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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계속......

 

 

◎ 마태복음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60-130년경 생존)와 그의 설을 따른 프랑스 리용의 주교 에이레나이오스(130-200년경 생존)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열 두 제가 가운데 하나인 세관원 마태오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복음서를 집필했고 후대의 어느 누가 그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했다는 설이 전통적 학설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서의 세밀한 검토 결과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쓰인 예수 어록과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하여 직접 그리스어로 집필한 것임에 틀림없음이 밝혀졌고 따라서 예수의 직제자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종래의 설은 따를 수가 없게 되었다

 

복음서 자체의 검토 결과

 

① 그리스어로 복음서를 집필한 것으로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그리스도인이요,

② 히브리어 및 아람어에 익숙하고 유태교 계율과 유태인들의 관습을 익히 아는 유태계 그리스도이이며,

③ 필자는 성전세를 바치고(17:24-27),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의 권위를 인정하며(23:2-3), 십일조를 바치고(23:23),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다(24:20). 그렇지만 예수와 사도들을 배척한 유대 민족을 단죄하며 특히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을 통박한다(23장). 그러면서도 율사들의 주석 방법을 따른다. 이로 미루어 보아,

필자는 본디 유태교 율사로 행세하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 사람을 편의상 마태오라고 할뿐이다.

 

이 복음서의 독자 문제는, 필자가 세 차례에 걸쳐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를 번역해 준 사실(1:23, 27:33, 27:46)을 제외하고는 독자들이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낱말이나 표현을 이해한다고 전제하고 그대로 사용한 사실이나 또는 독자들이 유태교의 계율이나 유태인들의 풍습을 이해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기술하는 예로 미루어 필자는 유태교 분위기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하겠다. 정확히 말해서 독자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호의적이기는커녕 매우 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을 단죄 내지 규탄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방인들 편을 들어 이방인들의 구원과 전도에 주력하라고 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마태오 복음서 독자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태계 그리스도 교회에 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유태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독자적인 종교단체로 독립하여 유대교와 맞서고 있었다(5:17-48, 23장). 이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벗어났으니 유태인들과 이방인들이 공존하는 혼성교회로서 주로 이방인 전도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후 70-80년이 지나면서 유대교의 예수파는 유태교의 일파에서 독자적인 종교세력으로 분리됩니다. 유태교에서 분리된 이후 쓰여진 것으로 파악합니다

필자에 대한 전통적인 전승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가 80년이나 85년경에 본디 아람어로 쓴 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이용하면서 더러 변경하고 덧붙인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문서분석 결과 과거 전승은 부정되었습니다)

 

Screenshot_2016-04-18-07-54-09-1.png

                               (15세기 마태복음  마가복음 표지 / 3-4세기 부터 마태는 사람으로 마가는 사자로 상징 되었습니다)

 

◎ 마가복음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전하는 말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말들(사도 12:12·25, 13:5 · 13, 15:37-39, 필레 24, 골로 4:10, 2디모 4:11, 1베드 5:13)을 근거로 하여 바울로의 협조자요 베드로의 통역이던 마르코가 이 복음서의 필자라는 통설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① 마르코 복음서에는 바울로 특유의 낱말, 소재, 사상이 거의 없으며,

② 마르코 복음서에 수록된 예수의 말씀이 50년대 아니면 60년대에 편찬된 예수 어록의 말씀보다 많이 변질되었고,

③ 또한 베드로가 전한 예수 이야기를 그대로 기록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이 복음서의 치유 이적사화, 구마 이적사화, 논쟁사화, 대담사화를 보면 목격자 베드로가 바로 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사화 양식을 따라 엮어져 있는데 이는 오랜 전승과정을 거쳐 가능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편의상 마르코가 필자였다고 할뿐이고 사실상의 필자는 밝힐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복음서가 로마에서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는 너무나 단정적이다. 복음사가가 강조한 보편적 구원론이 이스라엘에서보다는 해외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고 보아, 마르코 복음서는 이스라엘 밖에서 집필되었으리라는 막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르코는 때로는 서투르지만 직접적이고 친숙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집필 연대는 13장의 해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만일 13:1-2 · 14-23의 말을 예언으로 본다면 70년 이전으로, 보도로 본다면 70년 이후로 그 집필 연대를 잡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약학계에서는 이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이런 점으로 보아 막연히 7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마가복음은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엿다고 좋게 이야기하지만 사실 문장의 구성이나 문법을 분석해 보면 수준 낮은 그리스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1장 1절 상반절과(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과 16장 9절 이후는 후대에 첨가된 부분입니다)

 

 

◎ 누가복음

 

‘무라토리 경전목록(180년경 로마에서 작성)과 프랑스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의 반이단론에 따라, 바울로의 동료 루가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했다는 통설이 생겨났다.

그러나 두 가지 작품과 바울로의 친서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큰 까닭에 바울로를 따라 다닌 루가가 두 가지 작품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편의상 두 가지 작품의 필자를 루가라고 할뿐이다.

필자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 중 그가 이스라엘의 지리를 잘못 전하고(4:29) 유태인들의 관습과 풍물을 착각한 점(1:59, 2:22-24, 5:19, 6:48, 14:5)으로 미루어보아 필자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복음서 작가들 가운데서 그리스 어문을 가장 잘 익힌, 상당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독자들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스라엘의 지리를 설명하고(1:26, 2:4, 4:31, 8:26, 23:51, 24:13) 유태교 관습을 설명한다(1:9, 2:22-24, 41-42, 22:1.7). 또한 유태인들의 정결례를 다루는 단락(마르 7:1-23)을 아예 삭제해 버렸는가 하면 히브리어나 아람어 낱말을 그리스어로 바꾸기도 한다(마르 9:5 비교 루가 9:33, 마르 10:51 비교 루가 18:41, 마르 3:18 비교 루가 6:15, 참조 사도 1:13). 그런가 하면 마르코 복음서의 나자렛 설교를 개작하면서 그 옛날 하느님이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들추기도 하고(4:25-27), 초대 교회의 이방인 전도활동을 상세히 기록하기도 하였다(사도 10:13-28장). 위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음서의 독자라는 결론을 내려 마땅할 것이다.

집필 장소에 대해서 정확히는 알기가 어렵고, 루가가 이스라엘의 지리와 관습에 서투르다는 사실과 이방인 전도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 사실을 참작하여 이스라엘 밖에서 복음서를 집필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집필 연대는 50~60년대에 집필된 예수어록과 70년경에 집필된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했을 뿐 아니라, 유대 독립전쟁 말기(서기 70년)에 일어난 일들을 전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집필 상한연대는 70년이고, 1세기 말엽에 집필된 사도행전보다는 분명히 먼저 집필되었으므로(사도 1:1) 그 하한연대는 100년으로 본다. 대체로 집필 연대를 80~90년으로 잡는다. 집필 동기는 그 머리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1:1-4)‘

 

(보통 마태복음보다 후대에 쓰여진 것으로 연구되어져 있습니다. 에수교가 유태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이후 비유태인에게 읽혀질 목적으로 쓰여진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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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누가복음 요한복음 표지 / 3-4세기 부터 누가는 황소으로 마가는 독수리로 상징 되었습니다)

 

 

◎ 요한복음

 

‘이 복음서는 19세기까지는 한 사람의 작품으로 간단히 생각하였으나, 오랜 연구 결과 긴 세월을 두고 서서히 완성된 것임이 밝혀졌다. 저자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이다. 물론 이 복음서도 처음은 간결한 구전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록자가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집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완성 연대를 100년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21장 이후는 후에 첨부된 것이고, 5장과 6장의 순서는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저자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다른 제자’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요한 복음서는 소아시아, 아마 에페소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였으며 독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던 공관 복음서들을 보충하려고 한 의도가 보인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예수의 역사성보다는 종교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고 예수의 설교중 비유를 하나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는 ad 150년경의 사본이 남아 잇습니다.

오래 동안 내용이 보충 수정되어 ad 100년경 완성된 것으로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저자가 최종 편집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기록한 것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4복음서중 가장 철학적이지만 진짜 예수를 찾아 볼수는 없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개방적인 신학자들은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어록, 설교, 행적이 단 하나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 세미나 등)

저 역시 요한복음은 인간 예수와 전혀 관계없는 문서로 생각합니다)

 

 

◎ 사도행전

 

‘루가복음서를 쓴 사람이 사도행전도 집필하였다.

우리는 필자의 이름조차 밝힐 수 없으나 그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는 그리스 어문을 제법 익힌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9:13-28에서 바울로의 개심과 전도활동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자는 전에 바울로가 전도했었던 지역에서 생활하고 집필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지만 그가 바울로의 서간을 입수하여 참고했다는 흔적은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기가 살면서 집필하던 고장에서 바울로의 생애와 활약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한 것 같다. 편의상 이제부터 필자를 루가(Lucas)라 하겠다. 루가복음서의 독자들처럼 사도행전의 독자들 역시 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었을 것이다. 집필 장소로는 지중해 여러 곳이 거론되고 있으나 바울로의 전도활동 지역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집필했으리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루가는 복음서를 쓰고 난 다음에 그 후속편으로 사도행전을 썼다(사도 1:1-2). 루가 복음서 집필 상한 연대가 서기 70년이므로(200주년 신약성서 ≪루가복음서≫, 10면), 사도행전도 70년 이후에 집필되었다, 그런가 하면 125년경 베드로 후서가 집필될 무렵에는 이미 사도 바울로의 서간들이 수집되어 널리 알려지고 구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되었는데(베드 3:15-16) 사도행전 작가가 바울로의 서간들을 전연 참고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그는 아무리 늦어도 125년 이전에 사도행전을 집필했다 하겠다. 학계의 통설에 따라 80-100년에 집필되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바울로가 제2차 전도여행 중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간 때부터 생애 말엽에 이르러 로마로 압송된 때까지의 이야기에 '우리'가 바울로를 동행했다는 기사가 네 차려나 거듭되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다(16:10-17, 20:5-15, 21:1-18, 27:1-28:16). 신약학계 일각에서는 '우리' 기사를 두고 사도행전 필자의 목격담이라고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바울로를 따라 다니면서 미리 적어 둔 목격담을 사도행전 집필 때 참조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필자가 바울로를 동행하지 않은 사실이 분명한 이상, '우리' 기사가 제삼자의 목격담일 수는 있을지언정 필자 자신의 목격담이 아닌 것만은 확실시된다

 

(보통 교회에서는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이고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카톨릭 공식 백과사전에서도 이를 부정하고 잇습니다)

 

 

◎ 로마서

 

‘자신이 설립하지 않은 로마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뜻으로 58년초에 고린토에서 편지를 발송했으니, 이것이 곧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러니까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일종의 신임장이라 하겠다. 모처럼 평온한 가운데서 석 달가량 시간적 여유를 갖고 쓴 서간이기 때문에 그의 서간들 가운데서 구조적으로 가장 짜임새가 있을뿐더러 사상적으로 가장 원숙한 서간이다. 그러나 바울로의 사고범주와 언어표현 가운데는 오늘날 통용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신학사적 연구와 해석학적 성찰을 거쳐야 비로소 참뜻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편지로 인정되고 있는 서신입니다.

로마서 중 16장의 인사와 부탁(1-16/21-23절), 이단 경고와 축복(17-20절), 영광송(25-27절)은 후대에 필사자에 의하 첨가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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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바울을 그린 이콘화 / 사도바울은 대머리에 보통 붉은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 고린도전후서

 

‘사도 바울로는 2차 전도여행(50~52년경)중에 그리스로 건너가서 적어도 네 교회를 설립하였다. 우선 그리스 북부지역 마케도니아에 필립비교회, 데살로니카교회, 베레아 교회를 차례로 설립한 다음 남부지역 아카이아로 옮겨가서 고린토 교회를 세웠다,

신도들 가운데 상류계층에 속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못배우고 못난 사람들이었다(1고린 1:26-28).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를 세워 놓고 떠난 다음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계 그리스도인 아폴로가 고린토 교회에 와서 활약하였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수사학을 익힌 달변가였던 까닭에 개종한 다음에 당대 교회에서 설교 잘하기로 소문났다(사도 18:24-19).

 

바울로는 3차 전도여행(53~58년경)중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 에페소에 27개월 가까이 머무르면서(사도 19:8-10) 고린토 교회로 세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서간 ABC라 함] 그 가운데서 A와 C는 분실되고 오직 B(고린토인 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만 전해온다. 그리고 에페소를 떠나 그리스 북부지역인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또 한편의 편지를 써 보냈으니, 곧 현존하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가 그것이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이제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집필하게 된 동기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차례이다.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한창 전교하고 있을때 고린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불상사가 있었다,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고린토로부터 에페소에 와서 이런 일들을 전하였다(1:11). '클로에'가 누군인지 그 신원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고린토교회에 속한 유력한 여교우임에 틀림없다. 그런가 하면 고린토 교우들도 질문서를 작성하고 심부름꾼들을 시켜 바울로에게 보냈다(7:1, 16:17). 바울로는 인편과 서면으로 걱정스러운 소식들을 접하고 편지를 써 보냈으니 그것이 곧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이다. 바울로는 이 서간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시고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고린토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 우리는 이 서간에서 당대 한 지역 교회의 생생한 현상과 그 지역 교회를 보살피는 사도의 의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로가 이 서간에서 다룬 문제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린토 교회는 네 당파로 분열되었다(1:12-17).

교우들 증에는 '아버지의 처'와 증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교우들은 그를 바로 잡아 주지 않았다(5:1-13). 교우들끼리 제단문제로 법정에 고소하는 수도 있었다(6:1-11).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삼아 사창가를 출입하는 신도들도 있었다(6:12-20).

7장에서는 결혼 · 이혼 · 독신 등 성윤리를 자세히 다루는데, 바울로는 결혼을 신성시하여 결혼한 이들은 충실히 부부 생활을 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부부 가운데 한쪽은 신자이고 한쪽은 비신자인 경우에도 되도록 결혼생활을 지속하되 비신자편에서 이혼하려고 하면 신자편에서 동의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독신 그 자체는 값진 것이지만 욕정에 달아오르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7:9).

또 다른 문제로는 당시 지중해 고린토 도살장에서는 우사 앞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에만 짐승을 잡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교우들 가운데서 약한 심성을 지닌 이들은 이전 고기를 귀신 씌인 것이라하여 먹지 않았다. 반대로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은 귀신 따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만물은 주님이 지어 내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닌 까닭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기를 먹었다.

바울로는 원칙적으로 강한 양심을 지닌 이들의 편을 든다. 그러나 두 부류의 신도들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에는 강심장을 소유한 이들을 고려하여, 그런 고기를 차려서도 안 되고 먹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8:1-11:1). 11:2-14:40에서는 주로 공동체 모임을 다루는데, 특히 11:17-34에서는 저녁 미사 때에 야기된 비행을 다룬다. 1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주장한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집필 · 발송한 다음에 고린토에 거짓 전도사들이 와서 바울로의 사도직 권위를 부인하였다. 바울로는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하고 고린토 교회를 찾아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도들은 바울로의 적수들에게 동조하였고 어떤 무례한은 바울로에게 심한 모욕을 가하였다(2:5-11,7:12).

바울로는 한없는 슬픔을 안고 에페소로 돌아와서 '번민과 불안한 마음으로 울면서' 한 통의 서간을 발송했는데, 이것이 고린토 교회로 보낸 세 번째 서간이요 일명 눈물의 서간이다(2:4). 바울로는 디도를 고린토로 보내 어 눈물의 서간을 전하고 고린토 신도들의 명성을 촉구하게 하였다. 그 사이 바울로는 소아시아지방의 수도 에페소를 떠나 그리스 북부지방인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디도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마침내 디도를 만나 좋은 소식을 들었다. 고린토 신도들 대부분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울로와 화해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7:6-16). 바울로는 기쁜 소식에 대한 답신으로 57년경 네 번째 서간, 즉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써서 보냈다.

 

(고린도편지는 ad57년경 쓰여졌습니다. 일부에서는 고린도 후서를 바울서신이 아닌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후서 역시 바울의 서신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서신과 마찮가지로 자신의 사도됨을 계속 주장하고 잇고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평소 바울의 성격처럼 논쟁적이고 다혈질적인 부분이 상당히 보이고 잇고 바울 특유의 잘난 척, 비꼬면서 남들을 비난하는 저급한(?? ^^ / 제가 바울 싫어하는 것 아시죠)표현을 포함하고 있어 저는 바울이 틀림 없이 썻다고 생각합니다)

 

 

◎ 갈라디아서

 

‘저자는 갈라디아 사람들(3:1), 또는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1:2)에 이 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점은 바울로의 다른 서간들이 일반적으로 도시의 한 교회에 보내는(로마서, 고린토서, 필립비서, 골로사이서, 데살로니카서) 양식과는 조금 특수한 경우이다. 여기서는 여러 교회가 문제시 되고 있다. 19세기에는 남쪽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 이 서간이 보내진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이 경우라면, 이 서간은 첫 번째 선교여행 직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짙기 때문에 49년경 안티오키아에서 보낸 바울로의 첫 번째 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바울로다 두 번째 갈라디아 여행을 마친 뒤(4:13)그리고 사도행전 18:23에서 언급되고 있는 북쪽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서간을 보낸 것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즉 에페소에서의 기나긴 체류가 끝날 무렵인 56~57년 겨울에, 곧 로마서를 쓰기 6개월 전에 바울로가 이 서간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이 경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유사성이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보통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쓴 것으로 인정되고 잇습니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네델란드 신학파)바울의 편지가 아니고 초기교회에서의 유태교 전통주의자들과 유태교 예수파 사이에 발생한 분쟁 때문에 예수파에서 개종한 바울의 권위를 빌려 바울의 이름으로 쓴 서신이라는 주장도 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바울의 서신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들어게 상처주는 앞뒤안보고 막말을 하는 혈질잘난척 대마왕인 바울의 삐뚤어진 성품을 잘 보여주는 편지이기 때문입니다.(ㅋㅋㅋ).

갈라디아 교회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저주까지 퍼부어 대는 것을 보면 바울 서신이 분명합니다)

 

* 나중에 시간이 되면 바울 서신에서 바울이 얼마나 잘난척하면서 남을 깔보고 욕하고 비꼬고 글고 자신을 변호하는데 열심인데다가 자신의 대부인 바나바까지 욕하는 싸가지 없는 놈인지 헬라어 원본으로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 에베소서

 

‘(에페소에) 있는 성도들’(1:1)로 이 편지의 수신인이 나타나 있는데, ‘에페소에’라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도 19:1-40과 20:17-38을 보면,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적어도 2년 이상 머물러 전도하였을 뿐 아니라, 에페소 사람들과 특별한 친분관계도 있었다. 그러나 에페소서에는 다른 편지들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친지들에 대한 개인 안부도 나오지 않으며, 바울로는 이 편지 수신인들의 믿음에 대해서도 소문을 통해서 알았던 것으로 나타난다(에페 1:15). 그뿐 아니라 옛 사본들에도 에페소에라는 장소규정의 말이 빠져 있다. 이렇게 볼 때에 ‘에페소에’라는 말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없었는데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편지에 대해서 많은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골로사이서에서와 같이,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데에 통일된 의견이 없다‘

 

(교회에서는 에베소서가 바울이 감옥에서 쓴 것으로 설명하지만 신학계에서는 에베소서는 바울이 썻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도 쓰여진 문체나 내용을 봐도 바울서신은 아닙니다.

(바울특유의 잘난척, 다혈질적인 욕설이 전혀 안보이는 서신입니다 ^^))

 

 

◎ 빌립보서

 

‘바울로의 옥중 서간의 하나이며 내용과 집필상황으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와 연결된다

옛날에는 사도행전을 근거로 하여(사도 28장) 로마를 집필장소로 보았다. 그렇다면 집필연도는 63년경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학자들은 에페소를 집필장소로 본다. 그들은 바울로가 머무르고 있던 장소와 필립비 사이의 잦은 왕래(에파프로디도, 그 병에 대하여 소식을 전한사람, 디모테오, 바울로의 계획 등)를 그 이유로 든다. 본서를 에페소에서 썼다고 전제하면 이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는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바울로가 2~3년간(사도 19:8-10, 20:31) 지냈던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 설을 받아들이면 집필연도는 56년경이다.

 

학자들은 본서의 단일성을 의심한다.

그들은 어조의 차이, 연결의 부재와 상황의 차이를 들면서 사도가 쓴 두 통이나 세 통의 편지를 어떤 제자가 한데 모아 마치 한 통의 편지처럼 편집했다고 한다.

그 중에 1장 1절에서 3장 1절까지, 4장 2절에서 7절까지와 10절에서 23절까지의 부분이 바울로가 56년경에 에페소에서 보낸 편지이며 3장 2절에서 4장 1절까지와 4장 8, 9절의 부분이 그가 그 뒤에 고린토에서 보낸 편지라고 주장하는 설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특징은 다른 바울서신과 달리 내용과 문체를 보면 특유의 비꼬거나 욕설이 없고 아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잇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가 바울파에 속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편지에서는 니네들이 나한테 돈한 푼 준적도 없으면서 왜 뒷다마를 까냐며 욕을 하고 있지만 빌립보서에서는 자신에게 보낸 위문품에 감사하는 등 아주 부드럽고 감사까지 하는 등 조용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잇습니다. ㅋㅋㅋ 바울을 너무 비꼬았나요?)

 

 

◎ 골로새서

 

‘이 편지의 수신인인 ‘골로사이에 있는 성도들’(1:2)은 ‘바울로의 얼굴을 직접 못 본 사람들’(2:1)로 대부분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던 것 같다(1:21 · 27). 그들이 이룬 공동체를 세운 사람은 골로사이 출신으로(4:12) 에바프라(1:7)였을 것이다.

골소사이서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집필 장소와 시기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통일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골로세서는 보통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바울이 쓴 것인지 의심을 받고 잇습니다.

바울서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첫째로 문서의 지문이 바울 서신과는 다른 부분을 보여줍니다.

골로새서에는 다른 바울 서신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고 있고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신학적 단어가 나타나지 않고(의, 구원, 계시, 폐지 등등)바울의 문장으로 보기에는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골로새서에서 영지주의를 비난하고 잇지만 영지주의가 나타나는 것은 2세기 이후이므로 바울의 편지 일수 없고

세째는 골로새서의 신학이 바울이 죽은 후에 쓰여진 요한복음의 로고스적 교리에 가깝고 다른 서신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신학과 차이를 보이고 잇기 때문입니다.

 

바울 서신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에베소서와의 문장적 구성이 유사하여 바울서신이라고 주장하지만 두 서신사이에는 세밀한 부분에서는 신학적인 관점이 다르게 보이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여집니다)

 

 

◎ 데살로니가 전후서

 

‘그리스 북부 항구도시인 데살로니카(Thessalonica, 현재 ‘살로니키’)는 고대 로마 제국 마체도니아주(州)의 수도였다. 사도행전(17:1-9)에 의하면, 바울로 사도는 제2차 전도여행(50~52년경)에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선동에 의해 바울로는 곧 추방을 당하였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기본적인 교리는 배웠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교회(1데살3:10)를 걱정하여 곧 아테네에서 디모테오를 데살로니카로 보냈다. 그 뒤 디모테오가 고린토로 간 바울로에게 데살로니카 교회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하자 바울로는 그 곳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전서는)기원후 51년이나 52년에 쓰인 이 서간은 사도 바오로의 첫 작품으로 여겨진다. 바오로는 편지에서 데살로니카에 머물면서 행한 자신의 일과 그들에 대한 사랑을 상기시킨 뒤, 예기치 못한 때에 일어날 부활을 기대하며 순수함과 사랑을 보존할 것을 촉구한다

집필연도는 51년경이며 바울로의 많은 편지들 가운데 제일 먼저 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 가운데 제일 먼저 작성된 문서이기도 하다

 

(후서는)이 서간은 바오로의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가 쓰인 직후에 데살로니카인들의 의심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쓰였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가명 작품으로 보는 학자도 없지 않다. 그 이유는 둘째 편지에 첫째 편지의 많은 문장들을 그대로 베낀 부분이 많고, 종말에 관한 내용이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보통 바울의 편지로 보지만 후서는 바울서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후서를 보면

종말론자인 바울의 평소 소신과 다르게 곧 종말이 온다는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을 보며 종말이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는 듯이 주장하고 잇고, 예정설적인(2장) 부분은 바울 주장과 다르고, 전서와 동일한 문장들이 많아 전서를 베낀 것 아닌가 보여지고, 유대적 색체가 강하여 바울의 서신은 아니는 분석입니다. 저 역시 후서는 바울 서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일하기 싫으면 먹지 말라는 것은 누가 한 말일까요???????

 

 

◎ 목회서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서방카톨릭에서는 사목서간이라고 합니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등 세 서간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 직분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교회의 제도와 조직 그리고 이단 단죄 등 사목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서간의 문체, 어법, 내용, 신학사상도 서로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다. 이렇게 세 서간은 두드러지게 단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18세기부터 '사목서간'이라 불려왔다. 이들 사목서간에는 초대 교회의 제도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와 함께, 초창기의 교회론적 가르침과 그리스도론적 가르침에 관한 전승도 수록되어 있다

 

사목서간은 서기 180년경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목록에 바울로의 서간으로 배열된 이래 바울로의 친서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사목서간의 문체, 내용, 신학적 용어 등이 바울로의 친서들과 다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바울로 친저설을 부정하는 가명작품설이 제기되었다.

 

① 사목서간에 전제되어 있는 역사적 상황이 바울로의 친서들과 사도행전에 묘사된 그의 생애 및 전도활동과 부합하지 않는다.

 

② 용어와 문체도 바울로의 친서와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바울로 특유의 개념들이 사목서간에서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의화'라는 개념이 바울로의 친서에서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상태를 뜻하는데, 사목서간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닦아야 할 덕을 의미한다(1디모 6:11, 2디모 2:22, 3:16). 그런가 하면 바울로의 친서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은 '경건함' 또는 '건전한 가르침'이란 말이 사목서간에서는 중요한 용어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 사목서간의 문체도 바울로의 친서 같은 박력이나 다양성이 없고, 대체로 평면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다.

 

③ 사목서간의 신학사상은 바울로의 사상과 일치하는 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사목서간의 필자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목자로서 전통을 중시한다. 그 전통의 내용은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으로써, 필자는 이를 '건전한 가르침'(1디모 1:10)이라 하며 충실히 지키려 하였다(1디모 6:20, 2디모 1:12-14). 한편 바울로와의 뚜렷한 차이점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바울로는 예수의 재림을 뜻하는 낱말로 '파루시아'(내림)란 말을 썼지만, 사목서간의 필자는 '에피파니아'(현현, 현시)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예수의 재림뿐 아니라 예수의 육화(강생)도 가리킨다(2디모 1:10, 참조 디도 2:11, 3:4). 둘째로, 바울로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구원사건으로 보았는데, 사목서간의 필자는 예수의 지상생활 전체를 구원사건으로 보고 있다. 셋째로, 바울로의 '의'란 믿는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 상태로 보았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경건성'과 비슷하게 도덕적 성실성으로 보고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로, 바울로는 결단이 요구되는 신앙행위를 강조했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신앙의 내용, 곧 전해 받은 가르침(말씀)에 역점을 두고 있다. 다섯째로 바울로는 세말이 곧 다가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세말을 먼 미래의 일로 보고 교회 공동체와 현세의 질서를 중시하였다.

 

④ 사목서간이 쓰여진 무렵에는 확실히 이단자들이 공공연하게 준동하며 일반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이 이단자들은 유태교와 그노시스(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단의 유태교적 요소는 족보 시비, 또는 ‘꾸민 이야기’와 율법에 관한 토론 등에서 엿볼 수 있고 (1디모 1:3-4, 디도1:10-14, 3:9), 그노시스주의적 요소는 그릇된 금욕주의, 예컨대 결혼을 금하고(1디모 4:3) 자기들은 이미 영적으로 부활하였다고 믿은 데서 엿볼 수 있다(2디모 2:18). 사목서간의 필자는 이단의 오류를 바울로처럼 일일이 논박하지 않고, 오직 그것이 건전한 가르침과 어긋나니 철저히 배격할 것을 역설한다(1디모 6:3, 2디모 2:14).

 

⑤ 사목서간에서 살필 수 있는 교회상은 바울로의 친서들이 보여주는 교회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사목서간에는 이미 교계제도가 상당히 기틀이 잡혔고, 감독자 장로봉사자 등 성직자들은 특별한 자격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바울로시대에는 성령의 작용인 은사가 다양했지만, 사목서간이 씌어진 시대에는 예언의 은사만 남고(1디모 1:18, 4:14), 그 밖의 은사들은 교계제도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상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사목서간은 바울로의 친서가 아니라, 후대에 바울로를 존경하며 그의 사상에 심취한 성명미상의 어떤 사람이 집필한 가명작품으로 추론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집필연대는 대체로 서기 100년경으로 추정하면 무난할 듯하다. 왜냐하면, 사목서간에서는 감독자와 장로가 구별되지 않고 있지만, 서기 117년경 안티오키아 주교 이냐시오가 막네시아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3:2, 6:1) 감독자를 교회 최고 지도자로 지칭하고 장로들이나 봉사자들과는 명확히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가명작품 이란

가명작품은 구약 말기부터 서기 1-2세기에 걸쳐 널리 이용되던 문학유형의 하나였으며, 그것을 현대의 관점에서 한갓 거짓말이나 위조작품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명작품의 저자들은 대개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을 빌어 자기작품을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의 권위를 높일 뿐 아니라, 그 위인의 사람됨과 사상을 되새겨 그가 만약 자기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러저러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것을 작품화했던 것이다.

사목서간의 필자도 같은 생각에서, 지난날 사도로서 명성을 떨친 바울로가 그의 제자이며 협조자였던 디모테오(사도 16:1-3, 필립 2:19-22)와 디도(갈라 2:3, 2고린 2:13, 7:6·13, 8:6·16·23, 12:18)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서간을 썼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학유형을 택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울로 사도의 신학사상을 자기시대, 자기 환경에 적용하여 당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가명작품이라고 해서 성서의 무류성을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도 "성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저자의 시대에 널리 통용되고 당시 사람들의 공동생활에서 관습화되었던, 감정과 말과 이야기의 표현양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

 

(일단 카톨릭의 공식 입장은 바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역시 동의하고요)

 

 

◎ 빌레몬서

 

‘사도 바울로의 편지 가운데 가장 개인적이며 짧은 것이다. 그 수신인인 필레몬은 바울로에 의해 입교한 골로사이 교회의 신자였다. 오네시모라는 그의 노예가 도망을 쳤었는데, 후에 옥중에 있는 바울로를 찾았다. 이에 바울로는 오네시모를 본서와 함께 주인에게 돌려보낸다. 이 편지로 바울로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를 신앙의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바울로가 에페소 감옥에 있을 때 본서를 썼다는 설을 받아들인다면 그 집필연도는 56년경이다‘

 

(성서비평가들은(튀빙겐 학파 등)기독교적 가명문학으로 분석하고 저작 연대는 2세기경이고 2세기 교회안에 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품으로 분석합니다)

 

 

◎ 히브리서

 

‘히브리서라는 명칭은 200년경부터 사용되어 왔다. 우리는 누가, 또 무슨 이유로 이 명칭을 붙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누군가가 신약의 편지들을 집성할 때에 붙인 것 같다

로마의 글레멘스(96년 경)가 히브리서를 인용하는 점(1글레멘스 17:1, 36:2-5) 등을 근거로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은 이 책의 독자들을 로마나 이탈리아의 어느 지방에 살던 공동체로 본다.

책의 내용이 저자를 사도들의 제자 시대의 인물로 암시하기 때문에(2:3) 집필 시기를 80년에서 90년 사이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집필 장소로는 로마, 이집트, 에페소, 안티오키아 등이 대두되지만 확증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편지라고 하지만 실제로 편지 형식으로 된 부분은 13:19 · 22-25 뿐이다. 그 밖에는 서론(1:1-4)부터 시작하여 책 전체가 설교체로 되어 있어(2:5, 5:11, 6:4-9) 우리는 히브리서를 글로 씌어진 설교라고 부를 수 있다. 편지형식의 결문은 저자 또는 후대의 편집자가 덧붙였을 것이다

책 전체의 언어, 문체, 사상 등은 바울로의 것과 차이점이 많다. 바울로의 편지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124개나 되며, 거의 정확히 70인 그리스 번역본을 인용하는 것도 바울로와 틀린다. 바울로의 문체는 열정적이고 변칙적인데 비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특히 히브리서는 바울로가 전혀 언급조차 않는 그리스도의 대제관직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자주 ‘제관’, ‘대제관’, ‘제관직’이라는 표현을 쓴다. 결국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로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히브리서는 개신교에서도 일반적으로 바울서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익명의 편집자가 여기 저기에서 모아 만들 작자미상의 문서입니다)

 

 

- 바울서신 총평

 

신학계에서 로마서,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5권만이 바울서신으로 인정되고 잇고 나머지 바울서신이라고 전승되어온 문서는 거의 의심 받거나 히브리서처럼 바울 서신에서 아예 빠져버린 문서도 잇습니다.

기원 전후 시대에는 문학 작품에 가명의 저자를 붙이는 관습이 유행 하엿고 특히 그리스인, 유대인,(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퍼져 있었다

제가 그리스 철학편에서 철학계에서 논의되는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대한 논란을 말씀 드린 적이 잇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후대에 하도 많은 철학자들이 인용하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주장인지 불분명하고 한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유태인들의 경우 기존의 예언이 이뤄지지 않자 권위적인 메시지를 통해 예언을 수정하고 다시 선포하기 위해 과거 인물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저자의 이름을 과거 인물을 사용하고 잇습니다.

신약시대 역시 수많은 가명작품이 난무하였고 정경을 확정하면서 바울서신이 명확한 문서 외에 로마기독교 입맛에 맞는 가명 작품을 바울 서신으로 포함시켜 지금의 성서가 편집되게 됩니다.

2세기 많이 읽히던 바울이 쓴 바울행전이라는 책은 터툴리안에 의해 가짜임이 밝혀지고 바울행전을 쓴 장로가 교회에서 터툴리안에 의해 파문되면서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다’진술햇다고 합니다.

 

 

 

 

-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제가 출국일이 이틀 후에 출국하는 관계로 성서의 저자문제에 대한 총론을 써서 올려드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죄송 죄송

 

 

  • 차영배원주 2016.04.17 22:41

    쌤~ 수고하셨습니다.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 되십시요.
    제가 오래전에 읽은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독일 (프란츠 알트-손규태역)- 에서 바울서신을 유대교적 전통에 물들은 가부장적 제도에 익쑥한 바울이 예수의 정신과는 어긋나있다고 혹평해서 의아했는데 최근 읽은 "예수냐 바울이냐"에서도 거의 맥락이 같은것이 있어 버려야 할내용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바울 서신서중 일부어록을 들어 삼위 일체를 뒷밧침 하는 목사님들이 많아서 오늘 쌤의 글을통해 확신을 갖게됩니다.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은 매우 공감했던 책이라 다시 구매하거나 타인에게 권하고 싶어서 찾아보았으나 절판되서 없네요.
    여성 중심사고(아니마적 감성)를 강조하여 또한 좀 진보적이고 획기적이라 인기는 없어보입니다.
    누가 다시 번역해서 내준다면 쫗겠는데... 내가좀 별나게 특별나서 그런가? 다시보고 싶은 책입니다. 요즘세태에는 더욱...

  • 쥰(joon) 2016.04.17 23:56
    손규태교수 좋은책 많이 번역하셨죠
    독일신학 계통이라 한국교회에서는 싫어하지만요 ㅋㅋ
  • 차영배원주 2016.04.18 01:59
    손규태 교수에대해 아시나 보죠?
    저는 작접적으로는 잘 모르고 형님이 시무하시던 교회 (통합측 시흥장로교)출신이었고
    제가 신앙적으로 갈등과 방황으로 헤맬때 꼭보도록 권한책이 "현대인을 위한 예수전"이었죠.
    저에게는 신앙으로 접근하는데 일조를 한책이지요.
  • 쥰(joon) 2016.04.18 02:26
    개인적으로 아는분은 아니구 이쪽 동네 평판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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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종교철학42편(시즌Ⅱ) - 모든 신을 모시는 판테온 오랜만에 다시 뵙겠네요 여러분들의 염려 덕분에 잘다녀왔습니다. ^^ 2달이 짧네요   시즌2 시작하기 전에 유럽일정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독일 스위스는 종교관련... 3 file 2016.07.10
45 종교철학 41편 - 성서의 저자 4 (번외) ◎ 야고보서   ‘1장 1절의 인사말 외에는 편지다운 특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저서는 구체적 상황에 관한 언급없이 윤리 도덕적인 훈계를 별 순서 없이 늘어... 8 file 2016.04.18
» 종교철학 40편 - 성서의 저자 3 (번외) 전편에서 계속......     ◎ 마태복음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60-130년경 생존)와 그의 설을 따른 프랑스 리용의 주교 에이레나이오스(130-200년경 생존... 4 file 2016.04.17
43 종교철학 39편 - 성서의 저자 2 (번외) 전편에서 계속됩니다.   ◎ 예레미야   예레미야서는 단번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는 시문(詩文)으로 쓰여진 신탁(神託)과 전기적 이야기들 뿐 아니라 ... 2 file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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