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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8장에서는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나아가 원한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는 기사가 나온다. 

물론 이 기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이다. 

이 본문은 종종 기도와 응답에 대한 좋은 예로 사용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어느 마을에 과부가 살았는데 불의한 재판장에게 찾아가 

자기의 원한을 풀어 줄 것을 간청한다. 

이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청을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린다. 

하지만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관원을 찾아가 자기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소원한다. 

과부가 하도 끈질기게 찾아오니까 귀찮아진 재판장은 결국 과부의 간청을 들어준다.

 

 

이렇게 비유로 말씀을 하시고는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다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들어 보아라. 불의한 재판장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간청을 하면 들어준다. 

실제로 재판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아라. 귀찮아서라도 원한을 풀어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의 백성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간청을 하나님은 당연히 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겠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 원한을 속히 풀어 줄 것이다.

 

이 비유의 말씀의 시작도 보면 1절에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누가복음 18장의 재판장과 과부의 이야기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인 것으로 보인다. 

빌 하이벨스 목사도 그의 책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에서 이 누가복음 18장의 기사를 그렇게 설명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귀찮게 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처럼 

하나님을 귀찮게 하는 것이 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하나님께 간구를 하면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용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빌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설명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성경 내내 흐르는 신앙생활의 올바른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늘에서 이루신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이 성경 역사이고 하나님의 뜻의 구현이다. 

사람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죄라고 한다. 

그러니까 누가복음 18장의 기사를 해석하면서 

하나님께 떼를 쓰면 뜻을 관철할 수 있다고 한다면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들어서 예수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하신 응답이 언제나 자신의 선하심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자신의 의를 드러내시거나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언제나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누가복음 18장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응답하심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성경을 찾아보자. 사사기 20장이다. 

사사기 20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그 응답에 담지 않은 예가 나온다.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11지파는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총회를 열고 베냐민 지파를 치기로 결정한다. 

이는 베냐민 지파의 죄를 벌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민답게 이스라엘의 11지파는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기도는 당연히 베냐민 지파에 대한 공격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11지파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그런데 40만 대군의 11지파는 달랑 2만 6천의 베냐민 지파에게 대패를 당하여 2만 2천명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에도 벌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두번째 기도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11지파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 11지파는 베냐민 지파를 다시 공격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1만 8천명이 죽임을 당하며 대패한다. 

"우리로 하여금 베냐민 지파의 악을 끊어내게 하소서"라며 

하나님께 불의를 근절하기 위한 몸부림의 기도를 하였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지만 실재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지만 이스라엘에게 임한 결과는 참담했다. 

사사기 20장에는 그 이유가 상세히 설명이 되어있다. 

두 번의 실패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이스라엘 11지파는 큰 슬픔에 빠졌다. 

전장에 나가 죽음을 당한 가장과 아들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외면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울며 하나님께 다시금 매달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사장을 불러 번제를 드리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다. 

이전에는 자신들이 이미 총회를 열어 베냐민 지파를 치기로 결정을 내린 후에 

하나님께 단지 통보를 하며 형식적인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는 회개를 하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죄악을 끊어 내겠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신앙의 원리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이 된다. 

복음서에는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형제에게 가서 서로 화목한 이후에 와서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인과 아벨의 기사에서도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를 다스리지 않고 

그저 제물만 챙겨가지고 제사를 드리러 나온 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이 밖에도 제물로 드려진 고기에 배부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말씀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응답은 하셨으나 응답이 응답이 아닌 경우가 있다. 

누가복음 18장의 기록도 역시 동일하다.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가 원한을 풀어 준 것이 어떤 영적 유익이 있을까. 

그리고 그와같이 단순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떼를 부리듯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일까. 

 

그리스도의 이 비유의 말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있는 말씀이 있다. 맨 마지막의 말씀이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응답하여 원한을 풀어주기는 할 터이지만 그러나..하고 말을 덧붙이신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라고. 

즉 그와같은 아무런 영적 유익이 없는 기도를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신자들은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기도를 하고 낙심(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런 기도에서 믿음을 보지 못할 것 같으면 비유로나 들지 말지 

비유로 들어서 기도를 함에 낙심하지 말라고 해놓고서 나중에는 그게 믿음이 아니다 하니까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그리스도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리스도께서 비유까지 들어서 하신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계속 이어진 가르침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비유의 말씀 다음에는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죄인 세리의 기사이다.  

바리새인은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하며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에 반해 세리는 자신의 죄로 인해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성전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가슴을 치며 울 뿐이었다. 이런 두 사람의 비유는 올바른 신앙에 관한 것이다.

 

 

이어진 부자관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예수는 엉뚱하게도 돈 얘기를 꺼낸다. 

부자관원이 어려서부터 계명을 모두 잘 지켰다고 말하니까 예수가 하신 말씀이다.

“재물을 다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예수는 그렇게 말했고 그 이유는 당연히 올바른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부자관원이 어려서부터 잘 지킨 계명은 

모두 자신에게 손해가 나지도 않고 희생을 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처럼 해야 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핵심 주제인데 

그걸 모르고서 무슨 계명을 어떻게 지키고 살았는가 하는 예수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예수는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신 것이 누가복음 18장에 연속된 기사들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 이야기를 보자. 

과부의 원한을 불의한 재판장이 들어 주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의로우신 하나님도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었다는 병행구절이 모순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7절의 ‘하물며’의 번역이 문제다.

영어 번역을 보자

6. And the Lord said, Hear what the unjust judge saith.

7. And shall not God avenge his own elect, (KJV)

 

6. 불의한 재판장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보아라

7.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

 

불의한 재판장이 풀어준 원한과 의로우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his own elect)의 원한을 풀어 준 것을 

비교해서 들어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원한을 풀어준 것의 내용이 다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NIV를 보자.

6. And the Lord said, "Listen to what the unjust judge says.

7. And will not God bring about justice for his chosen ones,

 

6. 불의한 재판장의 말을 들어 보아라

7.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선택한 백성(his chosen ones)을 위해 자신의 공의를 (과부에게) 가져오지 않겠는가

 

세상의 불의한 재판장이 귀찮아서 풀어준 원한과

하늘의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으로 선택한 백성에게 풀어 주는 원한이 다름을 말하고 비교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원한을 속히 풀어 줄 것이다. 분명한 뜻을 알기 위해 계시록의 말씀을 보자.

마찬가지로 원한을 갚아달라는 말씀이다.

[계시록6:10]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에서 과부의 요구와 일치한다.

그런데 과부는 불의한 재판장에게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로 인해 죽임을 당한 성도는 그리스도께 신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를 이해하고 나서 8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비유의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내쫒긴 사람들의 그 원한을 분명히 풀어 줄 것이다.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불의를 종식시킬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때 믿음을 가진 자에 한해서 그 원한을 풀어 줄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세상의 세속적 원한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 

들어주는 것하고는 분명 다른 메세지이다. 

그러니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인자가 분명히 다시 올 것이고 

그 때에서 죄로 인한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왜곡으로부터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발생한 모든 불의한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잃은 원한을 

인자 그리스도께서 풀어 줄 것이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기도에 대한 교인들의 오해가 매우 심하다.

아마도 기도에 대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응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자의 올바른 삶은 하나님께 응답을 요구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응답해 드리는 것이다.

 

구원에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소명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일에 대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한다.

신자의 삶은 소명과 사명이 모든 것이다.

 

신자가 추구해야 할 것들은 매우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저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는 불의한 재판장에게나 가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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