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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역사의 중심을 어디에 무엇(누구)에 두느냐 하는 것은 해석의 방향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삶의 형태를 바꾸어 결정 짓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1. 성경의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보는 견해.

 어떤 기독교인이든지 성경을 인간 중심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짚어 봐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런 연유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본다.

 하나님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가? 기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는 성경적 복을 의미하기 보다는 인간의 관점에서의 복이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은연 중에 우리는 내가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누리는 평안과 불순종하므로 닥치는 시련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택함을 받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순종에 따라 하나님이 택하셨는가? 물론 이 질문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주저없이 대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순종할 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지 않았는가? 하는 보상적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실 때에 택함을 먼저 생각하기 이전에 그가 순종하였기에 합한자가 되었다는 논리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한다.

 성경 전체에 있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으나, 오늘날 우리들은 그렇게 알고 배우고 가르쳤다. 그 이유와 사상적 근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우리의 도덕적 논리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의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은 달라지며 그러므로 인간의 행함은 구원과 신앙의 삶에 있어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해야 복을 받는다. 그 가운데는 열심히 모이는 것과 기도하는 것, 예배생활과 헌금생활 등 모든 종교적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뒷받침 해 주는 간증인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어느날 인기 간증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앙생활을 잘해 부자된 사람, 행복한 가정을 이룬 사람, 권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재물을 잃어버리고 가정이 파괴되며 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면 그는 더 이상 간증자로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전에는 신앙의 성공자였으나 이 후에는 실패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물갈이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전이 건축되면 물갈이를 하고 때가되면 물갈이를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는 성공한 사람들의 집단이나 성공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되고 말았다. 이것을 우리는 번영신학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순종하여 복을 누리다가 죽어서는 천국가는 행복한 신앙이다. 그리고 지극히 인본주의에 기초를 하고 있는 이기적 신앙이다. 이런 시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너무 부족한 것이 많은 분이시다. 능력도 제한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선택과 결정 여하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도 변하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랬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나님은 역사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비전을 가져야 하고 긍정의 사고를 해야 하며 최선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성도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성경의 인물들의 실패를 알게 되었고, 번영신학에 기초한 메가처치들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아, 성경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이구나!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구분하여야 할 것이며 어떻게 성경을 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러한 논의가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 되져 갈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은 진리이고 어떤 것은 이단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을 건축해야 하며 세상에서 성공해야 할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채로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가 생을 마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당연한 명제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능력이나 행동의 보상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변덕스러운 신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아리우스의 주장처럼 자신의 능력을 주체할 수 없어 그에게 넘쳐나는 능력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창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는 피조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가르쳐(계시) 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자신의 완전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하여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19:1), 장애인들로 인하여서도 영광을 받으시고(요9:3), 그리스도의 오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요17:4). 그리고 종말에 모든 만물이 무릎을 꿇고 그의 영광을 시인하게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빌2:10).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행동이나 계획이 바꾸지 않으신다. 하지만 때로는 성경에 조건적이거나 인간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태도가 바뀌는 듯한 표현들은 문학적인 표현이지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인동형설이라고 한다.

 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을 이제 죽을 때까지 잊지 말자. 웨스트민스터 신항고백의 첫 장에서도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부인하는 자하고는 입도 섞어서는 안된다. 나는 SNS(패북, 트윗트 등) 친구 맺었다가 다 끊었다.

 이 목적은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존과 섭리라고 하는데 그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조물에 의해서 목적이 변형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고 완전하신 그의 공의와 사랑에 의해 세상을 다스리는 과정이 그의 역사와 계시로 말씀되어져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나의  신앙생활의 여부에 따라 복을 주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는 분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십일조에 따라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복의 근원이 아니다. 제발 제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좀하고 살자.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데 방해의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 기원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존재의 근원을 알 필요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해요소는 하나님이 처리를 하시기 때문에 그 기원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그 존재를 심판하며 그로 인하여 발생된 혼돈을 정리해 가시는가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이것이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우리들의 삶의 현실을 밝히는 진리이다.

 하나님이 섭리의 과정과 방법은 언약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을 걸고 행동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일을 행(섭리)하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과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간들에게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는데 언약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이 없이 언약 아래에 있는 자들을 자신의 백성이라고 칭하신다. 그리고 그 완성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원수를 물리치며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십자가상에서 완성하신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이 완성되었음을 확증해 주셨고 이를 몰라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식을 주시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셨다.

 이제 다윗이 그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칭하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데 한 몫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를 알게 하신 은혜(언약) 아래에 있게 하시려고 부르시고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 부르심에 "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칭하여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의 행함은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반응이지 우리의 행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움직게 하실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까 구원파와 같은 사람들은(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에) 구원 받은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틀린 말은 아닌것 같지만 더욱 냉정하게 말하면 구원 받은 자른 죄를 지을 수 없다. 이 부분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기에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임을 인식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라 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정의하기로는 무리가 있겠지만 추가 설명이나 논의르 약간 뒤로 미룬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는 자들이 아니며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밤낮으로 하나님 비위를 맞추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전부다. 더 이상 없다. 더 이상 말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없다. 밤낮 부르짖어도 안되며 부르짖을 수도 없다. 헷갈리지 말자. 지금 우리가 기도하며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의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 속에 있는 자들이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고 헌금을 하든지 말든지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성경과 복음에 대해서 아직도 정리가 되어지지 않는 성도들이 이곳에 많이 있는 것 같아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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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쥰(joon) 2016.12.16 18:37
    질문1
    웨스트민스터 신조야 15세기 다국가 연맹형태인데에다가 국교회, 카톨릭인, 개신교등의 여러 복잡했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국의 정치적 산물이고 극단적 칼뱅주의에 산물일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겨우 스코틀랜드교회에서만 인정받았고 20세기까지 수차례 수정되어던 신앙고백중 하나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부장로교에서만 통용될 뿐인데 그걸로 인간관계까지 단절하신다는 것은 좀 과하신 것 아닌가요? ^^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첫구절이라고 인용하신 부분은 웨스트민스터 신조(신앙고백)이 아니고 신조를 만든 이후 신조를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든어 붙인 웨스트민스터 문답서에 나오는 것 아닌가요?)

    질문2
    예정론 이야기하실 때 그리고 이번에도 신인동형설 이야기를 하시는데 인간이 신을 문학적 표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신인동형설이야기를 하셨는데 신인동형설은 원래 고대 그리스적 개념으로 신도 인간과 같이 인격적 개념이 있다는 고대그리스의 신관(ανθρωπομορφισμός)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신을 문학적으로 표현 했다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질문3
    인간창조의 목적이 신의 영광이라는 근거로 말씀하신 성서구절(시19:1, 요9:3, 요17:4, 빌2:10)들이 근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과도하지 않을까요?
    정치적 산물인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나오는 교리문답서를 창조 목적의 근거가 된다는 것도 좀 근거가 약하구요
    신조 교리문답서 1장에 나오는 부분은 자세히 읽어보면 천지창조의 목적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목적을 신의 목적으로 착각하신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쇼요리문답 제1과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제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₁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목적을 이야기한것이지 창조의 목적으로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인간의 목적과 신의 목적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이해해야하지 않을까요?
    창조의 목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과대한 확대해서 같은데요?
    계시록 4장에도 ‘주님이신 우리 하느님 하느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누리실 만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 하고 찬양했습니다’라고합니다.
    즉, 신이 천지를 창조했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하다는 것이지 자신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 창조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잇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창조가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주장을 한 미국 대각성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드와 동일한 주장을 하시는데 에드워드의 창조에 대한 주장은 신학계에서 예수의 구원사역을 제한시킨다는 비판을 수없이 받고 잇습니다.

    창조를 신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성서적 신학적 근거가 좀 약하지 않을까요?
  • 쥰(joon) 2016.12.16 18:39

    성경과 복음에 대해서 아직도 정리가 되어지지 않는 성도들이 이곳에 많은것 같다고 하셧는데 목사님과 다르다고 정리가 않된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복음과 성서에 정리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시는지도 잘모르겠구요

     

    항상 의심하고 비판하는게 저에 일이라 죄송 ^^

  • sozo 2016.12.17 02:33
    항상 의심하고 비판하는 일은 학자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신앙적 의무(duty)라,,저도 아래 댓글 때문에 죄송^^
  • 노아김태우목사 2016.12.17 04:13

    답변1
    웨스터민스트 문답서가 맞습니다. 저는 극단적(?) 칼빈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단절한 것이 아니라 논쟁이 하기 싫어 SNS 팔로우를 단절하였습니다.

    답변2
    신인동형설은 말씀하신대로 고대그리스의 신관을 이야기 한 것 맞습니다. 그들이 신을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표현하였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표현한 것을 고대그리스인의 신관과 같이 표현하였지 그런 기자가 그런 신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답변3
    인간창조의 목적이 신의 영광이라는 성서구절의 근거가 과도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웨스터민스트소요리문답 1문에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였기에 목적이 세워진 것이지 인간 스스로가 그 목적을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창조자체에 이미 영광과 존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완료형이며 영광과 존귀를 위해 창조했다는 것은 진행형의 표현이지 다르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비판을 받았다면 저도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직 그 만큼의 학식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직 공부하는 중이지만...

    창조를 신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성서적 신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것으로 끝을 맺으면 당신은 아직 부족하니 더 공부해라는 것으로 마감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이견도 함께 올려주시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쉽습니다.

  • 쥰(joon) 2016.12.17 18:20

    목사님께서 제 의견이 없어서 아쉽다고 하셔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국의 기독교 기준으로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창조의 목적을 찾으려면 창세기에 창조편을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제가 성서를 역사적 산물로 보기 때문에 신앙적인 시각으로 보는것과는 시각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두가지의 창조설화가 존재합니다.
    먼저 창세기 1장부터 서사시(저는 찬송가 정도로 생각합니다)로 기록된 창조설화에 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 싯구의 중요단어는 혼돈과 공허이고(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에는 토우와 보후(תֹהוּ וָבֹהוּ):이 혼돈과 공허가 어떻게 질서를 잡아가는지 3절부터 설명하고 잇습니다.
    1장은 싯구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지고 잇습니다.
    (엘로힘 키 토부/엘로힘이 좋왔다/신들이 그것이 좋왔더라/אלהים כי־ טוב׃)
    즉, 정리하면 혼돈 공허에서 질서를 향해 창조과정이 되어가면서 좋왔다는 후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창조의 목적이 혼돈에서 질서를 향해 나가는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2장 3절까지는 창세설화는 E문서 계열로 북이스라엘의 창조설화를 싯구로 표현한 것이며 다신교적 성향을 보이는 북이스라엘의 영향으로 신의 이름도 복수로 지칭하고 있고 특히 27절에는 복수의 신이 인간을 만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잇습니다.
    창세기 1장을 분석하면 북이스라엘에서는 창조의 과정을 질서를 잡는다고 표현하고 있고 창조의 목적은 무질서(혼돈)에서 (신에 의한)질서를 잡아가는 것으로 보통 해석합니다.

    창세기 2장4절부터 기록된 두 번째 창세설화는 Y계열문서의 남유다 창세설화로 1절과 달리 서술적 형태를 보이고 신의 명칭도 단수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일신교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잇습니다.
    2장 5절을 보면 창조이전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스비다.
    ‘야훼가 대지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엿고 대지를 돌볼 사람도 없었으므로’라고 기록하고 잇습니다.
    공허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농사의 필요조건인 비와 사람이 없어서 공허하다는 설명을 하고면서 6장에는 농사가 가능하도록 땅을 물이 적시고 7장에는 인간을 만들고 잇습니다.
    이 부분은 땅을 일굴 인간이 없어 공허한 상태이고 바로 인간을 만든 것은 공허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게되면 인간의 창조 목적은 땅을 일군다는 것으로 상징되는 노동을 하기 위해 창조된 것으로 보통 해석합니다.
    창세기 2장 4절의 남유다계열의 창세설화는 수메르 창조설화의 영향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제가 성서인문학에서 수메르 설화편을 보신분들은 아시겟지만 성서의 창세기 편에 모티브가 되는 수메르 신화에서는 인간 창조의 목적이 하급신들의 휴식을 위해 대신 노동을 할 도구로 인간이 창조되는데 남유다계열의 창세설화도 이에 영향으로 보입니다.
    너무 역사 인문학적으로 해석했나요?
    제 개인적으로 보는 성서의 창조 해석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창세기를 그냥 고대 가나안에 퍼져있는 여러 신화들의 영향을 받은 전승의 취합 정도로 보기 때문에......
    (전혀 신앙에 도움은 않되겠지만 ㅠㅠ)

  • 노아김태우목사 2016.12.17 19:57

    아, 네 친절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을 보니 초기 신학시절 구약학 교수님의 강의가 문득 생각이 납니다. 참으로 재미있었던 수업이었지요. 그 때 사용했던 교제는 군데벡의 '이스라엘 역사'였습니다. 1학년 첫 수업부터 교수님은 성경은 설화라고 정의를 내렸지요. 그 후 보수신학으로 전향해서 들은 신학의 첫 수업에 들은 말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라고 들었지요. 물론 존재하지 않는 원문 성경을 일컫는 말이라는 전재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들이 이 후 제가 공부하는데 많은 갈등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도움도 많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의 관점 자체가 다른 것이기에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저는 보수주의적 성경해석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렇다고 양식비평 또는 문서비평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논지를 꺼내고 말하고 있는 것은 칼빈주의적 입장이며 그 입장에 공감을 하는 것은 물론이며 그것이 저의 신앙의 근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던 초기 당시 한국의 정세가 전두환, 노태우를 잇는 가운데 있어 노동운동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여간 그런 입장에서 논지를 전개해 나가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많은 궁금증이 해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제가 더 많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여 논쟁을 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냥 극단적(?) 칼빈주의자로 봐 주시고 많은 신학의 갈래 중에 한 부분에 심취한 사람으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신조같은 참고서를 즐겨보고 그런 참고서를 정답으로 알고 배껴 쓰는 그 정도의 수준입니다.

  • sozo 2016.12.17 02:29
    아,,,어쩌지?
    사실 꼴보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는 진보 김쌤께서 입을 여셨다
    보수 김목사님에게 보수 황목사가 신학적 동의를 표해야 하는데 그게 난감하고
    오히려 진보 김쌤의 말씀이 마음에 합하니 이를 어쩌지 ㅠㅠ

    영훈씨랑 방송할 때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등을 성경의 권위 이상으로 알고 인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했었고
    또 그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것도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이 연사 목소리 높여 외쳤는데
    친구 맺었다가 다 끊었다고 하시길래 친구 안하겠다고 하실까봐 조심스레 스리슬쩍 가만가만 넘어가려고 했다

    아 근데 어쩌지,,,?
    우리 김쌤이 그냥 확 저질러 버리셨다


    (ㅠㅠ 는 분명한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절대 ㅋㅋ 가 아님을 밝힙니다 절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 아닙,,)
  • sozo 2016.12.17 02:31
    역사의 주관자가 하느님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스누피 2016.12.17 06:05
    하나님의 인간창조 목적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라,인간답게 살아라, 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인간예수를 통하여 친히 보여주신것입니다.

    가장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라가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할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보이는 내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자요 전지전능을 강조하여 신으로 떠받들고 인간은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을 ,비인격체인 개돼지처럼 비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관계를 원하시지 않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변론하시기를 원하시며 인격적인 관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다름없는 영혼없는 반복되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으시고, 이웃을 내몸과같이 사랑하는 인격을 가진 인간을 원하십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주고,갇힌자를 불쌍히여길줄 아는 인간으로 살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창조 목적이 아닐까요...
  • 노아김태우목사 2016.12.17 06:37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목적이며 그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안될까요?
  • sozo 2016.12.17 09:16
    하느님의 영광은 사랑의 모습으로 구현된다,,,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사랑을 방법(수단, method)라고 하는 것 보다는요 ^^
  • sozo 2016.12.17 09:11
    어제 아는 분이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바르게 신앙한다는 사람들의 행실과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행실이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느님을 신앙한다는 사람들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상(human affairs)을 보고 비판을 하는 차원에서 김목사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국기독교인들의 삶이 많이 왜곡되어 있으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현상을 말씀하시다가 하느님의 전적주권을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라고 하셨죠

    창조목적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김쌤이 지적하신 것처럼 매우 약합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중요근거로 삼은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몰론 개인의 신앙과 신학 안에서 수용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진리를 증명하려는 것으로 웨스트민스터라는 참고서를 증거자료로
    사용하는 건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참고서를 증거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김쌤의
    신의 이해에 대한 중근동을 비롯한 세상 종교등에서 보이는 것들의 취합같은 겁니다

    어찌보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되었든 그렇지 않든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나타내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근거가 없는 것을 진리로 확정한다면 다른 주장들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서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는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천년왕국설입니다
    천년왕국설 가운데 후천년설은 사장되어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가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었기 때문인데 세상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후천년설을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고보니 그렇게 주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역사를 보면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걸 말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성경도 이를 언급하는데 2/3는 멸망하고 1/3이 구원을 얻을 거라는 스가랴서나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의 수를 칠천이라고 한 이사야서가 그 예입니다


    하느님의 전적주권은 저도 적극지지하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제가 어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조금 나누어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짜장면을 먹을 수도 있고 짬뽐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생각하고 결정한 후에 실행에 옮깁니다
    행위주체는 우리 각자가 되는 거죠
    선하거나 악한 행동을 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창세기 처음에 등장한 사람이 불순종이라는 악한 행동을 한 것이 결코 하느님의 절대주권적 일하심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행위 역시 하느님의 간섭하심이 매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느님께서 사람의 머리카락을 세어보신 적이 없다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동일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을 파주고 오는 선한 행동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선한 행동이 구원을 얻은 자의 삶의 열매가 될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분을 해서 생각을 해야합니다
    선하든 악하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건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구원은 전적으로 신의 영역에 속한 일임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이렇게 구분하여 하느님의 절대주권을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하느님이 선택하시고 언약,율법,제사를 주셨는데 그 선택한 민족을 멸망시키셨습니다
    미래주의자의 시각으로 계시록을 읽는다면 장차에 이스라엘의 대회심이 있겟지만 아무튼 그 전에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지 않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스스로 왕국을 세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범죄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반응에 따라 하느님께서 일하심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말과 인간의 반응에 따라 하느님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와같이 선민 이스라엘의 경우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구원과 심판이 동전의 양면같아서 특정역사(human affair)에서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심판을 통해서 나타내신다고 말을 합니다
    만약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불의에 대한 심판을 통한 의라는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라는 말씀이라면
    수용이 가능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하는 건
    성경적 근거도 희박하고(해석에 따라 전무함) 역사를 통해서도 증명하기 불가능합니다


    목사님 글을 읽고 무슨 의도로 그 글을 쓰셨는지 아니까 그 의도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어쩌다가 칼빈이 불거져서 칼빈을 똥으로 여기는 김쌤이나 똥으로 여기지는 않고 천재신학자로 생각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들이 있는 제가 사변적인 것으로 긴 글들을 달게 되었습니다

    재미는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 노아김태우목사 2016.12.17 11:33
    현재 뿐만이 아리라 오랜 시간동안 논쟁과 변증이 있어왔던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논쟁이 오늘날 우리에게서 그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열정은 있는데 힘이 부치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군요로 마감을 하지요.
  • sozo 2016.12.17 15:33
    여기선 늘 그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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