 그 동안 글을 찬찬히 읽어봤더니 필요 없는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쫌 많아서 읽으시는분들이 불편하셨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 13 file 2015.11.28
46 종교철학 15편 - 미술과 종교 / 알타미라에서 르네상스까지 -1 2개월반 동안 별로 재미없는 철학이 어쩌고 종교가 어쩌고 약간(??)은 지루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2주전에 성서해석편 마무리하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1-2주 쉬어... 4 file 2015.12.08
45 종교철학 16편 - 미술과 종교 / 알타미라에서 르네상스까지 -2 5-1. 르네상스 회화란? / 르네상스는 한마디로 균형과 조화   이번 그림은 누구나 아는 최후의 만찬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 주제였고 가장 ... 10 file 2015.12.08
44 종교철학 17편 - 미술과 종교 / 낭만과 혁명의 시대 1 1. 바로크   바로크는 많이 들어보셨죠? 느낌이 화려하고 웅장한 미술사조로 한마디로 정리하면 프랑스의 절대왕정 시대인 17세기의 태양왕 루이14세(1638-1715) ... 6 file 2015.12.09
43 종교철학 18편 - 미술과 종교 / 낭만과 혁명의 시대 2 (그림읽기 연습) 전번편의 뭉크에 이어서 잠시 미술 감상시간을 갖겟습니다.  ^^     감상1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이그림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와하는(종교적 이유도 ... 4 file 2015.12.11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Next ›
/ 4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