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12편 - 해석되어야하는 성서 2부 /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by 쥰(joon) posted Nov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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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시(詩)로 된 대표적인 고전작품을 보면 중국의 시경(詩經)일본의 만엽집(萬葉集)정도가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시경이 지금은 오경중 하나지만 사실 쓰여질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중가요였고 일본의 만엽집 역시 당시에는 대중가요였습니다.

(만엽집은 괘 흥미로운 책입니다. 만엽집에 실린 상당수의 시(詩)는 백제(또는 신라)에서 넘어간 도래인들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일부분은 아직도 해석이 불분명하고 당시의 한반도 언어로 해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혹여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언제 시간되면 자유게시판에 만엽집 관련 재미있는 해석 몇 가지 올려드리겠습니다 ^^)

 

성서의 시편은 쓰여질 당시 기준으로 보면 찬송가이고 아가서는 (약간은 음란한)대중가요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가서를 지금은 신(神)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처럼 해석, 번역 되어 있지만 사실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강력합니다.

(1편에서 읽으셨죠? 다바르 힐마드 메인야노적으로 해석하면 음란한 대중가요에 가깝습니다 ^^ / 아가서를 원문을 보면 남녀간의 사랑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구절이 대부분입니다. 기원후 90년 유태교 종교총회(얌니아)에서 아가를 정경에 넣는 것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쓴 것으로 되어있지만 쓰여진 언어를 분석해 보면 솔로몬 시대의 언어가 아닌 기원전 5-4세기경으로 분석되어지며 해석에 대해서도 사실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1편에서 이야기한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면 남녀를 신과 인간 또는 신과 교회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잇습니다.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가 일본에서 유행했을 때 이 노래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임진왜란에 비유해서 일본이여 다시 부산으로 침공하라고 해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가 들으면 기절하겠죠 ㅋㅋ)

 

다시 한번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면 성서의 명확성은 기본적인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것이지 성서의 모든 부분이 쉽게 이해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즉, 한글을 겨우 읽는 정도의 無學인 분들이 읽어도 구원과 영적 성숙을 얻을 수 있지만 모든 부분을 읽는다고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성서의 모든 부분이 명확하다는 것은 부인합니다 / 성서무오류에 관한 시카고 선언 23항)

 

사도바울의 편지가 같은 시대 같은 문화 같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용이 분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로는 어느 편지에서나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더러 있어서 무식하고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들이 성서의 다른 부분들을 곡해하듯이 그것을 곡해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16절)

 

앞장에서 제2성전기의 성서 해석 특히 힐렐 그리고 중세의 오리게네스, 교황 그레고리우스 등의 해석법과 대학의 태동까지 정리하엿습니다.

3원칙, 4원칙, 7원칙 등등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성(역사적, 문맥적)해석이냐 아니면 신앙적(복합적. 알레고리적)해석이냐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2편을 시작하면서 사실 약간 고민이 있었습니다.

성서해석에 대한 역사적 바탕과 해석학에 대해 어느 선까지 설명드려야 쉽게 이해가 될지 그리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지 몰라서 고민을 하다 아주 전문적인 부분은 빼고 아주 객관적인 부분만을 설명 드릴려고 합니다,

중간 중간 제 개인적인 해석은 양념처럼 그냥 읽으시고 반드시 제 해석처럼 해석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참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

1편에서 이어지는 용어가 많습니다. 1편을 읽으신 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 오직성서'(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 서방 카톨릭의 권위를 깨부수자

 

중세 서방카톨릭은 성서의 자의적 해석을 경계하여 원칙적으로 성서를 읽는 것, 번역하는 것을 금지 하였습니다.

즉, 중세의 기독교는 전통적 교리와 해석만을 강조하엿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천년동안 내려온 카톨릭의 전통을 깨부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성서입니다.

중세 천년 동안 성서를 넘어서는 권위를 가진 교리를 부수기 위해서는 교리(전통적 해석)을 넘어서는 권위를 가지기 위해 성서를 들고 나왓고 번역을 시작함으로 카톨릭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무오류가 선언된 교황의 권위와 천년을 이어져온 절대권위의 교리를 깨기 위해서 들고 나온 성서는 교황보다 더 무오류여야만 하고 교리 보다 더 권위가 있어야 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오직성서'(sola scriptura)와 '오직 믿음'(sola fide)를 가지고 교황과 카톨릭 교리를 거부하게 됩니다.

 

오직성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서방카톨릭은 요한복음의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 개인에게 주었고 교황의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해석을 종교개혁자들은 천국의 열쇠는베드로 개인이 아닌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부여했다고 해석하면서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식의 해석적인 문제가 여기에도 중요한 개기를 만듭니다.

 

이러한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성서해석과 신념은 성서의 명확성과 무오류를 의심하지 않게 되는 전통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성서의 번역이 시작되고 일반 신자들에게 천년만에 성서가 읽혀지면서 알레고리적 해석 보다는 문자적 해석이 더 강해지기 시작하게 됩니다.(르네상스의 영향과 함께)

왜냐하면 일반 신자들이 성서를 읽게되면 알레고리적(신앙적)해석 보다는 일단 문자가 먼저 읽혀지게 되고 현재적의미(1편 참조해 주세요~~)보다는 문자가 눈에 들어오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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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서 인쇄된 최초의 독일어 번역 성서와 인쇄기)

 

 

 

- 알레고리적 해석의 타파 / 진리는 이성이다(계몽주의 역사주의를 향해) -

 

16세기 17세기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18세기에는 이성을 존중하는 계몽주의가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시녀에 불과했던 철학이 점점 자신들의 주인였던 기독교를 벗어나면서 중세와는 반대로 철학이 종교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경험과 전승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잘못된 지식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한다고 선언합니다.(이것을 (연구)방법적 회의론 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수천년 동안 감각적인 경험과 전승에 따라 땅은 평평하다는 지식은 의심과 과학적 (이성적)검증에 따라 부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란틴어로 코기토 에르고 숨 이라고 읽습니다 ^^ )/I think, therefore I am)

물론 데카르트가 신(神)을 부정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신을 증명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계승자들인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신의 증명은 부정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17세기 인물인 데카르트는 계몽주의의 문을 열었지만 기독교를 부정하기는 아직 당시 환경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을 나눌 때 보통 영국과 대륙으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영국과 유럽 본토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 유럽을 이야기할 때 대륙이라고 하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태리, 지금의 독일지역(당시 독일은 단일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이 단일 국가가 되는 것은 비스마르크에 와서입니다)등을 이야기 합니다.

영국은 철학적으로 경험론의 영향을 받게되고 대륙은 합리론의 영향을 받게됩니다.

경험론이나 합리론 모두 신(神)의 존재에 대해 점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종교(기독교)를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않되면 이성적으로 분석 판단 하여야 한다고 주장(역사비평, 성서비평의 시작)하면서 모세5경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게 됩니다.

(유대인였던 스피노자는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성서에 대해 유대교 전통을 부정하는 바람에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게 됩니다. 지금 보면 스피노자의 주장은 상식에 가까운데 ㅜㅜ)

 

스피노자 쁜만 아니라 종교개혁파의 독일 신학자들인 헤르더, 제믈러, 아이히호른 등은 성서를 역사적 문서로 보고 문서의 본래적, 역사적 의미에 해석의 우선을 두고 성서를 해석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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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주의적 성서해석

 

르네상스 이후 역사주의와 또 다른 흐름은 바로 낭만주의적 성서해석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슐라이어마허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독일출신으로 목사이며 철학자, 신학자엿고. 경건주의 신학으로 유명한 할레 대학의 교수였고 성서 해석학으로 보면 스피노자의 많은 영향을 받앗습니다.

 

루터나 칼빈처럼 슐라이어마허도 성서에 대한 신앙적 태도를 중시 했지만 다른 점은 루터나 칼빈과 달리 모든 성서가 예수를 향하고 있다는 통일된 해석을 거부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성서도 다른 고전 텍스트와 마찮가지로 보편적 해석을 통해 본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편적 해석학을 주장하게 됩니다.

슐라이어마허의 성서 해석학은 수천년전 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환경과 문화 그리고 쓰여진 문자를 이해하고 다음에는 성서의 저자와의 대화를 하여야 하면 이 대화는 저자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여야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요구한 .세가지 원칙을 살펴보면

 

첫째는 원래 쓰여진 히브리어, 헬라어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성서가 쓰여진 형식,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셋째, 성서를 쓴 저자의 특징적 개성을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달전 비밀해제에서 텍스트의 지문(指紋, fingerprint)에 대한 이야기를 참조 하세요) ^^

 

성서학자들과 성서비평가들이 지금도 모세오경, 이사야, 에베소세, 골로세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저자가 누군지에 따라 다바르 힐마드 메인야노적(역사적/דבר הלמד מענינו)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헤겔과 니체

 

공교롭게 이성에 의헤 파악되는 진리를 이야기하던 시기에 이건 아니지라고 외친 것은 바로 헤겔과 니체였습니다.

흔히 교회에서는 헤겔은 빨갱이(종북), 니체는 신을 죽인 마귀 정도로 인식하지만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과는 다르고(같다고 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외친 것은 교회에서 알고 있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시간의 흐름 속에 일련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고(정반합)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은 특정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보는 것으로 역사 발전의 방법과 지향점이 다릅니다)

 

근대 철학자들의 성서관이 보편적 이성론에 입각하여 이성적 진리에 의거한 역사비평적 관점에 치우칠 때 이성론을 깨부수고 나오는 것이 바로 헤겔과 니체입니다.

헤겔은 이성과 인식에 의한(보편적 이성론)결과가 서로 다르다면 그것은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고 그렇다면 이성이 진리가 될수 없다고 주장했고

 

니체는 이성에 의한 진리를 비판 하면서 이성이 전통적 진리인 神의 자리를 차지햇다는 의미로 우리가 神을 죽였다고 표현햇을 뿐입니다.

즉, 근대적인 성서의 해석은 본래적인 의미만이 성서에서 진리이고 현재적(신앙적)의미에 위기가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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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라이어마허, 헤겔, 니체)

 

 

- 1,2차 세계대전과 자유주의(liberal theology), 신전통주의(neo-orthodoxy)해석

 

20세기초까지 성서의 해석에 관한한 주류는 이성에 기초한 역사적, 문맥적 해석이 주류로 이어져왓고 이것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무슨 마귀처럼 생각들 하시는데 2천년전 유대교 최고의 랍비인 힐렐도 다바르 힐마드 메인야노(דבר הלמד מענינו)적 해석을 부정하지 않았고 중세의 오리게네스도 안디옥학파도 교황 그레고리우스도 역사적 해석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근대에 유럽을 휩쓸던 계몽주의와 보편적 이성주의가 역사적 해석에 경도되게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진리이고 이성이 인간을 구원할 神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할 정도로 19세기는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 할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였습니다.

기아, 전쟁, 질병 등 수천년간 인간을 괴롭혔던 모든 문제가 이성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옵니다.

바로 1, 2차 세계대전입니다.

세계대전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잇다는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성서해석학에 대한 조류도 자유주의적 이성적 해석이 퇴조하고 또 다시 전통을 찾게 됩니다.

911테러가 일어나자 교회에 출석하는 인구가 늘어다는 것과 마찮가지 라고 할까요? ^^

 

바로 신전통주의(neo-orthodoxy)의 출현입니다.

신전통주의는 여러분도 아시는 칼 바르트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바르트의 성서관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신문’으로 요약될 수 잇습니다.

여기서 바르트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간단히 대강만 설명드리면 바르트는 성서비평, 역사비평에 의해 확인된 성서의 오류와 역사적 해석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성서는 하나님의 메시지다’라고 주장합니다.

(바르트의 5가지 신학적 특징과 계시론, 예정론, 신론, 창조론, 화해론, 윤리론을 설명해 드리면 좋겠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혹여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다음에 한번 정리해서 올려드리겟습니다)

 

바르트를 일부 교회나 신학대(총신/예장합동)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인 것처럼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데 학풍과 학맥에 다툼 때문에 생긴 문제로 바르트를 자유주의로 분류하다면 개도 웃을 노릇입니다.

 

해석학의 대가인 폴 리쾨르(Paul Ricoeur 1913년-2005/ 저서: 해석의 갈등, 해석학, 해석에 대하여, 해석이론, 해석학과 인문학, 번역론, 텍스트에서 행동으로 등)의 해석적 주제 4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본문에 대한 이해

리쾨르는 성서의 역사적 이해를 중요시 합니다.

성서는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를 위해 쓰여졌다기 보다는 특정한 사건(바빌론 유수, 이스라엘의 멸망, 예수의 죽음 등), 특정 시기에 대한 문제를 뛰어 넘거나 해결하기 위한 목적였기 때문에 본문의 역사적 의미를 정확히 관찰하는 것이 현재적의미(신앙적의미)로 나가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2. 구조 분석

고대인들의 문장적 구조를 이해하고 문학적 표현의 목적을 찾아내야합니다.

운문, 예언, 편지 등은 기호학적 의미를 파악하여야 성서의 메시지의 목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조분석을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언어의 기호학적 의미를 아셔야 하는데 예를 들면 동서를 이야기할 때 동양에서는 東西라고 합니다. 이것은 西는 東에 반대되면서 東쪽이 우선하지만 서양에서는 WEST-EAST라고 하면서 서쪽이 중심이 됩니다.

 

남녀를 봐도 동양은 男女가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서양은 MAN-WOMAN으로 여자가 종속적 개념입니다.(이해가 되시나요??)이것을 대립되는 쌍단어(개념)에서는 뒤에 뜻이 앞의 뜻에 종속됩니다.(대충 감 잡히시죠?)

또한 제가 비밀해제에서도 몇 차례 말씀 드렸지만 창세기 1장은 운문이고 창세기 2장은 산문이며 욥기의 경우 첫장과 마지막장만 같은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중간은 다른 구조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즉, 욥기는 첫장과 마지막장만 있던 설화에 중간 부분은 후대에 첨가됩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의 파악은 문서의 쓰여진 목적을 파악하는 데도 결정적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3. 수행적 의미의 분석(이념비평)

보통 리쾨르의 해석주제를 강의하면서 세 번째를 이념성 비평으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사실 이념 비평이라기 보다는 수행적 의미 분석에 리쾨드는 중점을 두고있습니다.

성서의 본문들을 읽으면서 본문의 속 뜻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특정 본문의 문자적 의미가 아니고 따로 이야기하고자 하는(수행 하고자 하는)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룻기를 문자로만 읽어보면 룻의 믿음에 대한 칭송으로 보이지만 사실 롯기는 정통성이 결여된 다윗왕의 정통성을 변론해주기 위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텍스트입니다

 

4. 자신의 이해

 

리쾨르는 성서를 읽는 목적은 자기를 이해(self understanding/자신에게 적용 또는 1편에서 이야기한 현재적의미)하기 위한 것이고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철학적 반성(philosophical reflection)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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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트와 리쾨르)

 

 

 

휴~~~~ 뭔 성서 읽기가 왤케 힘들지 하시나여 ^^

 

지금까지 지루하고 재미 없게 성서 해석에 대한 대략적인 역사와 해석가들의 주장을 알아봤으니 실전에 들어가야겠죠 ^^

 

다음  쓰여진 영어를 읽어 보세요 ^^

 

     seoul

    in  the

  the winter

 

10분 중 8-9분은 seoul in the winter롤 읽으셨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seoul in the the winter입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seoul in the winter가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뇌가 그냥 익숙하게 읽은 것입니다,

성서도 마찮가지입니다.

즉, 오래동안 교회를 다닌분들의 경우 설교, 큐티(큐티하지 마세요!!), 성경공부에서 습관적, 무의식적으로 성서를 읽기 때문에 머릿속에 의식 없이 받아들이지만 성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성서를 낯설게 느끼고 익숙한 본문이라도 관찰하는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교회 장로라는 분들중에도 성서에 동방박사 세명이라는 텍스트가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ㅋㅋ)

 

지금부터 성서를 제대로 읽는 방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성서의 언어적 기교 /서술적 기교와 성서 운문(詩, poetry)의 특징 -

 

유대인들의 문학적 소양은 전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중에 유대인이 15명입니다.

 

유대인이 전세계에 1300만명(이스라엘 거주민 포함)쯤 되고 한민족(남북한 해외동포 포함) 8천만쯤되니까 단순 대입하면 우리민족은 90명쯤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하지요 ^^      (유대인 대단한 구라쟁이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쓴 성서는 얼마나 수많은 문학적 기교를 부리고 있는지 중요한 몇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한글 영문 성서의 경우 성서의 문학적 기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 서술적 기교

 

1. 반복어구

 

성서에는 특정한 강조점을 위해서 단어, 문단, 장면, 주제를 반복시키고 잇습니다.

단어의 반복은 한글성경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를 반복해서 강조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부터 창세기 37장-39장을 읽는데 38장을 빼고 37장을 읽고 39장으로 뛰어 넘어가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읽는중 ^^ .....................)

읽으셨습니까? 안읽으신분도 계시네요 ㅜㅜ

 

이제 38장을 포함해서 37장부터 38장 39장을 지금부터 쭉 읽어 보세요

(읽는중 ^^ .....................)

읽으셨습니까? 안읽으신분도 계시네요 ㅜㅜ / ㅋㅋㅋ

 

38장을 빼고 읽어야 휠씬 자연스럽습니다.

38장을 초기 성서비평가들은 후대 첨가된 부분으로 봣지만 사실은 37장의 ‘염소새끼’와 ‘알아보다’를 38장에 반복해가면서 반복수사법이 사용되어지고 있고 지금은 첨가된 부분으로 보지 않습니다.

 

2. 수미상관

 

강조하거나 중요한 메시지를 첫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비슷하거나 같은 단어, 문장으로 배치 반복합니다.

출애굽기 6장 13절에서 27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족보를 기록하면서 처음과 마지막 구문을 같은 내용으로 반복합니다.

 

'야훼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라는 분부를 내리신 것이다.

그들 가문의 선조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은 에녹, 발루, 헤스론, 가르미인데 이들이 르우벤의 가문이다.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 야민, 오핫, 야긴, 소할,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사울인데 이들이 시므온의 가문이다.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난 순서대로 게르손, 크핫, 므라리인데 레위는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

가문별로 말하면 게르손의 아들들은 리브니와 시므이이다.

크핫의 아들들은 아므람, 이스할, 헤브론, 우찌엘이다. 크핫은 백삼십삼 년을 살았다.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이다. 이것이 난 순서대로 본 레위의 가문이다.

아므람은 자기의 고모 요게벳에게 장가들어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 아므람은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

이스할의 아들들은 코라, 네벡, 지그리이다. 우찌엘의 아들들은 미사엘, 엘사반, 시드리이다.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이요, 나흐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에게 장가들어 나답, 아비후, 엘르아잘, 이다말을 낳았다. 코라의 아들들은 아씨르, 엘카나, 아비아삽이다. 이것이 코라의 가문이다.

아론의 아들 엘르아잘은 부디엘의 한 딸을 아내로 맞아 비느하스를 낳았다. 이것이 가문별로 본 레위 일가의 조상이다.

야훼께서는 이 아론과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부대로 편성해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라고 분부하셨다'

 

3. 교차 배치

 

교차 배치는 A,B,C,D,C,B,A롤 이해하시면 됩니다.(무슨 소리냐구여?)

D를 가운데 배치하고 이야기 구조를 양쪽으로 펼치는 형식입니다.

우리는 A부터 읽기 시작하기 때문에 읽다보면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성서 구절을 분석해보면 상당히 많은 구절이 교차배치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창세기 6장-9장을 지금부터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읽는중 ^^ .....................)

읽으셨습니까? 안읽으신분도 계시네요 ㅜㅜ

 

창세기 6-9장은 대표적인 교차배치 구조입니다.

 

A  노아 6.10

B    셈,함,야벳 6,10

C      방주를 지어라 6.14-16

D       홍수 예고 6.17

E         노아와의 언약 6.18-20

F            방주안의 양식 6.21

G             방주로 들어가라 7.1-3

H               7일간 홍수 기다림 7.4-5

I                  7일간 홍수를 또 기다림 7.7-10

J                   방주로 들어감 7.11-15

K                    노아 방주로 들어감 7.16

L                      40일 홍수 시작됨 7.17

M                      물이 불어남 7.17-18

N                         산들이 물아래 잠김 7.19-20

O                           150일 동안 물이 남아잇음 7.12-24

P      * 하느님이 노아를 기억하심 * 8.1

O                           150일 동안 물이 줄어듬 8.3

N                        산꼭대기가 드러남 8.4-5

M                    물이 줄어듬 8.5

L                  홍수 40일이 끝남 8.6

K                노아가 방주 창문을 열다 8.6

J              까마귀와 비둘기가 방주를 떠남 8.7-9

I            7일간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다 8.10-11

H         7일간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다 8.12-13

G        방주에서 나와라 8.15-17

F       방주 밖의 양식 9.1-4

E      모든 이들과 언약 9.8-10

D     홍수 없음의 예언 9.11-17

C    방주 9.18

B   셈,함,야벳 9.18

A  노아 9.19

 

홍수의 시작에서 끝까지의 텍스트는 8장1절을(하느님께서 노아와 배에 있던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들의 생각이 나셔서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삐기 시작하였다)중심으로 대칭구조의 교차배치로 쓰여진 텍스트인 것을 알수 잇습니다.(줄 맞춰가며 쓰느라구 힘들엇네여 ^^)

 

4, 생략

 

성서의 텍스트를 읽다보면 궁금하거나 답답한 경우가 잇습니다.

당연히 쓰여져야 할 부분이 생략되거나 뒤로 가버리는 경우입니다.

긴장감을 높이거나 강조하기 위한 성서 특유의 구조입니다.

(요즘 소설을 읽으면 흔한 기법이지만 성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성서만의 특이한 글쓰기 형식 였습니다)

예를 들면 요나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이 요나서 1장부터 나오지만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요나의 불복종(교회식으로 이야기하면 불순종 ^^)의 이유는 4장에 가서야 기술됩니다.

 

5. 반어법

 

반어법은 다 아시는 것이니 예만 들어 드리겠습니다.

한글 성경으로 읽으면 알 수가 없지만 욥기 1장 5절을 보면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에서 욕되게 하다라고 번역은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본을 보면 바라크(ברך)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바라크(ברך)는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비꼬는 말투의 ‘너 잘났다’에서 잘났다가 정말 잘났다는 것이 아니고 비꼬는 뜻인 것처럼 하느님을 축복하다가 아니고 욕되게 했다는 반어법을 쓰고 있습니다.

 

 

 

 

- 덧붙임 -

 

황목사님 저는 예수를 인식하는 시각은 다르지만 오늘 비밀해제에서 한가지 공통정을 찾았습니다.

바로 다양성에 관한 생각입니다,

예방주사는 균을 약하게 몸에 주입해서 면역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온실 속(교회)에서 매주 물(예배 설교)을 받아 마시면서 옆도 보지말고 십자가만 보라고 세뇌당하면서 점점 온실속에 화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서를 보는 눈도 2천년전 유대인만도 못합니다.

균을 몸에 받아들이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면 균이 들어오면 질병에 걸릴 수밖에 없고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한순간에 겨울바람에 얼어 죽습니다.

 

다른 종교도 알고 자유주의 신학도 알고 역사 비평적인 성서 해석도 듣고 구약과 고대 중근동 신화와의 관계도 알아야 이상한 미혹한(기독교 식으로 이단)교리나 또라이 같은 먹사들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잇습니다.

온실속에서 성서가 실제 역사이고 성서의 기록은 모두가 쓰여진 대로 팩트여야만 믿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계신다면 .........

 

제가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지만 존 번얀의 천로역정이 누구나 소설인 것을 알지만 충분히 신앙에 도움이 되는 소설입니다.

성서가 천로역정과 같은 장르라면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정도의 신앙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남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처지는 아니지만......)

 

 

3편에서는 성서의 60-70%(분류법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지만)를 차지하는 성서의 쓰여진 운문(詩)의 대한 특징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좀 지루하시죠 ^^

성서 해석 공부가 끝나면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할 예정이니 지루해도 조금 참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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