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공공신학자 짐 월리스(Jim Wallis)는 <하나님의 정치>에서 "예산은 도덕적 문서다(A budget is a moral document)"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독특한 언사는 그동안 낙태와 가족 문제에만 도덕을 들이댔던 공화당에게는 연방 정부의 예산도 그 못지않은 도덕적 이슈임을 제기하고, 정치에서 도덕의 문제를 거론하기 꺼려했던 민주당에는 예산과 같은 첨예한 정치 행정적 사안에도 도덕과 가치의 언어를 되살릴 것을 주문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군비에는 어느 정도의 예산을 배분할지, 복지, 청년 실업, 녹색 성장 등에 예산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소수의 엘리트 관료나 정치인에게 맡길 문제가 아니다. 또한 나라의 전체 비전과 가치에 부합하는 예산은 그 자체로 강력한 연설(설교)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짐 월리스는 어느 한쪽의 프레임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양쪽을 더 높은 차원으로 견인하는 탁견을 남겼다.

교회의 예산과 회계장부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교회의 예산과 회계장부는 제자도의 핵심 헌장과도 같다. 예산이 교회 전체의 비전과 사명에 부합하는지, 성경이 말하는 가치에 충실한지, 재정이 공명 정대하고 불편부당하게 관리 운영되며 집행되고 있는지는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한지, 성경적으로 균형 잡혀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다. 교회가 밖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표어가 재정과 회계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요 심하게는 거짓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필자가 예전에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할 때이다. 보통은 중고등부 예산만 보는데 어느 날 교회 전체 예산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교회 전체 부서 중에서 중고등부 예산이 가장 적은 것을 발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심지어는 유치부 예산보다 적은 것을 발견하고는 씁쓸해하기도 했다. 교회의 주요 사역자들은 자주 청소년이 우리 교회의 미래라고 집회 때마다 말씀하시곤 했는데 단순한 립서비스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중고등부의 예산에 대해 담당 장로님께 말씀을 드렸으나 별로 나아지진 않았다. 마치 예산과 재정은 또 다른 논리로 정해지는 것 같은 벽을 느꼈다.

예산과 재정이 이처럼 중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계와 숫자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전문 기술적인 언어로 되어 있어 의료계와 법조계와 더불어 진입 장벽이 높은 대표적인 분야 중의 하나이다. 자산, 부채, 재무상태표 등 이제는 일반화되어 비교적 알기 쉬운 용어도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암호와도 같은 용어와 숫자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성도들에게도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소수 엘리트와 전문가에만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에겐 법률, 의료, 회계, 목회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신앙, 건강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그것이 전문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맡기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바른 태도도 아니다. 더군다나 교회는 공동체이다. 회계를 담당하는 전문가를 세워 섬기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의 전체 운영과 과정은 모든 성도들이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문가를 돕는 길이며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귀찮고 어렵다고 외면하면 한 지체된 성도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공동체로서 성도들이 재정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회계 보고와 예산 수립을 파워포인트 화면이나 구두로만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는 정확한 파악이 힘들다. 회계 보고 자료가 유인물로 제공되어야 하고 교회 홈페이지에도 매월 회계 보고를 게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칙적으로는 성도들이 언제든지 궁금하면 자료를 열람하거나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의견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회계도 사람의 일인지라 실수와 오해가 없진 않겠지만 그것 또한 공동체로서 교회가 함께 감당하며 풀어 갈 일이다. 감추고 숨기려 들면 거기엔 곰팡이와 좀이 쓸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진실에 기반하지 않은 교회를 교회라 할 수 있을까.

 

최삼열 / 기독경영연구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