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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23-24 묵상>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인가?
이 산(그리심산)에서도 말고 저 산(예루살렘의 시온산)에서도 말고란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참되게 그리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 말씀을 버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되게... 영과 진리... 예배... 의 정의가 먼저 깨달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동안의 신앙행위와 가르침으로 인해 이미 형성된 선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산과 저 산에서도 말고...의 의미 또한 중요합니다.
먼저 ‘참되게’란 의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그리고 기쁜 모습인데 구약의 예를 들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두 제사가 외적으로 동일한 행위이지만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고 가인은 자신의 의로 즉 믿음이 아닌 행위로 드려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예배)는 받지 않으셨음을 볼 때 참된의 의미는 믿음으로 드리는... 의미가 여러 의미중 가장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영’과’진리’에서 영은 요엘서의 예언대로 성령하나님을 의미하며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이젠 고전의 말씀처럼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는 (고전12:3)시대입니다.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께서 내주하신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며 어떠한 형식을 정하여 일정 장소에서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잘못된 형식적 예배행위가 만연했는데 이는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의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 그런 종교적 행위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고 각자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 즉 예배자는 영과 진리와 연합된 자 즉 회개하여 구원 받은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만이 참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자들의 예배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하니 자신이 먼저 그러한 자인지를 살펴보는 것(고전13:5)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예배자인지 여부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음은 물론이니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하고 확증하시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길 기도합니다.) 물론 그저 여러 이유로 형식적 종교행위(오늘날 수많은 이름의 예배행위)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그런 행위의 많고 적음이 참 신앙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롬10:2-3, 암5:21-24, 말1:10 참조) 그러한 모습들은 그저 회심하기 전의 사울과 예수께 영생을 위해 물어왔던 부자청년의 모습이 될 뿐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종교적 확신과 행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모습의 신앙이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다음은 ‘예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예배의 원어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대상을 향해 무릎 꿇고 입맞춤을 한다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말성경엔 예배를 숭배라고 표현합니다. 경배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 꿇어 엎드러 입맞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의미가 오늘날 예배당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드리는 종교적 예배일까요? 이게 맞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렇다고 이해하기에 그토록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중심적 신앙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게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라면 구약의 선지서에 기록된 형식적 종교행위에 대한 여러 책망의 말씀들과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전파괴 사건을 설명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아마 예배의 참의미는 그 이상인 듯 합니다. 저는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이리 깨닫습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께 무릎 꿇는다는 것은 그 분께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복종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그 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적 삶이 최우선적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말씀에 기록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에 드러난 주의 뜻을 얼마나 따르려 애쓰는지 여부에 따라서 제자도와 예배자의 모습이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교회의 전통과 사람의 유전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숭배,경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기준은 오직 말씀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중세의 카톨릭, 그리고 종교개혁후 5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기독교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건물중심의 의식적인 종교행위입니다. 신자의 삶 즉 세상 속에서의 빛과 소금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회개도 기도도 예배도 봉사와 헌신도 모두 건물에 모여 합니다. 이부분에 대해선 끝으로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의 의미를 통해 바르게 깨닫기 원합니다.
역사를 고찰하면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의 혼혈정책으로 인해 유대인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외면하고 더럽게 취급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이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에서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에 산당을 지어 제사(예배)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라하셨는데 이는 당시 종교감정으로는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고 구약에 시온산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으로 표현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의 그리심산도 시온산보다는 덜 하지만 성경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성산이기에 사마리아인들의 제사(예배)장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곳 모두 예배의 장소로 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 어느 곳이든지 장소는 진짜와 가짜가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가라지비유에서도 우리는 진짜 속에 가짜가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타락할 수록 특정징소에는 가짜들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 진실입니다. 그래서 특정장소에 모이는지 여부는 참된 예배자를 구분하는 시금석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언약의 때가 차매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이땅에 오셨으며 그분께서 한 여인에게 이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이제 신자에게 있어 예배의 장소적 개념은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 예배는 영과 진리안에 거하는 거듭난 자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다시 말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에 스스로 무릎 꿇어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건물에서의 신앙행위는 그저 삶으로 나타나는 예배의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전혀 본질적 예배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의 강조와 주장은 결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서의 모이기에 힘쓰라는 권면을 들어 건물예배당에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이는 바른 이해가 아니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나누겠습니다.
어떤 신자가 참된 예배자인지 여부는 말씀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지에 달려 있으며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특히 성령의 열매는 모두 마음의 변화(모든 착함, 의로음, 진실함,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신실), 온유, 절제)와 밀접하며 그러한 변화가 성도의 외적 행위를 변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당연히 각 성도가 처한 실제 삶 속에서 그게 가정이든 직장이든 여행지이든 불구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을 정리합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자만이 드릴 수 있는데 그 예배자는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받은 자들이며 또한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신분을 가진 자들이며 성령의 내주하심과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형식적 종교예배는 모든 사람이 드릴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예배(숭배,복종)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세상 속에서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살아 운동력이 있어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야 하는 삶을 주님 앞에 살아 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무릎 꿇고 그 분의 발에 입맞춤하는 진실된 모습의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한 예배자가 많아지는 것이 성경적 부흥(하박국3:2...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O Lord. Renew them in our day 이 곳이 부흥이란 말이 있는 유일한 곳인데 영어로 Renew가 부흥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이며 이는 하박국 3:16-19에서 잘 나타나듯이 참된 부흥은 작게는 각 신자의 내면의 변화이며 크게는 그렇게 변화되어진 자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결국 예배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는 구원받은 자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형식적 예배와 예배자는 주님께서 그토록 가증하다고 책망하시는 위선적 모습일 뿐인 것입니다.
이 묵상이 여러분들의 영에 유익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PS. 예배의 장소가 특정한 곳이 아닌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예배의 장소가 되는 것에 대한 중요한 성경구절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 (예배의 처소)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5)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에게 예배의 처소가 이 산도 저 산도 아니라 하신 그 참 의미를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가 잘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배의 처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 즉 성전인데 이제 믿음을 고백한 성도 안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 자신이 예배자이며 예배처소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약에서는 백성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짐승을 (죽여) 제사한 후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함을 받았으나 이제는 신자가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매순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씻김 받는 놀라운 은혜의 시기입니다. 어디에 우리 성도가 정기적으로 어떤 장소에 모여서 드리는 형식적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고 되어 있습니까? 깨닫고 보니 우리가 또다시 진리 안에서 자유가 아닌 율법의 종이 돼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각종 예배 참석, 각종 헌금, 교회에서의 충성과 봉사 등 많은 율법이 또다시 우리를 지배하며 통제함을 느낍니다.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사도 바울처럼 스스로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목회를 하라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특정장소에 자주 모이라고 할지 참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사역비와는 상관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리 크고 멋진 건물이 필요하고 그 유지를 위해 온갖 집회와 모임을 가지게 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하시고 말씀을 묵상하십시요. 우리의 영은 말씀이 양식입니다. 기도는 양식이 아니라 그 생명되는 양식인 말씀을 바르게 깨닫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바른 말씀의 깨달음이 없는 기도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유혹과 미혹의 통로임을 아셔야 합니다. 모든 종교에 간절한 기도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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