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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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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1026일 독재자 박정희는 부하의 총격에 사망했다. 자신의 딸같은 나이의 예쁜 여대생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며 안가에서 늘 하던대로 술파티를 벌이다가 죽은 것이다. 이때 한국 사람들은 독재가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워낙에 단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데다가 갑자기 죽었으므로  독재를 이을 후계자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에서는 ‘80년의 봄이라는 꿈같은 말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채 두달이 되기도 전에 또다른 군인이 나라를 뒤엎어 버렸다. 전두환이다. 전두환은 같은 해 12 12일에 노태우, 정호영등과 함께 청와대를 접수하고 이내 정권을 찬탈했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에서 대통령이 된 후에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박정희의 강압에서도 살아남은 민주화 운동세력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전두환의 쿠데타를 비롯한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구국의 결단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상황판단이 매우 빠른 사람들로 주로 친일파 조상들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정에서 배우고 익혀온 처세술을 써먹은 것이다. 이들은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의 귀족이 되었듯이 전두환의 그늘 아래서 사회의 새로운 지도층이 되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전의 사회적지위를 유지하고 확대하였다.

국민 2300여명(미의회 보고서)을 죽이고 권력을 강탈한 전두환을 칭송하던 무리 중에는 다수의 기독교인사들도 있었다. 당시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사 5인은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5인의 목사이외에도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함으로써 독재라는 불의를 용납했다.

 

     기독교는 의를 추구하는 종교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을 기독교에서는 의롭게 되었다고 말을 한다. 따라서 의가 빠지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물론 기독교에서의 의가 사회적 정의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에서의 의는 하나님의 신적도덕성을 말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기반한 사회정의하고는 그 의미에 있어서 다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의 의와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기반한 사회 정의하고 영판 다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인권이라든가 자유 그리고 평등 같은 사회적 정의는 기독교의 의와 거의 일치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적도덕성도 인권, 자유, 평등의 가치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기독교인들이 사회적 불의에 대해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독재자들의 무소불위의 권력 아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국기독교의 선배 지도자들은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에 대해서 일제히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종교간의 평화가 있었던 나라였다. 여러 종교가 혼재하여 각각의 진리를 선포하고 사회에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도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아무런 갈등을 벌이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새삼 시비를 거는 불교의 탬플스테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같은 것을 전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정치권력과 유착을 할것인가를 고민하며 세를 불려 나갔다. 이런 기독교의 지도자들에게는 사회정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종교적 세를 불리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에 대다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회정의가 빠진 하나님의 의(?)만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병적증상으로 발전되어 사회에 불의를 보고 나서는 사람들을 빨갱이나 종북세력이라며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카톨릭은 사회정의를 위해 박해를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보루였던 곳이 아시다시피 명동성당이다. 그리고 카톨릭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출범시켜 사회의 불의에 대한 조직적인 항거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 기독교는 오히려 문익환 목사 같은 이를 이단시 하며 빨갱이로 몰아 붙이는 웃지 못할 충성심까지 보였다.

 

     하나님의 의는 사회정의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 국가의 소득이 늘어나면 국민의 소득도 늘어나야한다. 그런데 국가의 소득이 늘어났음에도 서민층과 빈민층이 확대된다면 그건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원인이다. 이런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불의하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의 사회적 불의는 하나님의 의에도 또한 반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넉넉하게 먹고 살만한 세계였다.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자연의 질서가 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세계를 지으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도 자연세계는 인간이 파괴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그 의로운 자연질서에 따라 모든 생물은 풍성한 삶을 누릴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주어진 풍성함을 깨어 불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반하는 것이 된다. 국가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시점에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해주는 것 같은 법이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즉 누가 더 가져서 누가 모자르게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가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의롭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위반하는 사회적 불의를 용납해서는 안된다. 아니 의는 자동적으로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수 중에 속해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이는  신앙적으로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남은 자 7천 이외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편에 선 모든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신 성경적 예나 99.8%의 사회적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중세의 카톨릭을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판정하신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독교는 개독교가 아니다. 개독교는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사회적 불의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그 불의를 용납하는 것이 개독교이다. 지금은 어느때 보다도 사회적 정의가 요구되는 세대이다. 하나님의 공평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 주는 교회가 필요한 세대라는 말이다. 사회에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독교가 사회적 정의를 위해 올바른 모습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회의 모범이 되고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른 지침을 제시하는 일종의 방향계같은 것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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